◆…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오른쪽)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토크 콘서트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제도권 정치인으로 복귀할 지에 대한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유 이사장의 복귀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가운데 최근 그의 언행이 사실상 복귀를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20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유 이사장이 "(정치를) 할 것이라 본다"고 전망했다.
박 의원은 대담에서 유 이사장이 지난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정계복귀 요청에 "원래 자기 머리는 못 깎는다"고 답한 것을 근거로 들어 이같이 주장했다.
유 이사장의 '(중이) 자기 머리는 못 깎는다'는 답변은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 문화제'에서 나왔다. 유 이사장이 인용한 속담은 자신의 좋은 일을 스스로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이어서 남의 손을 빌려야 이루기 쉽다는 뜻으로 쓰인다.
행사에 함께 참여한 김어준씨도 현장에서 "남이 깎아달라는 거다"라고 맞장구 쳤듯이, 주변에서 권유하고 여론이 형성되면 대선 출마도 염두한다는 의미 외에는 다른 뜻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유 이사장은 14일 라디오 인터뷰에선 "정치를 하고 말고는 제 마음"이라며 "나중에 (정치를) 하게 되면 욕하시라"고 말했다. 진행자가 "유 이사장은 거짓말은 안 하는 분"이라고 하자 유 이사장은 "저도 거짓말 한다. 왜 안 하겠나. 필요할 때는 한다"며 모호한 발언을 했다.
◆ 삼고초려 떠올리는 유시민의 '거절'
유 이사장은 그간 3차례 정치 복귀를 일축하는 선언을 했다. 지난해 10월 15일 서울 마포 소재 노무현 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이사장 이·취임식에서 그는 "임명직 공직이 되거나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한 것이 처음이다.
올해 1월 7일에는 본인의 팟캐스트 방송 '고칠레오'를 통해 "선거에 나가기 싫다"고 단언했다. 그는 "정치를 다시 시작하면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전부 '을(乙)'이 된다. 저만 을이 되는 게 아니라 제 가족도 다 을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유도 설명했다.
2009년 4월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 자택에 찾아가선 "(노 전 대통령이 본인에게) 정치 하지 말고 글 쓰고 강연하는 게 낫겠다"고 조언했다는 일화도 공개한 바 있다.
지난 4월 23일에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준비 기자간담회에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이미 완전히 떠났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이나 대선에 나설 것이라는 정치권 소문에 대해선 "(아니라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안 믿어주면 말로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불과 한 달 뒤인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 문화제에서는 농담이 섞였다고는 하지만 그간의 불출마 뉘앙스와 정반대의 반응을 한 것이다.
기성 정치인 출신의 말이라는 측면에서 그간 정치권 복귀를 일축하는 발언을 해온 이유가 여론의 반응을 보는 한편 지지층 결집을 노리기 위한 의도적 행위로 풀이될 수 있다.
◆ 조순·고건·문국현·반기문 등 '불출마'와 대조
노무현재단이 운영하고 유 이사장이 사회자로 있는 팟캐스트 '유시민의 알릴레오'는 21일 현재 구독자 수가 80만명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노무현재단도 현재 5만5000여명의 시민 후원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20회 가량 제작된 유시민의 알릴레오는 그간 다양한 정치 현안과 진보정치의 외연을 확장하는 기능을 하면서 '정치 방송'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유튜브 채널 '홍카콜라TV'와 합동방송을 하기로 한 것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대선 후보급 유튜버의 만남이라는 구도가 추진 근거가 됐다는 데에 이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유 이사장은 정·관계를 떠나 아우터서클(Outer Circle·정치권 밖)로 나갔지만 촉(觸)을 항상 정치에 맞추고 있는 셈이다. 그가 말한 시민·일반인·작가로서의 삶은 정치와 완전히 절연한 상태여야 하는데 그의 '언(言)'과 '행(行)'이 불일치하는 것이다.
유 이사장의 정계 은퇴 선언 후 행보는 과거 조순 전 서울시장, 고건 전 국무총리,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유 이사장은 작가로서의 삶도 강조해왔다. 지난해 10월 15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앞으로도 글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후 집필한 저서는 없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하기 4개월 전에 출간한 '역사의 역사'가 마지막 저서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취임 후에는 알릴레오 방송과 TV강연 등에 출연해 정치 평론가 역할을 자처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오른쪽)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가 지난달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홍일 전 의원의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대선 후보급 이미지 메이킹 들어갔나
유 이사장이 애매모호한 행보는 자신을 여권 대선후보급으로 격상시키는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유 이사장은 여권 차기 대선후보군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에 이어 2위 군으로 분류된다.
이런 현상은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과거 사례와 유사성을 보인다. 안 전 대표는 지난 2011년 서울시장 후보로 물망에 오를 당시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히면서 오히려 지지율이 폭등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결국 박원순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며 불출마 선언을 하자 대선 후보 급으로 올라갔고,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 각축전을 벌인 끝에 또 다시 양보, 대선후보급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정치 외연을 확장해나갔다.
안철수 전 대표의 두 차례 불출마 선언 과정에서 요동친 주식 시장의 반응도 유 이사장 테마주의 등락과 닮아있다. 주식시장은 물론 여론의 반응 또한 명확하지 않은 의사표현에 더 크게 반응한다는 것을 유 이사장은 여러 과거 사례를 토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공천 물밑작업이 시작된 시점에서 '정치를 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던진 것은 민주당과 여론의 반응을 보고 총선에 출마할지, 차기 대선으로 직행할지를 파악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유 이사장이 다시 정치를 할 것이라는 분위기다. 유 이사장과 잦은 방송 출연으로 친분을 쌓은 전원책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판에서 완전한 부정이라는 말은 본인의 생각을 숨기려고 할 때 자주하는 화법"이라며 복귀 쪽에 무게를 뒀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역시 "본인이 극구 부인하는 것은 몸값을 올리려는 것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여권에서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여권 한 관계자는 20일 "이미 은퇴 의사를 번복한 뒤 대권을 잡은 김대중·문재인 대통령 사례가 있고, 지지층의 강력한 요구가 있기 때문에 유 이사장의 머리를 깎아 줄 명분과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