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안 숭실대학교 교수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9년에 암으로 돌아가신 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는 장영희 교수님이 힘들어하는 제자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신다.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 있다더구나. 검은 돌은 불운, 흰 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 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란다. (중략) 아마 너는 네 운명자루에서 검은 돌을 몇 개 먼저 꺼낸 모양이다."
어떤 사람은 검은 돌이 계속 나오니까 남아있는 많은 흰 돌은 생각지 못하고 검은 돌에 낙심하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흰 돌이 계속 나오니까 남아있는 많은 검은 돌은 생각지 않고 우쭐대고 자만한다는 얘기다.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이나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마라'는 말들도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 기회를 맞은 회계업계
신(新)외부감사법의 시행으로 회계업계는 기회를 맞이하였다. 과거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외부감사 환경이 개선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 반대하던 기업의 강도도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다. 회계업계에 있는 분들이나 공인회계사를 하는 제자들의 반응과 기대도 과거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올해 공인회계사 1차 시험 접수자가 전년의 10,874 명 대비 2,584명(23.8%)이나 증가한 13,458명이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는 2003년 이후 18년 만에 가장 많은 인원이다. 불황 때는 고시 응시인원이 증가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올해 공인회계사 접수인원의 증가는 불황 때문으로 보기에는 훨씬 많은 증가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는 몇 가지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첫째, 감사보수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작년 10월 금융감독원 보도자료에 의하면 평균 총감사보수는 전년 대비 21.6% 증가하였다. 특히 4대 회계법인의 평균 총감사보수는 30.1%나 증가하였다. 그런데 감사 보수는 총감사보수와 함께 시간당 감사보수를 보아야 한다. 과거에 필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2006년의 시간당 감사보수는 약 97,000원이었으나 2015년에는 80,000원으로 하락하였다. 단순히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2015년의 시간당 감사보수는 121,000원이 되어야 했다. 2016년 이후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2020년의 시간당 감사보수는 128,000원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최근의 시간당 감사보수 증가는 지나친 상승이라기보다는 정상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총감사보수의 증가는 시간당 감사보수의 정상화와 감사시간의 증가로 인한 것이지 과도한 증가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총감사보수의 증가가 기업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 A회 사의 경우에 2018년 1억원의 감사보수가 2021년에는 3억원으로 증가하였다. 물론 이 회사는 주기적 지정 대상이고 시간당 감사보수는 110,000원 정도여서 다른 회사에 비해 많은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감사보수가 3년 만에 3배가 되었다는 사실을 이 회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다.
둘째, 주기적 지정제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감사인 선임의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원리에 의해 감사를 잘하는 감사인을 선임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기적 지정제는 비정상적인 제도다. 그런데 열악한 우리나라의 감사환경에서 시장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도입된 것이 주기적 지정제다. 예를 들어 위암에 걸린 환자의 경우에 불가피한 경우에는 배를 가르고 수술을 한다. 배를 가르는 것은 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러나 암 치료를 위해서는 배를 갈라야 한다. 주기적 지정제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자유선임제에 익숙해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주기적 지정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 같다. 주기적 지정제로 인해 깐깐해진 감사와 감사보수의 증가가 기업 입장에서는 일단 반가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표준감사시간 제도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대표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표준감사시간의 제정이 적절한가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외부감사의 '질'을 따지지 않고 '투입량(투입시간)'만을 따진다며 표준감사시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표준감사시간으로 인해 감사인이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것도 반갑지 않고, 이로 인해 감사보수가 증가하는 것도 반갑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B회사의 경우 자산은 6,000억원인데 현금과 정기예금이 2/3인 4,000억원이므로 실제 감사를할 때는 자산 2,000억원 회사와 유사한 노력이 소요된다. 그러나 표준감사시간 산정 시에는 자산 6,000억원을 기준으로 하므로 표준감사시간이 과도하게 계산된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B회사는 표준감사시간에 대하여 더욱 부정적이다.
■ 위기가 기회라면, 기회는 위기가 될 수 있어
회계업계는 이제 기회를 얻는 것이다. 4대 회계법인 여부, 상장법인 감사인 등록 여부 등에 따라 얻은 기회가 달라서 생각이 다를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기회를 얻은 것이 맞다. 우리는 어려울 때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로 위로하고 미래를 준비한다. 그런데 '위기가 기회'라면 '기회는 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회계업계에게 주어진 기회가 위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서 언급한 사항에 대하여 다시 논의해보자. 첫째, 감사보수의 증가는 정상화의 과정이며 외국의 사례를 들어 불가피함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기업의 회계부서는 힘들어졌지만 기업 내에서 조직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므로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회계투명성이 상승한다면 결국 기업에게 이익이 되므로 일정 부분 투자가 필요함을 설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어려움도 이해해야 하고 회계업계와 학계, 관계 등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물론 이를 이해하는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다.
둘째, 당분간은 주기적 지정제가 불가피함에 대하여 이해를 구해야 한다. 정상적인 외부 감사환경에서 는 자유선임제가 합리적인 제도지만 과거 우리나라처럼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는 주기적 지정제와 같은 제도의 도입은 불가피함을 설명 해야 한다. 주기적 지정제는 비정상적인 응급처치이므로 언젠가는 폐지되어야 하지만 폐지되기 위해서는 주기적 지정제가 없어도 되는 감사환경이 우선 조성되어야 한다. 그때까지는 주기적 지정제가 필요함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기업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기업의 경영자도 이해해야 함은 물론이다.
셋째, 당분간 표준감사시간이 불가피함을 설명하고 표준감사시간 자체보다는 운용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주기적 지정제와 마찬가지로 표준감사시간은 비정상적인 제도다. 그러나 낮은 감사보수와 이로 인한 적은 감사시간의 투입이 우리나라의 낮은 감사품 질의 원인이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불가피한 제도다. 다양한 기업에 대하여 획일적 표준감사시간을 제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표준감사시간을 감사시간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고, 표준감사시간에 미달한 합리적인 사유가 있으면 이를 예외로 인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 표준감사시간이 안착되도록 해야 한다.
회계업계의 기회가 아닌 우리나라 회계의 기회가 되어야 신외부감사법의 시행은 기회이자 위기다. 최근 제도 변화는 회계업계의 기회가 아닌 우리나라 회계의 기 회가 되어야 한다. 회계업계의 기회로만 끝난다면 이번의 기회는 위기가 될 수 있다. 회계업계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영자, 주주와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 정부, 학계 모두 이번이 우리나라 회계 발전을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다행히 희망의 불씨를 본다. 작년 6월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에서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회계분야 순위는 63개국 중 전년도 61위에서 46위로 15단계 상승했다. 최근 10년 중 가장높은 순위다. IMD 평가 자체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우리 스스로 회계순위가 향상된 것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회계 법인 간의 '상생협력'을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회계업계 내 분열이 발생한다면 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꼭 필요한 경우에 감독지침을 발행하고 안내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아울러 전임감사인과 후임감사인 간의 상호 존중 문화 확대와 합리적인 회계감독제도의 시행도 중요하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면, 회계업계가 과거에는 검은 돌만 많이 꺼낸 것이라면 지금은 흰 돌만 많이 꺼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흰 돌을 꺼낸다는 것은 검은 돌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흰 돌을 꺼낼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검은 돌을 꺼낼 때 상대방이 나의 우군이 되어준다. 어렵게 조성된 회계의 발전을 위한 기회가 모두의 노력을 통해 훌륭한 결실을 맺어 우리나라 회계가 선진국에 도달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이 글은 월간공인회계사 2021년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