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평균수명이 72세 때는 77%가 가정에서 임종을 맞이하였고 13%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으나 22년이 지난 2012년(평균수명 81세)에는 70%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18%가 가정에서 임종하는 것으로 역전되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고령사회로 진행하면서 그 필요성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연명치료에 대한 의견을 밝혀두지 않으면 의학적으로 치료를 계속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 회복가능성도 없는 말기상태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치료를 통해 고통스럽고 존엄을 유지하기 어렵다. 또 가족 입장에서는 연명치료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이 어렵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인한 경제적 고통도 발생한다. 한편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는 환자의 의중을 알 수 없기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생명을 연장하는 조치를 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개인, 가족, 의료진 모두를 위하여 필요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고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반대하는 사람이 76%나 되지만 실제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100명 중 2.5명으로 저조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총론은 찬성하는데 각론에서 반대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정보부족과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일까? 필자가 생애설계 관련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을 통해 파악해 본 결과 세 가지 정도로 그 문제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우리 민족은 죽음을 터부(taboo)시해 왔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으며 죽음이란 단어를 금기(禁忌) 하였다. 오죽하면 4자를 死와 관련시켜 숫자 4를 싫어하여 차량번호판을 선택할 때 4가 들어가는 것을 고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죽음도 생의 일부인데 생로병사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야기 하지만 막상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암묵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하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저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효(孝)를 중시하여 부모 자식 간에 죽음을 서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특히 자식 입장에서는 먼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불효라는 생각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필자도 2016년 연명치료에 대해 부모님께 먼저 말씀을 드리면서 불편했지만 이해는 해주셨다. 6개월 후 명절에 만나 작성하셨는지 여쭈어 보았지만 어떻게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하셔서 자식 된 입장에서 더 말씀드리기가 어려워 그만두었다. 처음 이야기를 꺼낸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난 2019년 10월에 부모님 모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시고 2020년 설날에 등록증을 저에게 주셔서 보관하고 있다.
셋째, 연명치료에 대한 고령자의 이해 부족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홍보가 미흡하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기관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으나 아직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으며 고령자도 본인의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작성 가능한 등록기관은 대형·대학병원, 건강보험공단, 보건소 등 전국 521개소가 있으나 일반인은 잘 모르고 있으며 병원의 경우 상담 및 작성 장소가 일반인에게 잘 노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백세시대 고령사회에 살아가면서 연명치료의향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이제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며 사고사를 제외한 노화에 의한 자연사는 거의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생의 마지막 여행길인 죽음을 고통이 아닌 존엄스런 죽음을 맞이하려면 연명치료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고령사회와 더불어 웰다잉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나 일본은 종활(終活)이 사회적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19세 이상 모든 국민은 누구나 작성할 수 있으므로 본인, 가족, 의료진을 위한 최선의 방책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널리 확대해야 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년단계에서는 거림낌없이 논의될 수 있어야 하고 개인적으로 죽음에 대한 성찰을 깊게 하여 죽음을 준비하는 웰다잉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경로당, 평생학습센터, 주민자치센터 등 고령자가 많이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계몽활동을 확대해야 한다. 잘 먹고 잘 사는 웰빙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웰다잉도 중요하다. 삶의 종착지가 죽음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