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공매도 전면 금지 전격 발표한 배경은?

김주현 금융위원장 "신뢰 받는 제도 되도록 정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 강구"

개미투자자의 불만에 여당(국힘)의 압박 거세...尹대통령 의지도 부담된 듯

고위 당정, 5일 협의회 열고 공매도 한시적 금지 결정...긴급 브리핑에서 발표

정의정 한투연 대표 "긍정적 평가...구체적 제도 개선 로드맵 제시해야"

증권업계 "증시 하락 주범 아냐"...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타내

오늘(6일)부터 내년 6월말(상반기)까지 국내 증시 전체 종목에 대해 공매도가 전면 금지된다. 불과 이틀 전만 하더라도 공매도 전면 금지 관련해 확정된 바가 없다던 금융당국이 신중론에서 돌연 입장을 바꾼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매도 제도 관련 긴급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오늘 개최된 임시금융위원회에서 최근 증시 변동성 확대와 관행화된 불법 공매도 행위가 시장의 안정과 공정한 가격 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오는 6일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그러면서 "자본시장 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조성해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며 "공매도 제도가 모든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관행화된 불법 무차입 공매도 행위가 시장의 공정한 가격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 하에 이 같은 결정을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금융위는 최근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고 글로벌 경제의 성장세 둔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무력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증대되면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고, 특히, 하반기에는 국내 증시의 변동성이 해외 주요 증시 대비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확대되는 등 시장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동안의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외국인‧기관 투자자의 불법 무차입 공매도 적발이 반복됨에 따라 국내 주식시장의 공정한 가격형성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은 상황이라는 게 금융위 진단이다.

금융당국은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공매도 전면 금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난 3일까지만 하더라도 "공매도 전면 금지 추진과 관련해 확정된 바가 없다"는 게 금융위의 공식 입장이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지난 19일 금융투자업계 라운드테이블에서 "자본시장이 투자자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자본시장의 선진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며 "불법공매도 등 불공정거래 및 불건전 영업행위 근절을 위한 업계 스스로의 내부통제 강화 등 자정노력이 중요하다"고 금융업계의 내부통제 강화에 중점을 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랬던 금융당국이 갑자기 '공매도 전면 금지'로 입장을 바꾼 데는 최근 증시가 급락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데다, 이런 불만이 내년 총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여당(국민의힘)의 우려가 결국 압박으로 나타났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공매도 관련 공약 이행에 있어 한 치의 부족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점도 여당은 물론 금융당국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의견이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대통령실, 정부는 이날 오후 비공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주식시장 공매도 한시적 금지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고위 당정협의회 결과 도출 직후 금융위와 금감원은 긴급 브리핑을 갖고 공매도 전면 금지 방안을 전격 발표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이날 오후 임시금융위원회를 열고 '증권시장 공매도 금지조치'안을 의결했다.

현재 공매도는 코스피200, 코스닥150 편입 350개 종목에 한해서만 허용되고 있다. 앞서 공매도는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지난 2020년 3월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뒤 2021년 5월 일부 종목에 한해 공매도를 부분 재개했다. 이번 발표로 이들 대형 종목들까지 공매도가 금지되는 것이다.

다만 과거 3차례(2008·2011·2020년)의 공매도 전면 금지 때와 동일하게 시장조성자와 유동성 공급자 등의 공매도는 계속 허용된다.

이번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는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 두 곳의 대규모 불법 무차입 공매도 사례가 적발되고 추가적인 불법 정황까지 발견되면서 촉발된 측면이 있다.

김 위원장이 공매도 제도가 모든 투자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제도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사실 이날 발표를 기점으로 '불법 공매도 근절'의 원점으로 삼은 만큼 이전보다 강력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기관과 개인 간 '기울어진 운동장'의 근본적인 해소를 추진할 계획을 밝힌 만큼 기관들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수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이날 공매도 관련 브리핑에 참석해 "공매도 전면금지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시세조종 등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거래소와 함께 밀착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이어 "시장조성자 등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공매도에 대해서도 철저히 모니터링해 공정한 가격형성을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예외 규정을 남겨뒀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른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이 원장은 "현재에도 일부 글로벌IB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별조사단에서 공매도 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약 10여개의 글로벌 IB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며 "불법 공매도에 대해서는 최대한 과징금과 형사 처벌 등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정 처벌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공매도 주문을 수탁하는 국내 증권사에 대해서도 법규 준수·운영상의 문제점이 없는지 조사할 예정"이라며 "글로벌 IB들의 무차입 공매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자체 시스템 개선을 유도해 나가겠다"고 언급했다.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에 대해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는 "금융당국이 투자자들의 원성이 높았던 제도 개선에 나섰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공매도는 현실에서 악용될 여지가 많으므로 한시적 금지 후 모든 측면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다 중요한 건 내용과 태도로 내년 6월 말까지 구체적인 제도 개선 로드맵을 제시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증권업계에서는 공매도가 주가의 거품을 빼고 주가 변동성을 줄이는 순기능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공매도가 증시 하락의 주요 요인이라고 구체적으로 검증된 바도 없다는 점도 주장하고 있다.

특히 공매도 전면 금지로 인해 향후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금융위의 공매도 금지 발표 후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자 시절부터 공약으로 주식 공매도 감시 전담 조직 설치, 주가 조작에 준하는 형사처벌 등 투자자에게 불리하게 설정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한 합리적 제도 개선을 약속한 바 있다"며 "현재 윤 대통령이 공약 이행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보고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팔았다가 주가가 내려가면 싸게 사서 갚아 이익을 내는 투자 기법으로 자금력이 있는 외국인과 기관이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특성으로 그간 개인투자자(개미)들은 외국인과 기관이 하락장에서 대량의 공매도 물량을 쏟아내 증시 하락을 부추겼다고 주장해왔다. 최근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의 대규모 불법 공매도 사례가 적발된 게 이를 방증하고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