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 회장 '1700억 패소'...국민연금 3대주주 역할론 대두

거버넌스포럼 "대법 판결, 기업거버넌스 역사에 일대 도약"

"2대주주 쉰들러 10년 소송하는데...3대주주 국민연금 역할 안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인 쉰들러 그룹과의 소송에서 최종 패소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 넘게 배상하게 됐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원칙)를 준수하며 3대 주주로서 역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6일 '현정은 회장에 대한 쉰들러의 주주대표소송 대법원 승소 확정판결에 대한 논평'을 내고 "외국인인 쉰들러가 앞장서서 10년을 이끌어 왔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주주와 국민들이 이끌어 가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법원 민사3부는 지난달 30일 쉰들러 홀딩 AG가 현정은 회장 등 현대엘리베이터의 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최종 확정했다.

이번 판결로 현정은 회장 및 한상호 당시 대표이사는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 및 지연이자를 배상해야 한다. 지연이자까지 합치면 액수가 3000억원이 넘을 것이란 추산도 나온다.

포럼에 따르면 현 회장은 2006년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상선 지분 26.68% 취득으로 최대주주 자리를 잃게 됐다. 그러자 현 회장은 현대상선에 대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케이프포춘, 넥스젠캐피탈, NH투자증권, 교보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등과 현대엘리베이터의 주가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했다.

케이프포춘 등이 현정은에게 우호적인 의결권을 행사하되 손익은 현대엘리베이터가 모두 부담하게 됐다. 현대상선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파생상품 거래 손실 규모는 710억원, 평가손실은 4291억원에 달했다.

쉰들러는 재판에서 "이러한 무리한 파생상품 거래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 범주를 벗어난 현정은 회장의 그룹에 대한 지배력 유지를 위한 수단"이며 상호저축은행법상 신용공여금지 조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포럼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지배주주의 이익 혹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 자회사, 종속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남용해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침해하는 부당한 관행을 차단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법원이 3년도 넘게 판결을 미룬 데는 엄청난 부담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해 부당하고 불법적인 관행을 근절하기로 결정했다"며 "우리 기업거버넌스 역사에 일대 도약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또 포럼은 "국민연금은 현대엘리베이터의 5% 지분으로 3대주주인데 쉰들러가 10년간 소송할 동안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포럼은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의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상으로도 주주대표소송 등 적극적 주주권행사가 요구되고 있다"며 "현대엘리베이터가 점유율 40%가 넘는 과점기업이므로 국민 재산권 보호 차원에서도 쉰들러에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봤다.

포럼은 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럼은 "어느 나라에서도 법원이 여론이나 사회적 공감대를 앞질러 진보적인 판결을 내기는 어렵다"며 "우리 주주, 임직원, 시민들이 기업거버넌스 개혁과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증시 저평가) 해소라는 사회적 합의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우리 법원도 틀림 없이 공정한 판결을 하리라 확신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