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나토 못 믿겠다”...서방에 안보 보장 거듭 촉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에 즉각 안보 보장을 제공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푸틴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마네슈 전시홀’에서 열린 연례 기자회견에서 최근 러시아를 둘러싼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서방 국가들과의 갈등 양상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나토의 계속되는 동진을 용납할 수 없다며 서방이 당장 러시아의 안보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우크라이나를 놓고 대치된 긴장 상황에 대해서는 서구가 도발한 것이라며 현재 가스 공급 중단에 대해서도 유럽이 스스로 초래한 결과라고 못을 박았다.

이날 기자회견은 코로나19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면으로 진행됐으며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기자 507명이 참석했다. 푸틴은 영국 ‘스카이 뉴스’ 방송 기자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나 다른 주권국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어떤 보장을 해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당신들은 내게 어떤 보장을 요구하지만, 당신들은 우리에게 안보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늦지 않게 바로 지금”해 줄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를 위협하는 측은 러시아가 아니다. 우리가 미국 국경에 미사일을 배치한 적이 있는가. 미국이 먼저 미사일을 갖고 우리집 앞마당으로 들고 왔다”며 “만일 러시아가 캐나다나 멕시코와 미국 국경에 미사일을 배치했다면 미국이 어떻게 행동했겠는가”라며 이번 갈등의 원인에 대해 책임을 미뤘다. 현재 푸틴이 가장 우려하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서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크라이나에 나토의 무기가 배치될 것”이라며 우려의 원인을 시사했다.

푸틴 대통령은 나토가 더는 동진을 하지 않겠다는 1990년대의 구두 약속을 어기고 5차례나 확장을 계속 해왔다고 비난했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여전히 거대한 러시아를 두려워하는 서방 세력들이 러시아의 약화를 노리고 분열을 위해 이 같은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면서 이는 국제사회의 평화를 깨뜨리는 행동이며 서방 국가가 개입하여 러시아의 안보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러시아의 안보 보장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화상회담에서 공식적으로 이같은 사실을 요구한 바 있다. 이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와 우크라 일대의 나토 무기 배치 금지 등을 규정한 안보 보장 문서 서명을 미국과 나토 측에 요구했으며, 러시아 외무부는 15일 러·미 간 안보 보장 조약 초안과 러·나토 간 안보 보장 조치 협정 초안을 미국에 전달했다.

푸틴은 23일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는 러시아의 안보 보장 제안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긍정적인 신호를 받고 있다”며 “미국 파트너들이 내년 초에 제네바에서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벌어지는 우리의 행동은 러시아 안보에 대한 보장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협상이 아닌 무조건적인 보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토에 대해서도 “러시아는 나토의 추가적 동진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부 역시 현 긴장 사태에 책임이 있다며 이들이 친러시아 반군이 활동하는 돈바스 지역에 새로운 군사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쟁 종식과 민스크 평화협정 이행을 약속하고 정권을 잡았으면서 약속을 어기고 도리어 급진 세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재 유럽 내 가스중단 사태와 가스 가격 폭등에 대해서는 “유럽 가스 위기는 EU가 장기 계약이 아닌 시장 시스템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며 많은 EU 국가들이 우리와 장기 계약을 맺고 가스를 공급받던 관례에서 벗어나 현물 시장에서 가스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한 것이 가격 폭등이 원인이 됐다고 반박했다. 또한 “가스프롬(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이 현재 ‘야말-유럽 가스관’을 이용하는 국가들에 가스중단을 했다고 우리를 비난하지만, 이는 가스를 구매하는 독일과 프랑스 등이 구매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는 독일에 장기 계약을 맺고 현물 시장보다 3~4배, 6~7배 싼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해왔다“면서 ”유럽 구매자들은 현물 시장 가격이 7배 오르자 러시아로부터 장기 계약으로 싼값에 가스를 수입해 이웃 국가에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시세 차익을 챙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러시아가 독일에 판매한 가스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로 재판매 되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유럽은 자초한 가스 사태와 이의 해결에 스스로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현재 러시아는 중국과 안보 협력 차원에서 최첨단 무기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해선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아시아의 리더이며 시진핑 주석과 매우 신뢰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미국의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에 대해서는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은 외교적 실수“이자 ”중국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약 4시간의 기자회견에서 직접 얼굴을 비춰 최근 러시아를 둘러싼 각종 현안에 대해 상세하게 답을 했다. 코로나19 대응책과 경제 활성화 방안, 자국 내 비정부기구(NGO) 및 인터넷 통제 문제까지 40여 개의 질문에 답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 했다.


<제공 로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