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 괴롭히기?.. 심판관 결정 뒤집는 심판원

조세심판관 결정 사항, 심판원 조정팀에서 종종 뒤집혀

심판원장 결재 사항이지만, 실제는 사무관, 6급 직원 등이 주도

시행령으로 재심 사유 제한했으나 '무용지물'

재심 관련 통계도 중지.. '깜깜이' 재심

납세자 분통 "법관의 판결 법원행정처에서 재심 결정하는 꼴"

시행령만 덩그러니.. "본법부터 마련해야"

조세심판원에서 심판관들이 결정한 사항을 심판원 행정실에서 뒤집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재심'에 대한 사유를 시행령을 통해 제한적으로 정해 놨지만, 이 같은 법령이 아무렇지 않게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세불복제도는 세무서장에 제기하는 이의신청, 국세청에 제기하는 심사청구, 조세심판원에 제기하는 심판청구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행정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가기 전에 행해지는 납세자 구제 절차들이다.

납세자들은 국세청에 이의신청이나 심사청구를 제기할 수 있지만, 국무총리실 소속인 조세심판원이 조금 더 독립적이라 생각해 심판청구를 더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2020년 기준 이의신청 처리 건수는 3630건, 심사청구 처리 건수는 395건, 심판청구 처리 건수는 8513건으로 심판청구 처리 건수가 심사청구에 비해 20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 심판원의 이유 없는 재심 남발, 속타는 납세자들

재심에 대한 문제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심판원장의 지나친 재심 남발로 해당 사건에 대한 심리기간이 장기화됨에 따라 납세자의 신속한 권리구제가 지연되고 있다는 게 주요 골자다.

결국 최근 시행령이 개정됐는데, 재심 사유는 ▲중요한 사실관계를 누락했거나 사실관계의 판단이나 법령해석에 명백한 오류가 있는 경우 ▲심판청구의 대상이 되는 처분의 근거 법령이나 심리내용과 관련된 다른 법령에 대한 해석이 그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법령에 대한 해석으로서 종전의 헌법재판소 결정, 대법원 판결, 국세예규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기획재정부장관의 질의회신이나 조세심판관합동회의의 결정에서 이루어진 해석과 다른 경우 ▲심판청구의 대상이 되는 처분의 직접적인 근거 법령이나 사실관계에 관하여 종전의 법원 판결 또는 조세심판원 결정과 다른 해석을 하거나 사실관계를 달리 판단한 경우 등으로 한정됐다.

즉, 중요한 사실관계를 누락하거나 법령해석에 명백한 오류가 있는 경우 대법원 등의 판결과 다른 경우 등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 심판부에 다시 심리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세심판원 재심의 법적 근거는 국세기본법 본법에는 규정된 바 없고 국세기본법 이와 같이 시행령 에서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은 본래 본법에서 위임을 한 사항에 대해 세부적으로 정하는 것인데, 조세심판원 재심과 관련해서는 본법에 아무런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국세심사청구는 심판청구와 다르게 국세기본법 본법에 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 사유와 절차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국세기본법에 따르면 국세청장은 국세심사위원회 의결이 법령에 명백히 위반된다고 판단하는 경우 구체적인 사유를 적어 서면으로 국세심사위원회로 하여금 한 차례에 한정하여 다시 심의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

◆ 2급 심판관 결정을 5급 사무관이 재검토? 재심은 조세심판원장의 결재가 필요하지만, 말 그대로 심판원장은 결재 권한만 있을 뿐 구체적인 실무는 주로 행정실 조정팀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관(5급)과 6급 주무관들이 외부위원까지 포함된 심판관 회의 결과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셈. 법원에서 재판부의 재판 결정을 법원행정처에서 다시 재판하라고 하는 식이다.

상황이 이렇자, 납세자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한 납세자는 "조세심판결정의 경우 국세기본법 본법에 아무런 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재심사유도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한차례 재심을 넘어 두 세차례 재심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조세심판원장과 행정실 사무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심판관회의에서 다시 기각할 때까지 재심하는 것이다. 한 납세자의 경우 세번의 재심을 받고 합동회의를 열어 결국 기각시킨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재심 결과에 대한 통계가 '깜깜이'로 처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9년까지 매년 발표되어 오던 재심 건수는 조세심판통계연보에서 2020년부터 조세심판통계연보에서 삭제됐다. 행정실 조정 검토일수 통계 역시 2019년을 마지막으로 발표되고 있지 않다.

심판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심리재개(재심) 건수는 작년과 재작년의 경우 자료를 별로도 뽑고 있지 않다. 아마 예전하고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본다"며 "통계연보에 추가적으로 내용(현장확인조사 등)이 들어간 게 있어서 정리하면서 빠진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주된 재심 사유에 대해선 "어떤 이유가 많다든지 그런 통계나 자료는 별도로 정리하지 않고 있다"며 "조사서를 작성하면서 내용을 요약하다보면 중요한 내용이 빠질 수도 있어 재심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세심판통계연보에 따르면 재심 건수는 2014년 473건, 2015년 390건, 2016년 221건, 2017년 209건, 2018년 211건, 2019년 116건으로 감소 추세에 있었다. 반면, 장기미결사건 현황은 2018년 1.7%에서 2019년 2.5%, 2020년 2.4%, 2021년 4.2%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세심사위원회의 심사청구에 대해 국세청장의 재심 건수는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청장은 한 차례에 한정해 다시 심의할 것을 요청할 수 있는데, 통계를 굳이 내고 있지는 않지만 최근 몇년 간 재심 요청은 한 건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 납세자들 "심판원의 '사법농단' 뿌리 뽑아야"

납세자들은 심판원의 무분별한 재심을 '사법농단'이라고 표현하며, 강력히 제한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납세자는 "조세심판관은 법관에 준하는 독립된 지위에서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판단한다"며 "사법부의 경우 재판과정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하는 경우 사법농단으로 준엄한 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조세심판원은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결정한 심판관들의 결정을 사무관과 6급 직원들이 재심을 하라고 분류하는 것에 다름없다. 사법농단이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세심사청구는 조세심판청구와 다르게 국세기본법 본법에 재심사를 청구할 수 있는 사유와 절차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며 "국세심사와 이의신청의 경우 재심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조세심판원의 심판관들만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있든지 아니면 심판원장과 행정실 사무관들이 전횡을 하든지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시행령으로만 규정하고 있는 심판원의 재심 사유를 국세기본법에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 납세자는 "올해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재심사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했지만, 본법에는 규정이 없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국세심사 규정과 같이 본법에 규정을 두어 본법의 위임을 받도록 해야 한다. 지나치게 포괄적인 재심 사유도 구체적으로 한정하고 재심 사유도 명확히 제시해 근거를 남겨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조세심판원의 잘못된 행정은 결국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전문조세법원, 혹은 행정심판기능을 통합하는 기구를 두는 방안이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며 납세자 권리구제 절차를 충실히 수행하지 못할 경우 심판원은 존립에 대한 문제까지 거론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