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硏, '우리나라 국민들의 납세의식 조사' 발표
'국세청에 적발되지 않아도,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시겠습니까.'이 질문에 국민 절반 가까이는 소득을 숨길 것이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국세가 부과·고지되는 세목(稅目)이 아닌 자진신고납부 세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세무정책에 중요한 시사성을 주는 지표일 수밖에 없다. 탈세했을 때 적발될 가능성이라든지 탈세에 대한 처벌 강도가 낮다고 인식한 국민이 적지 않는 점은, 납세자들의 심리적 요인에 영향을 끼쳐 향후 납세순응도를 더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으로 인식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9일 공개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납세의식 조사' 결과를 통해 "현금 매출 1000만원에 대해 국세청 적발 가능성이 없을 경우, 48.5%는 사실대로 신고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사진 연합뉴스)
9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공개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납세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금매출 1000만원에 대해 국세청 적발 가능성이 없을 경우에 사실대로 신고를 하겠느냐'는 질문에, 국민 48.5%는 "신고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만 25~64세 성인 남녀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다.
사실대로 신고하겠다는 응답자는 51.5%였는데, 이전 조사(2015년) 때보다 9%포인트 오른 수치다. 조세연은 "올해 질문에서는 과거 질문과 다르게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이라는 단서를 단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고 했다.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도 외면받고 있다. 국민개세주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서 문제냐는 질문에, 전체의 42.1%만 '그렇다'고 했다. 소득 8000만원 이상 구간에서 문제가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47.4%로 가장 높았다. 우리나라는 근로소득자 중 면세자 비율이 40%(2020년 기준, 37.2%)에 육받하는데, 이런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자료 한국조세재정연구원)
탈세하는 사람들이 과세관청에 발각될 가능성에 대해 '낮다'고 인식한 국민은 70%였다. 조세연은 "국세청에 대한 신뢰도와 탈세적발 가능성이 높을수록 성실납세의향, 납세의식, 납세순응행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소득을 신고하지 않고 적발됐을 때 내려지는 벌금이나 처벌에 대해서는 '낮은 수준'이라는 응답은 49.7%로, 높은 수준의 2배 이상이었다.
과거와 비교해 '부정직 납세자'에 대한 대응이 엄격한지를 질문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46.2%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직업별로는 사업자·자영업자(57.4%)에서 이런 인식이 컸고, 근로소득자(41.7%)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국민 10명 중 4명 "세금납부 때,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금을 납부할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국민의 기본의무이므로 전부 납부해야 한다'는 응답(42.0%)이 가장 많았는데, 직전 조사(40.6%) 때보다 소폭 올랐다. 하지만 2012년(64.8%)에 비해서는 22.8%포인트나 낮아졌다. 다만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37.2%)',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서 내고 싶지 않다(11.0%)'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조세연은 "이 답변은 내재적인 의식을 물어본 것이고 실제 납세순응여부를 물어본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경제적 능력에 따른 세금 부담의 형평성은 부정적인 대답(51.5%)이, 긍정(48.5%)보다 앞섰다. 다만 부정적인 응답은 2015년 81.8%에서 크게 줄어든 수치였다. 수직적 형평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게 조세연의 설명이다. 경제적 능력이 비슷한 사람과 비교해서 '세금부담이 비슷하다'고 답한 비율은 53.1%로, 이전 조사(58.5%) 때보다 다소 줄었다.
국세청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신뢰한다는 34.7%·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22.2%였다. 신뢰하는 응답은 2015년(13.7%) 때보다 늘었고, '보통이다(41.3%)'의 답변까지 합하면 10명 중 8명(77.8%) 가량이 국세청을 신뢰하고 있는 모습이다. 소득수준별로는 1000~4000만원 미만 계층이 가장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나왔다. 신고의 편의성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세무신고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의 양에 대한 응답을 보면, 78.2%가 세무신고의 편의성에 대해 적절하다거나 적은 편이라 답했다. 2015년 조사 때는 이 응답 비율은 58.4%였다.
◆…(자료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은 "개인의 가치관은 오랜 기간에 걸쳐 생성되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내재적인 의식은 대부분 단기적으로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며 "납세의식을 제고시키기 위한 정책은 중장기적이며 종합적인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연령, 교육, 성별, 정부의 신뢰도 등이 납세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가별로 볼 때는 조세부담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납세의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조세연은 또 "조세제도가 수직적·수평적으로 공평하다는 인식을 주어야 납세의식이 제고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소득세의 누진도, 자산에 대한 과세의 경중 여부,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의 세금납부 투명성 등 과제를 손질하는 부분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세금의 종류가 많고, 각종 공제를 비롯한 조세특례 등이 세제를 복잡하게 만들어 납세자 스스로 납부액을 계산하기 어렵다"며 "적어도 납부액이 어느 정도 될 것이라는 것은 스스로 가늠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