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기'에 여야 외교문제 정쟁만... 국민 '한숨' 깊어져

국회, 29일 본회의서 박진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 尹, 거부권 시사

尹대통령 "박진은 탁월,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국민 판단할 것"

박진 해임 놓고 정국경색... 여야, 격한 공방 주고 받아

尹대통령 지지율 20% 초반 추락... 대통령실·정부여당 '곤혹'

국회는 29일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야당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만이 참여해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외교 실패 책임을 묻는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폭거"라며 퇴장했고, 정의당은 "이번 외교문제의 책임이 박 장관이 아닌 윤 대통령에 있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박 장관 해임 건의안은 결국 재석 170명 중 찬성 168석, 반대 1석, 기권 1석으로 통과됐다. 앞서 민주당은 이틀 전 소속 의원 169명 전원 명의로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이번 영국·미국·캐나다 3국 순방외교를 '빈손·굴욕·굴종외교'로 비판함에 더해 '비속어 외교참사'라고 규정하고 반드시 책임소재를 따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고, 국민의힘은 '거대야당의 대선 불복·국정운영 발목잡기'로 맞불을 놓으면서 대치하고 있다.

국회 차원에서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되면서 결국 윤 대통령의 결단만 남은 셈이다. 전날 출근길 약식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박 장관에 대한 강한 신임을 나타내면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 건의는 법적 강제성은 없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사국들이 전부 잘 된 것으로 평가하는데 우리가 스스로를 폄하하는 것은 좋지 않다"라며 박 장관을 두둔하고 나섰다.

박 장관 해임 건의안에 대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이 발동된다면 여야 대립은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169석의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의 협력이 없으면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박진 해임 놓고 정국경색... 여야, 격한 공방 주고 받아

김진표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한 이날 박 장관 해임건의안에는 이번 윤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외교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국격 손상과 국익 훼손이라는 전대미문의 외교적 참사로 끝난 데 대하여 (박 장관이) 주무 장관으로서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해임건의안 가결 직후 국민의힘은 "국정운영 발목잡기를 중단하라"고 반발했고,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은 박 장관을 즉시 해임하라"고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토론과 협의를 통해 운영돼야 하는 국회가 '정부 발목꺾기'에만 집착하는 민주당의 폭거로 또다시 무너졌다"며 "민주당이 주장하는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 사유는 그 어디에도 합당한 이유라곤 찾아볼 수 없다"고 반발했다.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SNS에 "거대 야당의 국정 발목잡기는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며 "민주당이 '협치'라는 말을 꺼낼 자격이 있나. 국민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나"라고 질타했다.

권성동 의원도 "정말 '외교참사'라면 차라리 장관 탄핵을 하지, 왜 해임 건의를 했나"라며 "정부는 흔들고 싶은데 역풍은 두려워, 의원 169명이 모여 고작 생각해낸 것이 이처럼 알량한 정치적 과잉액션"이라고 지적했다.

전주혜·박수영 의원 등도 민주당이 여당 시절 (다수 의석) 무소불위의 힘으로 임대차법, 공수처법, 검수완박법을 밀어붙였고, 이제 야당이 되자 윤석열 정부가 아예 아무 일도 못하도록 손발을 묶으려 한다고 분개했다.

아울러 민주당이 외교를 정쟁에 이용하는 바보짓을 한 것은,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반(反)헌법적 행위라고 질타했다. 이에 더해 죄어오는 사법당국의 칼날이 두려운 '이재명 일병'을 구하려는 단말마적 광기‘라고 힐란하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까지 소환하기도 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출신인 윤상현 의원은 SNS에 "더불어민주당이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안을 빙자한 ‘외교완박(외교 완전 박살)’을 통과시켰다"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그러면서 "미국 부통령이 첫 공식 방한 중"이라며 "미국을 상대로 국익외교를 펼쳐야할 선봉장인 외교부 장관의 손발을 묶고 민주당이 노리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외교참사를 당하기를 바라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박 장관이 윤 대통령의 외교참사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박 장관 즉각 해임을 촉구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은 박진 장관을 즉각 해임하라"며 윤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을 즉각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경태 최고위원도 "전대미문의 외교참사에 대해 박진 장관은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뒤, 이에 더해 김성환 국가안보실장과 김태효 안보실 1차장, 김은혜 홍보수석비서관 등 외교참사 책임자에 대한 경질을 강력히 촉구했다.

정성호 의원도 SNS에 "박 장관만 본다면 좀 안타깝다. 진짜 사고 친 분은 따로 있는데 혼자 다 뒤집어쓰고 있으니 억울할 노릇이겠다"라며 "자신의 무능과 무지로 초래한 참사를 부하가 책임지도록 만드는 지도자가 나라와 국민을 책임질 수 있겠는가. 걱정이다"라고 윤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김두관 의원은 19년 전인 2003년 9월 당시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행자부장관이던 자신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가결 처리한 점을 거론한 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 바로 박진 외교부장관이었다"라며 "해임안이 통과되자 박 대변인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승리'라고 논평을 했다. 당시 저의 해임은 누가 봐도 부당하고 정치적인 것이었지만, 저나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박진 장관께 그대로 돌려드리면서 인간적인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것 또한 정치"라고 덧붙였다.

전용기 의원 역시 "해임 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승리'라며 이념갈등과 치안부재 상황을 유발한 주무장관에게 책임을 물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며 박 장관의 과거 발언을 꼬집었다.
 

尹대통령 "박진은 탁월", 거부권 행사 분명히 해... '여야 협치' 물 건너갈 듯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출근길에 '(박진 해임건의안)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여야 협치가 멀어진다는 지적이 있다'는 기자들 질문에 "박진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이고 건강이 걱정이 될 정도로 국익을 위해서 전 세계로 동분서주하는 분"이라고 박 장관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표결 처리하려는 것에 대해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국민들께 분명하게 아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국회가 통과시키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역대 국회에서 국무위원(장관) 해임건의안을 의결한 사례는 총 7건이며, 이 중 5건은 해당 장관의 자진 사퇴로 마무리됐다.

2000년 이후 사례는 임동원 통일부장관(김대중 정부·2001년),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노무현 정부·2003년),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박근혜 정부·2016년) 3건으로 이중 임동원·김두관 장관은 국회의 해임건의안이 법적 구속력이 없었음에도 자진 사퇴의 길을 택했다.

반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받았던 김재수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은 거부권이 행사되면서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했던 민주당과 정부여당의 협치는 더욱 어려워졌다.

한편 국민의힘은 30일 오전 '김진표 국회의장 사퇴 촉구 결의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직권 상정한 김 의장과 민주당에 대해 싸잡아 공세를 취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취재진과 만나 "전날 김 의장은 민주당이 제기한 박진 장관 해임건의안을 국민의힘과 제대로 협의하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의사일정 변경에 동의해줬다"며 "국회의장의 중립성을 요구하는 국회법 취지를 정면으로 배치했다"고 김 의장 사퇴 촉구 배경을 설명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이날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169석 다수당의 ‘갑질 횡포’와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립성 상실"이라며 "헌법상 국회의 해임건의권 사문화와 대통령과 정부에 타격을 가하려는 민주당의 정략만 남았다"고 비판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신(新)3고'에 더해 인건비와 재고비용까지 높아지면서 우리기업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에 국회는 연일 정쟁으로 복합위기 해결 대응책 마련을 위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 순방 중 터져 나온 비속어 사용에 대한 사과를 거부하고 있는 윤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후 최저치인 20%대 초반까지 추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와 윤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당혹케하고 있다. 30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27~29일 사흘간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전주보다 4%포인트 추가하락한 24%로 나타났다. 전주 5%포인트 하락까지 합치면 비속어 파문으로 2주새 9%포인트나 폭락한 셈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 24%는 8월 첫째주에 이은 두번째로 취임후 최저치다.

부정평가는 65%로 전주보다 4%포인트 높아졌고, 그 외는 의견을 유보했다(어느 쪽도 아님 3%, 모름/응답거절 8%).

직무수행 부정평가자(652명, 자유응답)는 이유로 '외교'(17%)를 가장 많이 꼽아 윤 대통령이 비속어 사용을 사과하지 않고 있는 것이 지지율 급락의 주요인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중도층 부정평가가 73%로 높아져, 중도층의 이반이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의 5박7일 해외순방이 우리나라 국익에 도움됐는 지에 대해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54%, '도움이 됐다'가 35%로 부정평가가 절반을 넘었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동반 폭락했다. 정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 36%, 국민의힘 31%, 지지하는 정당 없는 무당(無黨)층 27%, 정의당 5% 순이었다.

윤 대통령 지지율(24%)과 국민의힘 지지율(31%)를 합치면 55%로 국정운영의 마지노선인 50%선을 겨우 5%포인트 정도 넘기는 수준으로 국정운영 동력이 힘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정치 지형에서 대통령 지지율 30%는 최소한의 기준선으로 이 선 이하로 떨어진다는 것은 지지층이 소수가 된다는 의미다.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후 첫해 2분기 지지율을 살펴보면 윤 대통령의 취임 첫해 2분기(2022년 7~9월 평균) 직무수행 긍정률은 29%로, 17대 이명박 대통령(21%·2008년 5월 31일)에 이어 최저 수준이다.

가장 높은 긍정률은 14대 김영삼 대통령(83%·1993년 6월), 15대 김대중 대통령(62%·1998년 6월), 13대 노태우 대통령(57%·1988년 6월), 18대 박근혜 대통령 (51%·2013년 4~6월 평균), 16대 노무현 대통령(40%·2003년 5월 31일) 순이었다.

이번 조사는 유무선 병행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11.2%였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