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테라 쇼크로 스테이블코인이 더 이상 본래 이름처럼 일정한 가격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이들을 융통해 예대사업을 영위하던 탈중앙화 금융 디파이 생태계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이 법정화폐인 경우 환매 요청으로 인한 준비금 매각 과정에서 실물 경제에 위기가 전이될 우려가 커지자 한미 금융당국이 규제에 나섰다.
◆ 한·미 양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중간점검
미 행정부는 앞서 지난해 11월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는 입법을 제안한 바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를 예금보호 대상 은행으로 간주해 규제하고,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예금보험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규제책을 내놨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자, 예탁기관, 소유자에 대해 감독과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이 함께 논의됐다.
◆…미 대통령금융시장 실무그룹(PWG) 보고서. 사진=미 행정부, 신영증권
루나테라 쇼크 이후 뉴욕주에서는 미국에서 최초로 스테이블코인 가이던스가 발표됐다. 주요 내용으로 스테이블코인 가격을 담보해 줄 준비금에 대한 규제책이 담겨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량만큼의 준비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준비금의 시장 가격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금액과 일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준비금은 매달 한 번 이상 감사받아야 하며, 각 주 혹은 연방이 인정하는 예금 및 수탁기관에 보관돼야 한다. 준비금은 만기 3개월 이하의 미 국채, 중기 국채, 장기 국채로 제한된다.
◆…뉴욕 금융감독청 금융서비스부 가이던스 주요 내용. 사진=뉴욕 금융감독청, SK증권
대한민국의 경우 디지털자산시장을 규제하는 법안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은 관계로 5대 가상자산거래소(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고팍스)로 구성된 공동협의체가 자율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협의체는 가상자산 상장부터 상장폐지 단계까지 공통된 평가항목과 심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한편, 상장된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주기적인 평가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번 사태와 같이 코인런 위기가 발생할 경우 입출금 정책, 거래지원 종료일 등을 공동 대응할 수 있는 Contingency Plan(비상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협의체는 또한 가상자산 경보제를 도입해 시장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거래소 플랫폼에서 백서 및 평가보고서를 제공하기로 했다.
◆…5대 가상자산거래소 대표들이 22일 여의도 코인원 본사에서 열린 '5대 디지털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 출범식'에서 업무협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내 가상자산 규제 법안이 담길 디지털자산 기본법의 경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행정명령에 따른 가상자산 관련 보고서가 오는 10월 나오면 이를 참고해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지난 19일 금융정보분석원과 금융감독원 등 각 부처의 가상자산 담당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해 SEC를 방문, 가상자산 관련 규율체계를 논의하면서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위한 국제 공조를 한층 강화했다.
◆ 루나·테라 쇼크 재발 막으려면
담보가 부족한 스테이블코인은 결국 시장에서 외면받아 퇴출된다. 이것이 루나·테라 쇼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 것이다.
규모의 적정성 여부를 떠나 담보로 마련한 준비금의 성격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가격 변동성이 높은 비트코인을 준비금으로 보유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가 보여줬다. LFG가 테라USD 가격을 방어하고자 비트코인을 매도하는 시점에 코인 가격이 급락해 준비금이 쪼그라들게 된 것이다.
좀 더 넓은 차원에서 바라보면 비트코인의 급락이 나머지 알트코인의 가격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해 디지털자산 시장의 약세를 불러왔다.
같은 기간 달러 자산을 담보로 하는 스테이블코인 테더에 디페깅이 발생한 문제의 핵심도 이 점에 있다.
824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갖고 있어도 현금 및 은행예금이 41억달러에 불과해 대규모 환매 요청 등 위기가 발생하면 대응하기 어렵다. 테더의 경우 실제 은행계좌에 준비해놓은 자산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로부터 벌금을 부과받은 전력도 있어 신뢰도 또한 낮은 상황이다.
테라USD는 담보 없이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루나 토큰을 함께 출시했고, 테라 블록체인 기반 디파이 앵커프로토콜에서는 연 19.5% 예금상품을 제공했다. 미러프로토콜에서 내놓은 미국 상장 주식 가격을 추종하는 파생상품 mAsset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이들이 테라USD의 가격을 담보한 게 아니라 테라USD가 오히려 이들의 가치를 담보하고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테라USD 가격이 1달러 밑으로 떨어지자 루나가 급락, 디파이 내 코인런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사태가 벌어진지 한달 반 정도 지난 현 시점에 향후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중간 점검을 통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담보가 부족한 스테이블코인의 퇴출이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단추다. 조금 과격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야 고수익을 보장하는 디파이 상품들과 그것들을 통해 가치를 담보하려는 스테이블코인도 함께 사라진다.
뿌리가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이 기반이 될 때 블록체인 기술로 구현된 탈중앙화금융이 지속가능성을 갖고 기존 금융 시장의 대항마로 바로설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