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인연(Art Friendship)

지난해 이맘때였습니다. 세상이 코비드로 인해 일상과 거리를 두고 있었지요. 우연한 기회에 지인을 통해 ACP 과정을 소개받았습니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ART & CULTURE”였습니다. 평소 저와는 동떨어진 분야로 여겼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자세히 보니 “창의적 리더를 위한 예술문화과정(Art & Culture Program for Creative Leaders)”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몸치이기도 하지만 개념치-개인적으로 머리가 아둔하여 미리 또는 다르게 생각하는데 서툰 사람 정도로 칭하고자 합니다-에 가깝다 보니 ‘창의적’과 ‘리더’라는 단어의 연결에 약간의 혼선이 생겼습니다. 창의적인 리더를 선발 대상으로 한다는 것인지, 창의적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의미인지 움찔대게 했습니다. 저에겐 신청서를 작성하는 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인연(因緣)이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그 인연을 맺는데 500 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겁(劫)』이란 시간을 힌두교에서는 43억 2천만 년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옷핀 하나로 백두산 천지를 메웠다가 다시 파내기를 1000번을 반복할 시간 정도라고 했습니다. 천운과 같은 행운이었을까요?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진 관장님과의 인연이요.

미술(ART)에 대한 안목(眼目)만 놓고 보자면 직립보행 수준의 호모 에렉투스가 떠오릅니다. 사회적 경험을 밑천으로 지혜로운 호모 사피엔스를 꿈꾸고 있었지만요. S대 미술관이라는 무게감과 부담감도 있었지만 기대감도 컸습니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학이시습(學而時習)의 희열을 상상할 수 있었으니까요.

미술관을 들어설 즈음에는, ART에 대한 초보자와 전문가의 근원적 차이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작가와 작품 사이에 공존하는 상업적 측면도 궁금했고요. 평소 작가의 보조자 사용이 관행이라는 법원 판단에 대한 견해나 해당 작가의 도덕성 등의 이슈에서부터 위작(僞作) 논란, 이데올로기적 성향 등 고루하고 시시콜콜한 분야에도 관심이 있었던 편입니다.

팝아트 등의 등장과 아트페어 등의 이름으로 갤러리 마켓의 대형화, 아카이브와 블록버스터의 출현 등으로 작가의 위상(종속화)을 위태롭게 하거나 작품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는 것인지도 궁금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아방가르드(Avant-Garde)나 모더니즘(Modernism),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앵포르멜(Informal) 등 흘러들었던 미술사조(美術思潮)의 용어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다다(Dada), 큐비즘(입체파, Cubism), 누보 레알리즘(Nouveau realisme), 플럭서스(Fluxus), 대지미술(Land art, Earthworks)이라는 용어도 그랬고요, 오브제(Objet), 레디 메이드(Ready-made)란 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조는 도대체 누가 만들고 누가 정하는 것인지도 의문이었습니다. 다다이즘의 ‘다다’라는 명칭이 어린 시절 사전 넘기기 게임을 하듯 명명했다는데 이르러서는 이마저 예술인가 싶었습니다.

언론지상을 통해, 국내 다수의 연예인이 작가로서 ART 공연에 나섰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갤러리나 옥션 등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이들의 작품에 대한 시각이 다소 극명합니다. 국내 작가뿐만 아니라 외국 작가 중에도 정식 미술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독학으로 작품활동을 하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요즘 인기 있는 일본의 아야코 록카쿠나 호주 태생의 조디 커윅 등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연예인이라는 유명세에 기댄다는 비판이 혹 다른 독학 작가에 비해 역차별받는 것은 아닌지요?

존경하는 관장님, 미술의 영역은 다가가면 갈수록 궁금증을 넘어 혼란스러울 지경입니다. 프랑스의 68운동 당시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선언은 메시지의 무게만큼이나 이해하기가 버겁습니다. 작품에 대한 가치평가도요.

무엇이 작품이고 누가 작가인지도 모호합니다. 어떤(전위예술 등) 경우는, 작가와 관객 간에 소통이 아니라 갈등 조장을 의도 내지 즐기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제 미술(ART)은 죽었다”라고 합니다.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때론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일하라”라는 브랑쿠시의 신념이 ‘ART는 소통과 갈등이 공존하고, 살든지 죽든지 내버려 두어야 한다’라는 말처럼 난감했습니다.

1년여의 시간은 갤러리나 미술관, 옥션 등에 대한 낯가림을 줄어들게 하였지만, 여전히 궁금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 너무나 많습니다. 안목은 높고 깊고 넓고 멀어야 한다고 하는데 잡목처럼 낮고 얕고 좁은 근시안에 머물러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제 생각을 드러낼까 두렵습니다.

책을 읽는 것이나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고 했습니다. 책 속에 시가 있고 에세이가 있고 소설이 있듯이, 그림에도 구상화가 있고 추상화가 있으며 그 속에 이야기가 스며있음을 압니다. 그런데 책은 일찍부터 글자만 깨우치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데 그림은 이 나이가 되도록 왜 그렇지 못한 것인지요?
오늘의 마지막 질문으로 남겨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나라의 경제와 국방력의 부강함보다 더 갈망하셨던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론을 되새기며, 창의적 리더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예술문화 전반을 이해하고 함양하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하면서, 관장님과 S대 미술관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김종봉 배상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