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그림과의 인연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비즈니스로 만났기에 세상 경험치에 비해 그림에 대한 안목은 무뎠다. 리히텐슈타인과 알렉산더 칼더,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등의 작품이 왜 유명한지보다는 거래가액이 얼마인지에 관심이 쏠려있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라는 경매회사도 낯설었다. 세금을 다루는 직업의 특성상 예술적 가치보다 얼마짜리 상품(?)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는지도 몰랐고 작품을 보고 감동하거나 현혹된 적도 없었지 싶다. 국내외 미술관 투어에서도 작가의 작품성보다는 그 작가의 유명세가 더 관심거리였다.
“예술은 현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파블로 피카소)라는 의미를 실감하지 못했다.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스티브 잡스)라면 나는 그런 부류에 속했다. 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수틴’의 ≪시체≫라는 작품을 두고 ‘예술에 기준과 기법, 구성과 색, 주제가 있는 것인가?, 예술의 미(美)와 추(醜)함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라는 담론에 귀가 열리지 않았다. 백남준으로부터 ‘예술은 속고 속이는 것이며,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술(Art)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가 있을 뿐이다”(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라는 글귀는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누군가에게 미술은 기이하고 알 수 없는 돌연변이다”(이지은의 《감각의 미술관》)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떡여졌다. 풍차가 바람을 일으킬 수 없는 것처럼 그림에 대한 이해와 접근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나에게 미술은 미술관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작품을 두고 작가와 관객과의 주종적 관계에서 볼거리를 제공하는 정도로 생각한 적이 있다. 관념적으로는 조용하고 사적인 영역에 배치되어 있었다. 기존의 메커니즘과 달리, 이제 미술(Art)은 공동체적 체험과 소통, 다양한 오브제 그리고 시간적ㆍ공간적 개념에서 탈피, 모든 제약과 구속으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추구한다.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눈과 마음을 열고 보아야(Eyes open, Minds open)만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어느 날 “Every body is an artist”라는 말이 가슴에 적중했다. 독일 출신의 요셉 보이스는 “모든 게 다 예술이고, 모든 사람이 다 예술가다”라며 보다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만 한다면 예술의 영역으로 규정했다. 소위 ‘사회적 조각Social Plastic’으로서의 확장적 예술개념을 내놓았다. 그에게 있어 예술은 단순한 미적 감흥이 아니었으며, 낡은 삶의 형태나 방식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바꾸어가거나 바꾸어가기 위해 행하는 모든 것으로 정의했다. 예술가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내어 그것을 그리거나 조각하고 만들어내는 First-mover임이 틀림없다.
보이스는 예술과 현실이라는 경계의 벽을 허문, 20세기 예술혁명으로 불리는 플럭서스Fluxus 운동에 동참한 작가다. 기존 예술이 미술관 안에서 보여주는 전시였다면, 미술관이라는 틀을 벗어나 장소와 작품 소재 등의 구애 없이 인간적이고 생태적인 방향으로 선도했다. 그리고 ‘7000그루 떡갈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다. 떡갈나무에게는 돌기둥(현무암)이라는 파트너가 있다.
거리 곳곳에 떡갈나무와 돌기둥이 한 쌍의 작품으로 태어났다. 독일에 국한되지 않았다. 뉴욕으로까지 뿌리를 내렸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는 그의 말은 명징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붓 대신 삽을 들었다. 그의 캔버스(화폭)는 이 세상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오브제였다.
그가 선택한 목(木 떡갈나무)・석(石 현무암)은 다중적이고 복합적이라 어떤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언뜻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다가가게 된다. 생물과 무생물, 유연하고 감성적이라면 경직되고 이성적이다. 연속성과 단발성, 구상성과 추상성, 연약함과 강인함, 성장과 멈춤,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곡선과 직선, 동적임과 정적임, 변화와 유지, 다채로움과 단순함, 나아가 새로운 변화와 구태가 연상되기도 한다. 한쪽이 경계를 허물려고 한다면 다른 쪽은 경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타자와의 허물없는 관계를 위해 손을 내미는 이에게 묵묵부답이다. 무표정하고 무관심하다. 나아가 생(生)과 사(死)가 같은 듯 다르게 스며든다.
작가의 전위적 작품에 대한 몰이해와 일루전(Illusion)적 현상의 결과일 수도 있다. 작가는 “떡갈나무와 현무암의 관계는 물과 불처럼 상생의 관계와 같다”고 했다. 살(肉)과 뼈(骨)에 영혼을 불어넣은 듯하고, 이분법적이고 부자연스러움을 초월한 숭고한 관계로의 형상이다. 여기에 더해 자연과 문명의 조화 내지 공존을 염원한 것이라는 더 큰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음이랴.
‘사회적 조각’의 일환으로 시도된 7000그루 떡갈나무 프로젝트는 매일매일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시간에 따라 목석(木石)의 구도가 달라지고 계절 따라 색감도 변한다. 관객은 오늘도 어제와 다른 바로 그 작품을 만난다.
정치인이기도 한 보이스의 7000그루 떡갈나무 프로젝트는 1982년에 시작되었다. 이보다 더 빠른 시기에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을 떠올려본다. 보이스의 ‘사회적 조각’의 개념 속에 있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함’과는 동떨어져 있지만,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라는 측면에서는 궤를 같이한다.
울긋불긋 단장한 지붕은 한편의 채색화다. 마을 길과 농로의 변화로 직선과 곡선이 어울려 길이 소실된 듯 살아있는 듯한 아스라함이 신묘하다.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의 전깃줄 위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새들의 지저귐을 보는 것은 덤이다. 천수답의 자연스러움과는 별개로, 반듯반듯한 농지에서 철마다 변해가는 곡식을 보며 몬드리안을 연상할 수도 있다. 민둥산이 수림으로 바뀌면서 계절마다 뽐내는 맵시야말로 일품이다. 그리하여 ‘새마을 운동’은 풍경화로 완성됐다. 참여한 수많은 사람 중에 나도 어설픈 몸짓을 하고 있었다.
획일적이고 강압적 시도가 아닌 문명과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했더라면 새마을 운동은 하나의 연작(聯作)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요셉 보이스적 사고가 싹틀 수 없었던 당시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억지다’라고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한다면 “성가시고 논쟁적인 문제에 뛰어드는 것이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세상에 사는 도전과 즐거움 중 하나(진 로버트슨외 ≪테마 현대미술의 노트≫)”라는 말로 위안 삼으려 한다.
≪모나리자 스마일≫의 캐서린 교수다. “새로운 사고에 마음을 열어보라” 그리고 “Look beyond the paint”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