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엇박자 지속에 “시장금리 상승 전환 시 유동성위험 비화 가능성”

강경훈 교수 “단기금리, 기준금리 하회 이례적”

“시장금리 하락세 보이는 것, 기대경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반증”

“예금·대출금리가 낮아진 상태에서 시장금리 갑자기 상승 시 예금자 인출 급증할 수도”

“시장금리 상승, 부동산PF 등 부동산 관련 자산 위험성 증폭시킬 우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와 은행권의 예금·대출금리, 시장금리가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 엇박자가 계속되고 있다. 은행의 예금·대출금리가 낮아진 상태에서 시장금리가 상승세로 전환하는 경우 은행의 금리위험이 유동성위험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은행 및 정책당국의 면밀한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8일 하나금융포커스 '금리 엇박자와 은행의 위험관리'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의하면 한은의 기준금리는 지난해 4월 금융통화위원회부터 연속 7차례 인상되면서 3.5%까지 오른 반면 예금금리는 최근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기준금리가 3.0%였던 작년말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연 5.0%를 넘었었는데 지난 1월 기준금리가 연 3.50%로 상승한 이후에는 오히려 4.0%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달 20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에 의하면 1년 만기 정기예금 총 41개 중 12개 정기예금 최고금리가 3.5% 미만으로 나타났다. 주요 은행의 전세대출 금리는 지난달 17일 기준 변동금리와 고정금리 모두 하단이 3%대를 기록하고 있으며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도 기준금리 인상이 시작된 2021년 8월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간 상태다.

이처럼 예금·대출금리와 자금시장의 단기금리가 낮아지면서 한은의 고물가 제어에 차질이 빚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통화정책은 다양한 파급경로를 거쳐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 중 금리경로, 환율경로, 기대경로, 신용경로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물론 기준금리 인상에도 투자자들이 향후 기준금리의 인하 전환을 기대함에 따라 장기금리가 낮아질 수는 있다. 하지만 통안채 91일물 등 단기금리가 기준금리를 하회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창용 한은 총재가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과도하다며 높은 기준금리 유지의 뜻을 여러 번 밝혔음에도 시장금리가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기대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반증"이라며 "또한 통화정책이 수량변수인 은행대출을 거쳐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는 신용경로 역시 대출금리의 하락세로 인해 당초의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금리의 엇갈린 움직임에 따라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통화당국은 아직까지 큰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일부 시장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통화당국이 의도한 긴축효과는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대출금리나 이런 쪽에서 원가 인상 요인이 있다고 제품 가격에 100% 반영하지는 않는다"면서 통화정책과 금융당국의 정책이 엇박자라는 데 반대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강경훈 교수는 "금리의 움직임은 통화정책의 유효성뿐 아니라 은행의 위험관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흔히 은행의 주요 위험으로 신용위험, 금리위험, 유동성위험을 손꼽는다. 이 위험들은 독립적이지 않고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데 상황에 따라 다양한 패턴을 보인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얼마 전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의 경우 금리위험이 유동성위험으로 비화된 것"이라며 "시장금리 상승에 따라 은행 자산부문의 손실이 커지자 이를 우려한 예금자들이 예금인출에 나서게 되어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퍼스트리퍼블릭은행도 과거 저금리 시절 공격적으로 늘린 자산부문에 발목이 잡힌 경우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미국 사례에 비추어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속도를 누그러뜨리는 감독당국의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의 전개 양상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며 "예금·대출금리가 낮아진 상태에서 시장금리가 갑자기 상승하면 고수익을 좇는 예금자들의 인출이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 교수는 "한미 간 정책금리 차이가 이미 1.75%p까지 벌어진 상태에서 미 연준의 고금리 정책기조가 확인되면 국내 시장금리도 급격한 오름세로 전환될 수 있다"면서 "이 상황에서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같이 올리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낮은 금리로 깔아놓은 대출자산이 많으면 예금금리 인상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금리위험이 유동성위험으로 전이되는 또 다른 패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욱이 시장금리 상승은 부동산PF 등 부동산 관련 자산의 위험성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일부 소규모 금융기관의 경우 신용위험, 금리위험, 유동성위험이 함께 집중되는 파괴적인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며 "현대의 금융시스템은 크고 작은 금융기관들이 복잡다단한 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일부 금융기관의 위험이 시스템 리스크로 전환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물론 이와 같은 위험 시나리오는 향후 국내외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고 이에 따라 금리도 낮아지는 경우 괜한 걱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위험관리는 원래 온갖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위험관리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스트레스 테스트는 '예외적이나 가능한' 사건이 발생하는 경우를 상정한다. 향후 미국 및 국내 금리 상승세 또는 고금리 지속의 경우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며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