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종부세'… 부작용 우려 속 '가시밭길' 예고

정부, 다주택자 종부세 중과세 폐지 등 종부세 완화 개정안 발표

추경호 경제부총리 "비정상화의 정상화"

민주당 "다주택자 불로소득 확대 동의 안 해"

정의당 "보유세 감세가 어떻게 침체에 대비한 정책인가"

매물 거두는 다주택자들.."부동산 시장 위축 우려"

"지난 몇 년간 종부세(종합부동산세)에 지나치게 의존해 세제 운용을 했다. 결과적으로 종부세가 하나의 징벌적 과세가 됐다. 정말 비정상적으로 운영됐다"

"주택수에 따른 세율 체계를 개편해 주택 가액에 따라 종부세를 부과하는 것이 그나마 정상화할 수 있는 길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18일 열린 '2022년 세제개편안' 사전 상세브리핑에서 한 발언들이다. 추 부총리는 이날 현행 종부세 제도를 '징벌적 과세',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하며, '정상적'인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상화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사실상 종부세 부담을 대폭 줄이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내놓은 첫 번째 세제개편안은 '감세'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올려놓은 세부담을 박근혜 정부 시절로 돌려놓겠다는 의지가 세제개편안 곳곳에 담겼다. 법인세도 감세, 소득세도 감세, 가업상속과 관련한 상속세도 감세, 주식과 관련한 각종 세금도 감세다.

특히 종부세는 '천지개벽'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대폭 개편될 예정이다. 세율 인하와 기본공제 인상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를 없앤 부분이 가장 눈에 띈다. 주택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합산가액에 따라 세금을 낼 뿐, 1주택자와 같은 세율로 세금을 내는 구조로 설계된 것이다.

종부세에 대해 평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재산세의 통합에 앞서 우선적으로 다주택 중과세를 폐지한 것는 세제합리화와 부동산시장 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지만, 이번에도 '부자감세'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실수요자 위주의 부동산 시장 조성과는 반대로 가는 정책"이라는 지적과 함께 "사실상 종부세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벌써부터 국회 통과 과정에서의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 종부세 어떻게 바뀌길래?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이번 종부세 개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를 없앤 부분이다.

현행법은 종부세법에 따르면 2주택 이하 보유자에 대해 0.6%~3%의 세율이, 3주택 이상 보유자(조정대상지역은 2주택자 포함)에 대해서는 1.2~6%의 세율이 각각 적용되고 있다. 법인의 경우 2주택 이하는 3%, 3주택 이상은 6%의 단일세율이 적용된다.

하지만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앞으로 주택수와 상관없이 과표 3억원 이하는 0.5%, 3억원~6억원은 0.7%, 6억원~12억원은 1%, 12억원~25억원은 1.3%, 25억원~50억원은 1.5%, 50억원 초과 94억원 이하는 2%, 94억원 초과는 2.7%의 종부세율이 적용된다. 법인도 주택수와 상관없이 2.7%가 적용된다. 아울러 세부담 상한은 현행 일반 150%, 다주택 300%에서 150%로 통일된다.

종부세 기본공제금액도 높아진다. 현재는 6억원이 기본적으로 공제되고 1세대 1주택자의 경우 추가로 5억원이 공제돼 11억원까지 공제되는데, 개정안에는 9억원을 기본적으로 공제하고 1세대 1주택자는 3억원을 추가로 공제해 12억원까지 공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법인의 경우는 기본공제가 없는 현행제도가 유지된다.

아울러 1세대 1주택자는 현행 11억원에 3억원을 추가로 공제하는 특별공제도 한시적(올해 납세의무 성립분)으로 도입된다. 즉 1주택자는 공시가격 14억원 주택을 보유하고 있어도 올해분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

1세대 1주택 고령자 및 장기보유자의 경우 종부세를 처분시 까지 납부유예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실렸다. 요건은 만 60세 이상 또는 주택 5년 이상 보유자이며, 총급여 7000만원(종합소득금액 6000만원) 이하인 자다. 일시적 2주택, 상속주택, 1세대 1주택자가 지방 저가주택을 함께 보유하는 경우는 주택수에서 제외하는 특례도 담겼다.

기재부가 제시한 종부세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1세대 1주택자(고령자 장기보유 세액공제 50%, 공정시장가액비율 80% 가정)의 경우 공시가격이 15억원일 경우 개정 전 98만원에서 37만원으로 종부세가 낮아진다. 20억원은 338만원에서 148만원으로, 25억원은 674만원에서 330만원으로, 30억원은 1082만원에서 556만원으로 각각 세부담이 감소한다. 대략 절반 안팎으로 세부담이 줄어든 셈이다.

개정으로 9억원까지 종부세를 내지 않는 인별 1주택자는 공시가격이 10억원이라면 개정 전에는 197만원을 냈지만, 개정 후에는 25만원만 내면 된다. 15억원은 677만원에서 193만원으로, 20억원은 1349만원에서 515만원으로, 25억원은 2165만원에서 908만원으로, 30억원은 2981만원에서 1417만원으로 종부세가 감소한다. 1세대 1주택자 보다 세금 감소폭이 큰 셈이다.

중과세가 없어지면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보는 다주택자(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경우, 공시가격합산액이 10억원인 경우 개정 전 550만원을 내야 했지만, 개정 후에는 33만원만 내면 된다. 합산액이 15억원이면 1596만원에서 222만원으로, 20억원이면 3114만원에서 553만원으로, 25억원이면 5133만원에서 951만원으로, 30억원이면 7151만원에서 1463만원으로 종부세가 대폭 줄어든다.

한편, 정부는 올해 종부세 계산시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 비율도 100%에서 60%로 낮추기로 했다. 기재부가 발표한 시뮬레이션은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80%로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종부세 과세 대상자들의 세부담은 시뮬레이션 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 곳곳에서 우려 목소리.. 벌써 매물 감소 현상까지  정부는 '정상화'라고 표현했지만,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을 대폭 깎아준다는 점에서 '부자감세'라는 저항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종부세 인하 소식에 매물을 거두는 다주택자들이 늘어나면서, 주택거래 활성화 측면에서도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일단 국회 통과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주택자 종부세 완화에 대해 반대입장을 펼치고 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9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다주택자의 종부세 누진제도를 건드려 결과적으로 다주택자의 세부담을 완화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1주택자나 소액 다주택자 보호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상위 1%, 넓게 상위 10% 다주택자의 불로소득을 확대하는 방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최근 종부세 부과 기준을 상향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종부세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1세대 1주택자에 대한 완화만 생각하고 있을 뿐, 다주택자에 대한 대대적인 세부담 완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도 지난 20일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세금 부담이 줄어들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감세에만 몰두할 때가 아니다"라고 반대의 뜻을 밝혔다.

정의당은 종부세 완화에 대해 더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5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부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며 "가장 큰 문제는 종부세 중과 폐지와 공제분 인상 등 보유세 완화"라고 콕 집어 말했다.

그는 "백번 양보해 법인세 감세와 금융투자소득세 유예는 투자 감소를 막는다는 명분이라도 있다. 그러나 보유세 감세가 어떻게 인플레를 막고 침체에 대비한 정책입니까?"라고 물은 뒤 "주거목적 이외 추가적 아파트는 묻지마 투기라는 점에서 현대판 튤립 투기 사태다. 이를 조장하는 계급입법, 비생산적인 투기수요만 자극하는 포퓰리즘 입법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힐난했다.

학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학계 원로이자 재정학 전문가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지난 22일 개인 홈페이지에 "세금 중과만이 투기 수요를 잡는 유일한 해법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주택 시장이 완전한 안정 기조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부담 대폭 경감 조치는 간신히 안정 기조를 찾아가는 주택시장에 또 다시 기름을 들이붓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세제 완화는 실수요자 위주의 부동산 시장 조성과는 반대로 가는 정책이어서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당분간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더 이상의 가격급등은 어렵겠지만 금리가 하락한다면 언제든지 새롭게 투기가 발생할 불씨를 남겨두는 꼴이다. 금리정책이 부동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대출정책과 부동산세제 정책이 제대로 작동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종부세 부담 완화로 인해 매물을 거두는 다주택자들이 생기면서,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정부가 종부세 인하 계획을 발표하기 전인 지난 20일 서울 아파트 매물 건수는 6만4668건이었으나, 지난 25일 6만2709건으로 3% 감소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에서도 모두 아파트 매물 건수가 줄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매수 심리가 한풀 꺾인 시점에서 보유세가 감소한다고 해서 주택을 더 많이 구입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오히려 한숨 돌린 다주택자들이 내놓았던 매물을 거두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거래 절벽인 상황에서 매물마저 감소하면 부동산 시장은 더욱 침체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동산에 대한 투기를 방지하려면 보유세는 높이고 거래세는 줄여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정부에서 취득세와 양도세를 완화한다고 해도 종부세와 재산세까지 낮춰 버리면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