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모든 비즈니스가 대부분 그렇듯이 돈을 주는 사람 즉 바이어의 입장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런 관계 속에서 성과를 이루어 내야 하는 국제 마케터는 가격을 정하기 전에 몇 가지 문제점을 확인해봐야 한다. 발볼넓은 신발, 운동화 같은 구두를 특징으로 하는 ‘비바미’는 현재 잠재 바이어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 협상에서 내가 고민하고 있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 수출 가격을 내가 정할 수있을만큼 나의 제품에 차별성이 있는 지?
- 타 경쟁자와 다른 가격을 냈을 경우 소비자들이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할지?
- 경쟁자들의 가격은 어느 정도이며, 왜 그런 가격을 냈는 지?
-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가격과 최소의 가격은 어느 정도인지?
- 제품, 촉진, 유통 등의 마케팅 수단들과 가격이 제대로 부합하는 지?
- 한국에서 유행이 뒤진 제품을 팔거나, 보다 최신의 제품을 먼저 팔아야 하는 지?
이러한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수출 가격은 생산 비용과 수요 조건에 따른 원가외에도 환율, 수출입 관세, 국제 운송 보험, 중간 유통망의 마진율, 정부의 가격 규제, 현지에서 한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등 국내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요소들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원가를 뽑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적정한 마진율을 붙이면 국내 판매가격은 대체로 정해진다. 그런데 국제 수출가격은 원가를 산정했다 하더라도 보다 많은 요소들의 가격을 더해야 한다. 이제 수출가격이 정해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1) 수출가격 누증의 문제 파악하기
수출 가격이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정해지는 지는 그림과 같다. 기본적으로 대충 훑어보아도 열댓개는 그냥 넘어간다. 게다가 해상운임과 보험료를 정하는 것만해도 인커텀스(Incoterms)라고 〈정형거래조건의 해석에 관한 국제규칙〉(International Rules for the Interpretation of Trade Terms)이 있어 11개의 규칙을 정해놓았다.
이렇게 국제 규칙이 정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국제간의 거래에서 불문명한 문구 또는 언어나 문화적인 이유로 다르게 해석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또한 포장도 장거리를 장시간동안 물건이 이송되는 해상 운송에 맞게 튼튼하면서도 가볍게 제작되어야 한다. 수출가격 산정에서 운송비와 포장비가 의외로 많이 들어간다. 게다가 수입국의 관세까지 감안하면 수출 가격은 원가에서 만만치 않게 올라간다. 일반적인 소비재의 경우 10-15%의 수입관세와 부가가치세 18-20%(유럽의 경우)까지 더하면 수입원가에 30-40%정도는 가볍게 더해진다.
내가 하는 비바미 신발의 경우 (수입 원가 eur1.00 * 수입관세 13%) * 부가세 20% = eur1.356이 세관을 통과하는 기본비용이다. 그런데 이 가격은 그야말로 원가 그 자체이다. 원가는 최소 가격이다. 아무리 못해도 이 이하로 팔면 손해이고, 소비자들이 아무리 원한다하더라도 팔 이유가 없다. 일단 수입 최소 가격이 정해졌다. 그렇다고 딱 이 가격에 팔 수는 없다. 현지에서의 경쟁자의 가격을 찾아보아야 한다.
2) 현재 경쟁가격 역산해보기
최종 소매점의 마진을 50%정도 잡아야 한다. 10유로짜리 제품이라면 5유로가 소매상의 마진이라고 대략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도매상의 마진을 35%라면 5유로 * 0.65 = 3.25유로가 도매상 공급가격인 셈이다. 어떻게 보면 쉬울 수도 있지만, 유통망이 복잡한 나라라면 각 유통단계별 거래 관습이 상이하여 추산하여 보기가 꽤 까다로울 수 있다.
3) 가격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많다
‘필맥스’ 브랜드로 수출했던 양말 한 켤레 1만8000원이면 싼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비싼 양말도 있었다. 소비자 가격이 한 켤레 5만원하는 천연 비단 양말이다. 비싸다고 해서 내구성이 더 좋거나 세탁하기에 편하지도 않다. 싸구려 나일론 양말보다 더 빨리 헤지게 되고, 세탁도 손으로 빨아야지 기계에 돌렸다가는 바로 못쓰게 된다. 그래도 꽤 팔았다.
만들기도 엄청 어렵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5만원짜리 양말을 신는 바보 멍청이가 어디 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그 시장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어디에, 누구에게 가져가면 살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 그건 시장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팔아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그저 싸구려만 찾아서는 절대로 못 찾아 낼 시장이다. 설령 안다고 해도 가격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장사꾼이나 소비자에게는 접근할 가치가 없는 시장이다. 이처럼 장사에서 가격은 제품을 둘러싼 수많은 요소들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많은 요소를 감안하면 가격을 변동시킬 만한 조건들은 많다. 이들 요소들을 적당히 조합하면 나는 다른 경쟁자와 다른 가격, 좀 더 나은 가격을 만들거나, 더 많은 오더를 받거나, 더 자주 오더를 받을 방도를 만들 여지가 많다. 가격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너무 얽매이면 오히려 장사를 망친다.
실제로 장사하다보면
정말 내가 가격을 정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내 제품에 대한 가격을 내가 못 매길 이유도 없다. 그것도 말은 쉽다. 내 브랜드를 가지면 된다. 내 브랜드로 장사 한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고, 나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한 일이다. 그 것도 말은 쉽다. 소비자들이 비바미라는 브랜드를 떠올리고 꺼벅 죽게 만들면 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그건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세월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브랜드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망가질 수는 있어도,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브랜드를 키우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OEM으로라도 오래 살아남는 게 낫다.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나만의 특성을 가지면 된다. 그러면 내 제품의 가격을 내 맘대로 정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요구해볼 수는 있고, 더 나아가 수익성 좋은 가격으로 만들 수도 있다. 가방을 보더라도 10불짜리부터 1만불짜리 가방이 있다. 어느 시장에 들어가는 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