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신년벽두 청와대가 결정한 일부 부처 개각과 경찰청장 인선이라는 두 차례의 대형 인사가 단행되는 과정에서 언론을 따돌리는 것으로 비쳐지는 '성동격서'식 브리핑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병완(李炳浣) 청와대 비서실장은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삼청동 공관으로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초청, 떡국을 베풀고 함께 덕담을 나누며 화합을 상징하는 '천지교태'(天地交泰)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정했다.
이날 오찬에서 기자들의 관심은 연초로 예정된 개각으로 모아졌다. 주내 개각은 예상됐던 것이었고 며칠쯤 개각이 발표되느냐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이 실장은 개각 시기를 묻는 질문에 "좀 더 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다"고 말했고 이어 '금명간 개각을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압박을 느낄 필요가 없다. 내일부터 들어가 봐야지"라며 시간을 갖고 검토할 뜻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튿날인 2일 오전 10시30분께 개각 발표를 위한 청와대 인사추천회의가 소집됐고, 이날 오후 4개 부처 개각이 발표됐다.
이 실장은 고위공직자 인선과정에서 최종 관문인 청와대 인사추천회의 의장으로서 회의를 소집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실장이 인사추천회의 소집일자를 마음속에 정해놓고 개각 '보안'을 위해 기자들에게 '시치미'를 뗀 것인지, 아니면 천천히 여유를 갖고 개각을 하려다 2일 아침에 와서 인사추천회의 소집을 전격 결정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하튼 결과적으로는 대다수 춘추관 기자들은 이 실장의 1일 오찬 발언에 영향을 받아 '오판'을 초래했다.
정초 청와대 기자들의 또 하나의 관심사는 차기 경찰청장이 누구이며, 언제 지명될 것이냐는 것이었다.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취재하기 위해 기자단을 대표해 국무회의장에 들어간 '풀'(pool. 공동취재) 기자는 김완기(金完基) 청와대 인사수석으로부터 경찰청장 인선 시기에 대해 "이제 막 시작했다. 다음주초나 돼야… 이번주에는 인사추천회의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청와대 기자들은 김 수석의 발언을 토대로 '차기 경찰청장 인선 내주초 발표될 듯'이라는 취지의 기사를 송고했다.
그러나 차기 경찰청장 지명을 위한 인사추천회의는 그 이튿날인 4일 오후 2시에 열렸고, 경찰위원회 동의 절차까지 거쳐 이날 오후 6시께 발표됐다.
청와대는 "김 수석이 말한 그 시점에서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검토할 예정이었지만, 오후 들어 굳이 늦출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모아져 발표 시점을 앞당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일부러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교롭게도 정초 두 차례의 대형 인사에서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전망'이 빗나간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문에 춘추관 기자들 사이에서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발언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느냐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새로 청와대에 출입한 한 기자는 "앞으로 청와대에서 '내일 별일 없을테니 걱정마라"고 얘기하면 그럴수록 당일 밤 취재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촌평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구랍 28일 청와대 기자단과 송년만찬에서 "견제하고 갈등하는 구도에서도 '만남의 광장'을 만들자"고 당부했다. '만남의 광장'이 형성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신뢰'라는 점을 청와대 비서실은 알아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