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우리는 오늘도 일한다. 일은 이루어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불완전하다. 불완전이 무슨 일이든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완전한 능력으로 어떤 결과를 이루어내려다 보면 현실의 삶에는 고통이 따른다.
'고통(통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몬티 라이먼의 《The Painful Truth》에서)으로, '고통(통증)은 몸에 상처가 났다고 알려주는 현상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라는 신체의 반응이며, 불쾌한 감정을 일으켜 몸을 보호하게 하는 현상'이라고 라이먼은 말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의 저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이야기다. 17년간의 수행 생활을 끝내고 속세로 돌아와 보니 온 세상이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들 어떻게 버티는 걸까? 의식주는 물론이고 생활을 위해 움직이거나 휴가라도 가려면 모든 게 돈인데, 도대체 그 비용은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20여 년 전 그가 20대의 나이에 대기업의 임원이 되었을 때의 사정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일까. 오랫동안 마음 수행을 했던 승려마저 한동안 극도의 고통 속에 혹독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고(故) 로빈 윌리엄스가 키딩 선생님으로 열연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과의 대화 내용이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이건 무슨 이야기인가? 그냥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소위 "따위"에 불과하단 말인가? 그래서 먹고사는 문제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면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왜 돈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 속에 혹독한 시간을 보냈을까. 17여 년의 수행 생활을 한 사람인데도.
영국의 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다. "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되는대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과 그리고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더 나은 길을 찾아 성실히 사는 것이다"(《생물학자의 에세이들》 중에서)
우리에겐 '버티는' 삶이 있다면 그냥 살아가는데 필요한 '따위'의 삶이 있고 '그냥저냥' 사는 삶도 있다. 반면에 삶의 목적을 찾아가거나,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사무실 근처에 종종 가는 삼계탕집이 있다.
알게 된 지 10년은 넘을 성싶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해 복날 회식 장소를 물색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처음엔 마음씨 좋아 보이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삼계탕집이라고 생각했다. 갈 때마다 한두 마디씩 말을 섞다 보니 알게 모르게 편한 사이가 되었다.
70을 넘나드는 나이에, 30여 평의 매장을 혼자 꾸려가고 있는 사장님의 첫 직업은 대학교수였다. 20여 년간 교단에 섰다. 그러다 지인의 추천으로 투자자문사에 뛰어들었다. 교수직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노모(老母)만이 "잘한다"며 혀를 찼다고 한다. 당시 아이들은 해외에서 유학 중이었고 아내는 현지에서 뒷바라지하고 있었다. 홀로 남은 기러기 아빠였다.
투자사 이야기만 나오면 빠지지 않는 말이 고통과 지옥이라는 단어다. 주식시장이 불황이거나 운용 펀드에 차질이 생길 때 겪게 되는 심리적 부담감과 현실적 고초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한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일할 곳이 못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3년이 되었을 즈음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병실에 있으면서 한동안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다. 유학 중인 아이들과 아내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어머니의 "잘한다"라는 비아냥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퇴원을 앞두고서는, '건강 잘 챙기라'는 식구들과 동료, 지인들의 걱정 어린 충고는 온데간데없고 앞으로 살길에 대한 막연한 고민과 두려움만이 남았다고 한다.
사장님에게 교수는 지나친 경쟁과 권위의 멍에에 옭아매 있어 늘 부자연스럽고 힘든 곳이었다. 새로운 직장은 공정한 경쟁을 넘어 이기심과 탐욕, 가장과 허세가 만연한 세상처럼 보였다. 퇴원 후, 내 몸을 움직여 할 수 있고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적은 일을 찾았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일은 아예 생각지도 않았다. 지나친 고민을 담고 사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다행히 사장님에겐 직장 생활 중에 장만해 둔 지하상가가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지금의 삼계탕집을 시작했다.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손님이 늘어났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도 매출은 급감했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힘드셨을 텐데, 요즘은 좀 어떠세요?"
"아, 많이 나아졌습니다. 거의 80~90% 정도는 회복이 된 것 같아요"
"하시는 일이 힘들지 않으세요?"
"보시는 분들은 힘들게 느낄지 모르지만, 익숙해지면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2006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17년이나 되었는데요, 뭐"
"육체적으로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래도 하시는 일이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즐거움요?, 행복요? 하하하, 그냥 하는 거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즐거운 것을 선택하고, 고통스러운 것을 피한다"고 했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삼계탕집 사장님을 보면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이지 즐겁고 행복함 따위가 중요했던 것 같지는 않다. 고민하기보다는, 고통과 싸우기보다는 현실을 수용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 삼계탕집 사장님은 자신만의 더 나은 길을 찾아 성실히 살아가는 분이시다. 그를 통해 "고통은 벌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인간은 평온함이라는 보상을 얻는다"는 어디선가 본 글귀에 공감을 더하게 된다.
가끔 "당신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라고 묻는다. "〜나는 되는대로 그냥 산다"란다. 가수 훈세의 『그냥 산다』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현)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현) (사)대한바둑협회 임원(이사), 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분과실행위원회 위원,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총동문회 수석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