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급락·정제마진 약세·코로나19 수요부진 3중고
"1962년 정유사업 시작 이후 사상 최악의 경영환경"
◆…SK이노베이션 최근 5년 분기별 영업실적. 2020년 1분기는 잠정실적.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SK이노베이션이 1분기 국제유가 폭락과 코로나19 글로벌 확산 사태로 인한 수요부진 등 심각한 업황 악화에 부딪쳐 1조 7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이 적힌 창사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주력인 석유사업을 필두로 화학과 윤활유 부문 사상 최저 수준이었던 유가에 따라 모두 대규모 재고관련 손실이 발생해 이익이 악화된 모습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11조 7885억원, 영업손실 1조 7752억원, 당기순손실 1조 5522억원으로 잠정 집계해 6일 발표했다. 이는 전년동기와 비교해 매출이 12.6% 줄어들고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적자전환된 실적이다. 전분기 대비로는 매출이 5.3% 감소했으며 영업이익 적자전환, 순이익 적자지속으로 각각 기록됐다.
이 회사가 2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난 2014년 국제유가가 단기간 50달러 가까이 떨어지며 정유업계가 흔들렸던 당시 4분기 4702억원 적자보다 손실폭이 크게 상회한다. 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 모두 적자를 낸 것도 2014년 이후 약 6년 만이다.
특히 1분기에는 정유와 비정유 구분 없이 전반적인 하락세를 나타냈다. 석유 사업에서 9554억원에 달하는 재고관련손실을 보면서 영업손실이 1조 6360억원을 기록했고 화학도 재고관련손실과 영업손실이 각각 1437억원, 898억원 수준이었다. 윤활유 사업 역시 195억원 수준의 재고관련손실 영향으로 전분기 대비 67% 가량 줄어든 289억원의 영업이익에 그쳤다.
이 같은 부진에는 국제유가 급락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의하면 두바이유 기준 유가는 지난해 12월 배럴당 65달러 수준에서 1월 57달러, 2월 48달러, 3월 23달러까지 떨어졌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정유사 실적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정제마진 역시 1분기 배럴당 0.4~3달러 수준으로 통상 손익분기점(BEP)으로 평가되는 4~5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저점행보를 보였다. 유가하락으로 제품 판매 단가도 축소된 가운데 코로나19 글로벌 확산 사태로 수요가 위축돼 판매량까지 줄어드는 최악의 업황에 직면하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유가급락에 항공·휘발유 등 제품가가 원유가격보다 낮아지는 역마진으로 대규모 재고관련손실이 발생한데다 코로나19발 국내외 석유제품 수요부진으로 인한 정제마진 약세로 석유사업이 큰 폭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지난해부터 심각해진 시황 악화 속에서 코로나19 영향과 유가 급락 등 3중고에 부딪쳤다"고 밝혔다.
이어 "화학사업은 전분기 대비 제품 마진이 개선됐으나 납사가격 하락으로 재고손실을 봐 2015년 4분기 이후 첫 분기적자를 기록했고 윤활유도 코로나19로 인한 판매량 감소와 원가 하락에 따른 재고손실 영향에 이익이 줄었다"면서 "1962년 정유사업을 시작한 이후 최악의 경영환경"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석유개발사업과 소재사업에서 전분기 대비 각각 10.0%, 15.4% 늘어난 453억원, 270억원의 영업이익을 시현했으며 배터리사업도 75억원 정도 적자폭을 줄였다. 전기차용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LiBS) 판매량 증가, 지난해 말 완공된 중국과 헝가리 배터리 공장의 양산 가동 등이 신사업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작년 매각에 나선 페루 88·56광구 운영비 절감 등으로 석유개발사업의 이익이 늘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은 2분기까지 업황 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정기보수에 따른 설비 가동률 축소, 항공유의 타 제품 전환 작업 추진 등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순차입금이 전년말 대비 2조 1790억원 늘어났고 설비투자(CAPEX)도 2분기 지출 규모가 크도록 계획됐지만 1조원 가량의 페루 광구 매각 대금이 연내 들어올 예정인 만큼 연간 순차입금 규모는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올해 3조~4조원 내외로 예상한 설비투자금 중 60% 정도가 배터리소재사업에 투입되는 가운데 생산시설 확충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미국에 배터리 2공장 건설도 결정한 이 회사는 글로벌 생산거점이 계획대로 완공되면 2023년 약 70기가와트시(GWh)이상 연간생산량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회사측은 "배터리 사업 특성상 자본투입 기간이 길어 미 2공장 투자금액의 경우 내년 이후 집행될 예정이지만 대외 불확실성 등을 감안해 투자·운영비용 감축을 위한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준 총괄사장은 "코로나19로 최악의 경영환경에 놓였으나 사업 체질을 개선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는 기회로 삼아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