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국민이 내는 세금 규모가 적정한지와 전반적인 감세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 국제적으로 낮은 수준>
국가 간에 세금부담 수준을 비교하는 지표로는 조세부담률이 널리 이용된다. 조세부담률은 소득 중에서 세금으로 얼마만큼 부담하느냐를 나타내주는 지표로 국민이 1년 동안 낸 세금총액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국민의 부담수준을 더 정확하게 나타내는 지표로는 국민부담률이 이용되고 있다. 국민부담률은 국민이 낸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이러한 수치를 근거로 바로 증세를 정당화하거나 감세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조세부담 수준의 적정성은 그 나라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적정 조세부담 수준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재정여건을 살펴보아야 한다.
<한국의 재정여건과 적정 조세부담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국가로서 매년 막대한 국방비(22년 54.6조원, GDP 대비 2.6%)를 지출하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방비 규모는 세계 10번째이며 이중 GDP 대비 비중은 5번째로 높은 국가이다.
또한 빠른 속도로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재정수요 역시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재정수입이 재정지출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매년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하고 있고 이로 인해 국가채무가 급증하면서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년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는 110.8조에 이르고 국가채무는 1,068.8조로서 GDP의 50%를 넘나들고 있다. 사실상 국가가 최종 책임져야 할 공공부문 부채까지 포함하면 국가채무는 천문학적 규모이다.
이러한 재정적자나 국가채무의 증가 원인이 재정규모가 비대해서 생긴 것이라면 재정지출을 줄여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GDP대비 일반정부 총지출이 우리나라는 37.7%(21년 기준)로서 OECD 평균 46.4%보다 크게 낮다. 오히려 정부의 더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작은 정부라는 얘기이다. 저부담 저복지에서 적정부담 적정복지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재정규모를 늘려가야 할 상황이다.
요약하면 한국의 재정여건과 재정규모 그리고 국제적인 조세부담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국의 현재 조세부담률은 적정수준보다 낮다. 따라서 현재보다 조세부담률을 낮추는 대규모 감세 조치는 극히 경계해야 한다. 민생안정과 경제활력 제고 등을 위해 감세 조치가 불가피하다면 대체 세원을 발굴하여 조세부담률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정책 제언>
역사적으로 보면 조세정책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한 경우가 많다. ‘세금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는 역사적 교훈이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에 몇 가지 제언을 드린다.
무엇보다도 먼저 중장기 조세부담수준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해야 상황에 따라 조세정책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예측성 일관성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첫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임기 중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에 대한 큰 그림과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는 정권에 따라 조세정책이 오락가락한 경험이 있다. 보수정권인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에서는 작은 정부와 감세정책을 견지해왔고, 진보정권인 노무현정부와 문재인정부는 일하는 정부와 증세 정책을 추진해왔다. 세금 내기를 좋아하는 국민은 없다. 그렇다고 조세정책이 대중적 인기나 표심 위주로 흐르다 보면 나라가 흔들리게 된다. 조세정책은 정권 차원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 백년대계를 보고 고독한 길을 가야 한다.
둘째, 조세는 재정지출과 비교해 경기조절기능이 매우 제한적이고 간접적이므로 꼭 필요한 경우에 한시적이고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여유 있는 경제주체로부터 적정한 세금을 거두어 재정지출을 통해 시급한 민생안정분야에 사용하는 것이 경기회복에 더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도 완화할 수 있다. 조세정책의 왜곡과 남용도 방지할 수 있다.
대기업, 고액재산가,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를 통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낙수경제론은 질 좋은 성장을 저해하고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며 무엇보다 재정건전성을 무너뜨리므로 신중해야 한다.
셋째, 세금의 생명은 공평성이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데도 많은 국민들이 세금이 무겁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금부담이 불공평하고 걷은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조세부담은 국가의 조세부담률 수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왜 내 세금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가? 왜 과거보다 세금이 크게 증가했는가? 왜 내 세금을 이런 곳에 낭비하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따라서 조세당국은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백성은 배고픔보다 불공정한 것에 분노한다)’의 교훈을 항상 가슴에 새겨야 한다.
소위 부자감세가 비판받는 것도 경기활성화 효과에 견줘 조세부담의 공평성과 소득재분배 기능을 결정적으로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재정은 국가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데, 우리나라 재정의 소득재분기능은 OECD국가 중 최하위수준이다.
결론적으로 세금은 국민의 삶과 기업의 경제활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규모의 적정성’(조세부담률)과 ‘부담의 공평성’(응능부담의 원칙)이 요체이다. 세금이 과중하거나 공평하지 못하면 조세저항을 야기하고 과소하면 나라 살림을 뒷받침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우선 적정 부담수준에 대한 장단기 거시목표를 확실하게 제시하고 이 틀 속에서 각자의 능력에 맞게 공평하게 부담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조세정책의 일관성 안정성 예측성을 확보해야 조세저항과 시장왜곡을 최소화하면서 재정건전성을 뒷받침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