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최근 몇몇 지인이 우연찮은 자리에 모여서 나눈 대화 내용이다.
아들 둘을 둔 모 대그룹 임원의 경험담부터 들어보자. 지난해 코로나로 지치고 종부세로 고민하고 있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장남으로부터 저녁 때 시간 좀 내줄 수 있냐는 연락이 왔다. 스물일곱 살 먹었는데, 직장 초년병이다. 제대한 지도 얼마 안 된 무뚝뚝한 놈인지라 전화를 받고선 괜히 설레기도 하고 궁금도 했다. 식사자리엔 아이 엄마도 동석했다.
“아빠, 우리 집 판다면서요?” 집이 두 채였다. 종부세다 뭐다해서 갈수록 늘어나는 세금은 대기업 임원에게도 부담이다. “응, 아빠가 생각해보니 세금도 그렇고, 너희들 결혼하면 비용도 들테고 이리저리 돈쓸 데가 생길 것 같아서.” “아니, 아빠는 집에 큰 일이 있으면 장남인 저와 상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갑자기 치고 들어온 아들, 그 장남의 말에 순간 멍해졌다.
‘네놈한테 내가 내 집 파는 것까지 상의를 해야 되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지만, 진지하게 말하는 장남 앞에서 속의 말은 삼킬 수밖에 없었다. “여보, 물 한 잔 줄래?” 그리고 애꿎은 아내의 얼굴에 눈살을 찌푸렸던 그 때의 기억을 소환했다.
옆에 앉은 또 다른 임원이 기가 찬 일이라며 거든다. 지인이 퇴사 하면서 받은 퇴직금이 제법 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가족이 모여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고민하는 자리가 있었단다. 그 때 아들놈이 “아빠, 카페나 편의점, 프렌차이즈 음식점 같은 것은 하지마세요!” 듣고 있던 아빠가 “왜?” 그러자 아들놈이 “제가 주변에 들어보니 그런 거 하다가 십중팔구 원금도 다 까먹는데요.” “그럼 네 생각에는 뭘 하면 좋겠는데?” “그냥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원금 잃을 일은 없잖아요.”
이번엔 세 자식을 둔 중견기업 사장님이 겪은 일이라면서 제일 연장자이신 분이 입을 뗐다.
자녀들이 모두 결혼을 했고 손주도 봤다. 팔순을 넘기면서 재산 정리차원에서 세 아이들에게 똑같이 나눠줬다. 한 일주일 정도 지난 무렵 첫째(큰 아들)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재산 배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저는 이 집의 장남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제사도 지내야 하고 형제들도 살펴야 하는데 똑같이 배분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또 한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막내딸이 집으로 찾아왔다. “아빠, 어릴 적부터 두 오빠보다 이뻐하고 잘 챙겨 줘서 고맙게 생각해요. 먹을 것이 있어도 오빠에게 하나 주면 저에겐 늘 두 개씩 주셨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러면서 “사실 오빠들은 아빠가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해주시고 있지만, 시집간 저는 예전처럼 아빠의 사랑이 필요한데, 정작 이번에 아빠는 마음이 변하셨는지…….”
그 사장님은 주변에서 재산 증여나 상속으로 가족 간에 얼굴 붉히는 모습을 여러 번 본 탓에 공평하게 나눠주면 별 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듣고 있던 사람들이 한숨을 내쉬며 한 마디씩 토해낸다. “아니 요즘 자식 놈들은 부모가 힘겹게 번 재산이 자기 것 인양 생각하는 것 같아.” 그러자 “대학까지 학비는 물론이고 직장 취직 준비에, 결혼할 땐 결혼자금 지원에, 손주를 낳으면 돌보미 역할까지, 그런데 부모 재산에 대해 마치 지들 것처럼. 허 참.” 다들 남의 일 같지 않는가 보다.
흔히 하는 얘기로 재무상태표에서 자녀는 자산계정에서 부채계정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자녀들 중 부모 재산에 일정 지분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그 근저에는 우리나라 민법의 유류분 제도(피상속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법정상속 지분의 2분의 1까지 유산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한 몫을 하고 있지 싶다. 유류분 제도는 농경사회에서 자녀들도 집안의 재산형성에 일정부분 기여했다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근래에 와서도 여전히 한국적 정서상 자녀는 노후에 부모를 부양하거나 사후에 제사 등 집안행사에 일정 역할을 부담하게 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고인의 유지와 무관하게 유산의 일정부분을 유족들이 상속할 수 있는 유류분 제도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하다. 전통적 가족개념이 무너진 지 오래다.
노후봉양이나 사후 제사를 무작정 기대했다간 꼰대부모가 될지도 모른다. 재산문제로 멍든 가족관계가 유류분 제도로 치유 될 수 있을까. 오히려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쏟게 만든 것은 아닐까. 현재 헌재에 계류 중인 유류분 관련 위헌법률 심판 사건과 헌법소원이 13건이나 된다고 한다. 처한 상황만큼이나 저마다 다른 입장일 수 있지만, 제도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이나 영국은 원칙적으로 유류분 제도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유류분 제도가 있는 독일, 프랑스, 일본의 경우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유류분 적용 대상기간도 다르고(우리는 무제한, 일본은 10년) 사전포기제(우리는 불인정, 일본 등은 인정) 운영이나 유류분(우리는 법정상속지분의 2분의 1) 적용도 상이하다.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형제자매에 대한 유류분 제도를 삭제하는 민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지만, 때 늦은 감이 있다.
법(法)이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결과라는 말에 공감한다. 현행 유류분 제도의 취지가 변화를 넘어 퇴색·변색되고 있다면 전향적인 개선도 고려해 볼 만하지 않을까?
고유의 자기 재산에 대해 생전에 행한 적법한 처분권 행사를 사후에 뒤집어 놓는다면, 사자(死者)에 대한 남은 자들의 월권이자 횡포라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