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참여정부 분배 정책의 핵심 '근로장려세제(EITC)'의 근간이 공개됐다.
주요 내용만 살펴보자. 일단 제도 시행은 2008년부터다. 대상자는 연소득 1700만원 이하(각종 비과세 항목소득을 제외)근로자 가구이면서 자녀가 2명 이상, 부동산 등 총 재산이 1억원 이하여야 한다.
제도를 마련한 재정경제부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이 기준에 부합하는 근로자 가구는 전국적으로 31만 가구. 이들 31만 가구에게 총 1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정해진 기준에 맞춰 최대 연 80만원씩 '공돈'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일단은 이 정도 선에서 대상자를 최대한 축소해 시행한 뒤 제도 정착추이를 지켜보면서 점차 대상을 확대한다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소득파악률 제고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해명이다).
엄밀히 말해서 EITC는 돈 잘 버는 사람들에게서 거둔 세금을 못 버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는 것이다. 조금 나쁜 표현을 빌리자면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괴는 격인 셈이다.
제도가 가진 속성은 둘째 문제로 치더라도 제도가 가진 의미는 나름대로 크다. 비록 '부정환급'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긴 하지만 선진국에서도 이미 자리를 잡은 선진형 복지제도인 것만은 분명하다.
출범 초부터 '분배, 분배'를 외쳐온 참여정부의 기본적 경제논리에도 딱 들어맞는 제도인 것이다. 그러나 EITC를 둘러싼 불온한 눈길, 제도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요소들은 여기 저기 묻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정치색'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내년 대통령 선거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따라서 '선거용 제도'라는 의혹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2008년부터 시행된다. 즉 현정부가 (사실상) 끝난 뒤에 시행되기 때문에 선거용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흔히 '정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2008년 시행이 예정되어 있지만 혹여 내년 대통령 선거결과 정권이 교체가 현실이 된다면 제도존립을 장담할 수 없다는 설명이 되는 것이다.
오직 '참여정부'만이 할 수 있는 제도가 되어 버리는 셈인 것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이 제도를 둘러싸고 슬그머니 '갑론을박' 체제를 갖추려 하는 것도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정권교체를 꿈꾸는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이 같은 (선심성)'퍼주기 정책'을 그것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시행한다고 발표한 정부·여당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극단적인 정치적 계산만 가정해 31만 가구를 '표'로 환산하면(근로자 본인과 배우자) 유권자는 62만명이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대상자가 점점 늘어나도록 로드맵이 짜여져 있다. 다시 말해 잠재적 제도 수혜층까지 포함한다면 유권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정부 관계자는 당초 정부가 마련한 제도 초안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고 전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야당인 한나라당도 제도시행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27일 한나라당은 국내 소득파악률 등이 낮다는 점을 들어 자체 방안을 내놓기로 내부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속내를 뒤집어 보지는 못했지만 이는 사실상 '물타기'다. 정부·여당에게 EITC제도 수립의 '공과(功課)'을 순순히 넘겨주지 않겠다는 뜻.
제도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의 신호탄이 쏘아올려진 셈이다.
"대한민국 조세제도는 정치적 고려가 묻어있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처럼 대한민국 조세제도 중 흔히 말하는 조세이론(조세공평, 조세중립 등)을 탄탄한 배경으로 두고 있는 제도가 많다고 볼 수 없다.
철마다 각종 선거가 끼어 있고 이 때마다 정치적 고려를 담은 조세제도 입안이 추진되는 등 가관(可觀)이 아닐 수 없다. 'EITC'도 이 같은 왜곡된 대한민국 조세환경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목소리가 여기 저기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일정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 조세환경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친다면? EITC제도에 정치색을 가미하는 불온한 눈길들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를 둘러싸고 정치논란을 벌인다고 어찌 탓하겠는가.
대한민국의 현실이 그렇지가 않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