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는 명백한 퇴행" 여성계, 尹 공약에 강력 경고

'성평등 정책 강화를 요구하는 여성과 시민모임' 기자회견

이용수 할머니, 장필화 교수, 장하진 전 장관 등 8700여명 참여

"성평등 전담 부처 더 필요한 시기” “여가부, 성평등 수준 높이는 역할"

강원여성단체 "더 강화된 성평등 정책 추진해야 할 시점... 후퇴할 상황 아냐"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정부 조직 개편 방안으로 '여성가족부 폐지' 입장을 분명히 한 가운데 여성계 인사와 시민들이 이를 비판하며 성평등 정책 강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성평등정책 강화를 요구하는 여성과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 소통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선거가 끝나자 여가부 폐지 공약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며 "성평등정책을 전담할 정부 부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오전 9시 50분 기준 시민모임이 발표한 선언문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장필화 이화여대 명예교수, 장하진 전 여가부 장관, 차경애 전 YWCA 회장,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홍찬숙 한국여성연구소장 등 8천709명이 이름을 올렸다.

시민모임은 선언문에서 "13일 대통령 당선인은 '여성가족부가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라며 "지금 우리는 성평등은 물론 민주주의와 다양성 존중 등 우리 사회가 힘겹게 이룩하고 지켜낸 가치들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음을 목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윤 당선인은 지난 13일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이제는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느냐"며 "불공정, 인권침해 (해소와) 권리구제를 위해 효과적인 정부조직을 구상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시민모임은 "대한민국의 성평등 수준은 우리의 국력과 국격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라며 "성격차 지수가 156개국 중 102위(2021년 기준), 성별임금 격차 31.5%(2020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지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둔 지금 여성할당제 폐지는 인구의 절반이며 유권자의 절반인 여성의 의견을 정치적으로 표현될 통로를 막는 것"이라며 "차기 정부가 왜곡된 인식에 근거해 한국 여성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 아닌지 한탄스럽다"고 했다.

시민모임은 여가부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여러 부처에 쪼개 나눠줘도 성평등정책이 잘 이뤄질 수 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했다. 여가부 같은 중앙 전담 부처의 총괄·조정 기능이 없으면, 개별부처의 성평등정책과 사업은 부처 내에서 주변화되거나 고립되기 쉽다는 주장이다.

시민모임은 여가부는 여성에 대한 불평등과 차별은 물론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한 부처라고 했다. 저출생 현상은 육아휴직, 보육과 교육, 가사노동 분담, 노동시장의 성별 분리, 성별 임금격차, 여성의 경력 단절 등 여러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성평등 정책을 전담하면서 협치와 통합 관점에서 풀어내는 부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민모임은 "여가부는 정부 내 각 부처와 지자체에 성인지예산, 성별영향평가 등 성주류화정책을 집행하면서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높여왔다"며 "전 세계 97개국에 여성 혹은 성평등 전담 장관급 부서가 있는데 한국이 여가부 폐지를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여가부 폐지는 성차별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뿐 아니라 협치와 통합을 저해하는 갈등 요인이 돼 대한민국의 역사를 퇴보시킬 것"이라며 "성평등 정책을 전담할 부처의 역할은 더욱 강화되고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강원여성연대 "성평등 정책 강화 없는 여가부 폐지 반대"

한편, 이날 오전 강원 여성단체도 강원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평등 정책 강화 없는 여성가족부 폐지는 성차별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 뿐 아니라 역사를 퇴보시킬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 실천을 반대하고 나섰다.

강원여성연대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여성과 성평등 정책, 여성가족부에 투사해 해결하려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 아니라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성평등 사회가 아니며, 여성가족부의 소명은 끝나지 않았다"며 "지금은 더 강화된 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야 할 시점이지 후퇴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여가부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정부 부처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며 "성평등 가치는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통합, 국민 개개인의 평안한 삶을 위해 필수적인 가치"라고 했다.

강원여성연대는 "성평등 정책을 전담할 정부 부처는 필요하다"며 "성평등 의제를 주요한 국정과제로 삼아 예산과 인력을 확대하고, 성평등 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