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지회장, 세무사 명의대여로 세무대리 혐의 기소
대법 "세무사 지휘·감독 없이 세무대리, 세무사법 위반 직접정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세무사 자격이 없는 단체장이 직원들에게 세무사 명의로 세무회계 프로그램에 접속하도록 지시하는 방식을 통해 회원들의 세금을 신고한 것은 세무사법 위반죄의 직접정범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세무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모 단체 지회장 A씨에게 "세무사법 위반죄의 직접정범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벌금 150만원을 선고한 원심(2심)을 확정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사단법인 단체의 지회장인 A씨는 세무사 자격이 없는데도 2008년 1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사무실 PC에 세무회계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직원들에게 대여받은 세무사들 명의로 접속해 회원 1000여명의 부가가치세 신고를 입력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직원들은 세금회계 프로그램을 이용해 회원들의 부가가치세 신고서를 작성한 뒤 세무사들 명의로 '홈택스'에 접속해 회원들의 부가세 신고서를 변환해 전송했다.
A씨는 나아가 직원들에게 부가세 신고 업무를 더욱 성실히 수행할 것을 독려했고, 일일이 직원들의 신고 건수를 보고받아 결재하기도 했다. 이 단체에 명의를 대여한 세무사들은 직원들의 세금 신고 업무를 지휘·감독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A씨는 자신은 명예회장에 불과하므로 직원들에게 회원들의 부가세를 신고하도록 지시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직원들은 고문계약을 체결한 세무사들의 지휘·감독을 받아 부가세 신고의 기초자료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한 것이므로 독자적으로 세무대리를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세무사 명의를 활용한 세무대리는) 수십 년간 관행대로 이뤄진 것이므로 피고인에게는 세무사법 위반에 대한 위법성 인식이 없었다"며 "영세 사업자들로 구성된 회원들에게 서비스 차원으로 제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A씨는 소속 직원들의 세무대리 행위에 관해 지시, 관여해 왔으며 이를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며 A씨에게 벌금 3백만원을 선고했다.
세무사의 지휘·감독 여부에 대해서도 1심은 "A씨는 소속 직원들로 하여금 세무사들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세무대리를 하게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A씨는 항소했고, 2심은 "원심(1심)의 양형은 다소 무겁다"며 벌금 150만원으로 감경했다. 2심은 "A씨가 초범인 점, 영세 상인들의 부가가치세 신고를 도와주려는 목적에서 세무대리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고 이에 대해 특별한 대가를 취득한 사정도 없는 등 범행의 경위에 관해 참작할 여지가 있는 점은 유리한 양형요소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만 2심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며 1심과 동일한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도 "A씨는 세무사 자격이 없음에도 소속 직원들과 함께 명의를 대여한 세무사들의 지휘·감독 없이 세무회계 프로그램을 통해 회원들의 부가가치세 신고서를 작성한 후 세무사들의 명의로 부가가치세 신고를 하는 등 '세무대리'를 했다"며 2심 판단을 존중했다.
대법원은 "A씨는 세무사법 위반죄의 직접정법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원심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A씨가 교사범 또는 간접정범임을 전제로 하는 적용법조의 누락이나, 종범의 성립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원심은 A씨가 부가가치세 신고의 위법 가능성에 대해 심사숙고하거나 위법을 회피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A씨가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위와 같은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