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세무사와 회계사들도 간편납세제 반대에 대해선 '라이벌'이 아닌 동료로써 공동전선을 구축해 총력 저지태세를 갖추고 있다.
추진의 주체인 정부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놓인 형국. 9일 정부가 제출한 간편납세제도와 관련한 세법 개정안(법인세법 및 소득세법)은 국회 재경위 세법심사소위원회의 본격적인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까지 국회 소위원회의 심의 과정을 지켜봐야 할 단계이기 때문에 확실한 결론을 도출해 내기는 이르지만 직접 법안을 심의할 소위 소속 의원들 중의 대부분이 제도 도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 정부는 간편납세제 도입을 위해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간편' 납세제도 어떤 제도인가
간편납세제는 매출액 일정규모 이하 성실중소사업자들이 세무대리인에게 지출하는 납세협력비용 없이도 '전자장부' 를 통해 간편하게 세금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정부는 정기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면 오는 2007년 1월 1일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이 제도는 지난 3월 영세 자영업자 및 중소기업이 세무에 신경쓰지 않고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간편한 세금납부 제도를 도입키로 한데서부터 출발했다.
당초 재경부는 매출액 일정규모 이하 성실자영업자나 법인기업을 대상으로 세금계산서, 현금영수증 등 매출·매입·경비 자료만 갖추고 현금출납장 등 기초 장부만 있으면 이를 토대로 기타 세법에서 정하는 감면을 적용하지 않고 낮은 세율로 과세한다는 것이었다.
'성실도' 가 보장되면 일체 세무조사도 배제하고 과표노출에 따른 세부담 증가분은 일정기간 감면하는 등의 특례도 주기로 했었다. 사업자들에게 복잡한 세금계산의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었던 셈.
그러나 정부가 최종 확정한 간편납세제도의 기본골격은 180도 달라졌다. 일단 당초 발표했던 매출액×일정세율 원칙은 검토과정에서 전면 폐지됐고 대신 복잡한 세금계산을 단순화하고 이를 프로그램화한 전자장부를 통해 쉽게 계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 정치권 '간편납세제' 에 대한 부정적 인식
정부는 간편납세제를 통해 영세업자들이 세금과 관련해 신경을 쓰지 않고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편의를 도모해 준다는 취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 같은 정부의 주장은 정치권에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특히 일부 영세 사업자에게 세무상의 혜택을 준다는 정부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중소사업자의 소득파악이 더 어렵게 돼 축소신고, 근로자와의 조세 불평등, 탈세 등 우리 나라 세무현실에 오히려 역행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급기야 한나라당은 지난 달 3일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하면서 간편납세제 도입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해 저지키로 했다. 비단 한나라당 뿐만이 아니라 민노당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 중에서도 제도 도입에 반대의견을 표명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은 국세청과 재경부에 대한 국정감사 당시 자료를 통해 "간편납세제는 근거과세 기반을 허무는 제도이며 전면 철회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정확한 세원파악도 하지 못해 세수확보에 쩔쩔매면서도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과표양성화 노력을 포기하겠다는 것" 이라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노당 심상정 의원도 "과표양성화와 소득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데 간편납세제가 소득인프라 구축에 역행하는 만큼 법안 심의 과정에서 확실한 입장을 정해 처리할 것" 이라며 사실상의 '제도 도입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이와 관련해 야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곤란하고 정부의 준비가 미흡하다" 라며 "전자장부를 쓰기 위해선 추가인력이 필요하게 되며 납세자로 하여금 세무대리인에게 지출하는 비용을 줄여주지는 못하고 프로그램 구동을 위한 인력충원을 하게 만들 것" 이라고 지적했다.
여당 일각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모습. 재경위 소속 여당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이 부분에 대해 당론이 정해진 것은 없지만 제도 도입은 시기상조" 라며 "과세기반이 탄탄하지 않기 때문에 제도 도입시 과세 형평성을 저해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기존에 간편장부제도 등 영세사업자들에게 이미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간편납세제가 과연 효율성이 있는 것인지의 문제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당 의원실의 관계자도 "(법안)통과가 되고 안 되고가 문제가 아니라 간편 납세제 자체의 문제가 있다" 라며 "간편납세제가 실질 소득파악을 위해서라는데 과연 실직소득 파악이 가능한지 조차 의심스럽다" 고 지적했다.
□ 세무사회, 공인회계사회‥'라이벌'을 떠나 '공생'
지난해 '자동자격' 문제를 둘러싸고 국회에서 한바탕 다툼을 벌였던 세무사회와 공인회계사회는 간편납세제도 도입 저지라는 목표를 세우고 공동전선을 구축해 강력 대응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공인회계사회는 간편납세제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 태스크포스팀(TF)까지 구성해 對정부 공세를 본격화하고 있다. 공인회계사회는 필요할 경우 세무사회와 협조한다는 방침이다.
간편납세제 도입 논의 초기부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해온 세무사회는 국회 재경위의 법안 심사과정에서 제도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임향순 회장은 이와 관련해 "간편납세제가 도입되면 공평과세 질서가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며 "간편납세제는 소득파악을 더욱 어렵게 해 정부가 중장기조세개혁과제로 추진 중인 자영업자 등에 대한 소득파악률 제고에 역행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임 회장은 특히 "현재 연 매출이 수 억원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이 연매출 4800만원 이하에만 해당되는 간이과세로 부가세를 내고 있는 것이 현실" 이라며 "사실상 간이과세 대상을 최고 30억원까지 넓히는 간편납세제가 시행되면 악용사례가 더 늘어날 것" 이라고 경고했다.
시민단체에서도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참여연대 이상민 간사는 "과표양성화가 세제개혁에서 가장 중요하다" 라며 "그러나 간편납세제가 과연 과표양성화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스럽다" 며 "제도를 시행한다면 과세 인프라 구축 이후에 해도 늦지 않으며 지금은 시기상조" 라고 말했다.
경실련의 윤순철 정책실장도 이와 관련해 "간편납세제가 영세업자에게 일시적인 도움은 될 수 있지만 항구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 소득파악 문제 등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라며 "정부가 제시하는 추정치만을 보고 어느 쪽에 이익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우며 소득 투명화, 과세형평성이 우선 되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