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기회 편취, 지원성 거래 등 '비일비재'
기업들 사이에서 재벌 2세 혹은 3세에게 경영권과 재산을 안전하게 넘겨주기 위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편법적인 상속 및 증여가 만연되어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사실 편법적인 부의 이전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경영권 유지'란 기업의 고유한 기득권에 속하기 때문.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 같은 행위를 하면서 거액의 세금을(상속세 및 증여세)내지 않고 있다는 것.
과세관청인 국세청과 세제당국인 재정경제부는 기본적으로 과세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하면서도 실제적인 액션을 취하는 데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 '기업 봐주기'아니냐는 논란을 스스로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제 한 시민단체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대규모 기업집단을 비롯한 국내 재벌기업들 사이에서 이 같은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편법 상속·증여가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가 6일 공개한 '삼성·현대차·LG·SK 등 38개 재벌 총수일가의 주식거래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시가총액 상위 38개 기업집단에 속한 250개 기업 중 회사기회 편취 등 몰아주기로 의심되는 사례가 50개 기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 참여연대가 밝힌 문제성 거래 건수=참여연대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경우 총 17개 계열회사(상장 10개, 비상장 7개) 분석결과 회사기회의 편취 2건(비상장 2개), 부당주식거래 8건(상장 1개, 비상장 7개) 등 총 10개의 문제성 거래가 발견,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도 회사기회의 편취 4건(상장 1개, 비상장 3개), 지원성 거래 1건(비상장 1건)등 5건의 문제성 거래가 발견됐다. 이들 38개 기업들에서 추출된 문제성 거래 총건수는 70건(회사기회의 편취 30건, 지원성 거래 20건, 부당주식거래 20건)에 달했다.
회사기회의 편취란 회사의 유망한 사업기회가 있을 때 지배주주, 이사 또는 경영진이 이를 수행해 이익을 얻는 것으로 재벌그룹에서 재벌2세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 등을 모아주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지원성 거래란 모회사와 밀접한 사업연관성은 없으나 총수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계열사가 물량을 몰아주는 경우로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30%를 넘고 관계사 매출 비중이 30%를 넘는 경우를 지원성 거래로 본다고 참여연대는 설명했다.
참여연대는 이와 관련 "대규모 기업집단이 아니더라도 이런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가령 백화점의 경우 아이스크림 가게를 친인척에게 운영하도록 해 법인의 이익을 대주주 일가나 친인척이 편취하도록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 비일비재한 '세금 없는 부의 증여'-재벌들의 '모럴 헤저드'=참여연대는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집단 중 자연인인 지배주주(재벌총수)가 존재하는 38개 기업집단 250개 기업 중 50개 기업에서 회사기회의 편취행위 등이 나타날 정도로 편법적인 '세금 없는 부의 증여'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구체적 사례도 제시했다. 특히 삼성 이재용 상무의 경우 SDS, 에버랜드, 서울통신 등 5개 회사에 503억원을 투자했고 이후 회사기회의 편취 방법으로 이들 기업의 배당이익과 평가이익 등을 합쳐 현재 4861억8500만원으로 재산을 불렸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사장의 경우도 본텍, 글로비스, 엠코, 오토에버 등을 통해 총 594억4100만원을 투자해 총 4895억7700만원의 이익을 얻었다고 참여연대는 밝혔다. 이들의 행위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세금납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결말없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몰아주기 거래를 통해 재벌2세 혹은 3세에게 세금 없는 부의 증여가 보편화된다면 조세형평성을 훼손시키는 것은 물론 효율적 경영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며 "몰아주기 거래 중 모회사의 사업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경우 모회사와 그 모회사의 주주에 귀속될 이익을 지배주주의 지위를 이용, 특수관계인이 취하는 행위이므로 배임 등의 형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그러나 법원은 형법의 처벌조항과 중복되는 문제는 있으나 불법행위로 인한 소득에 대한 과세는 형법의 처벌조항과 별개라는 입장"이라며 "다만 모회사의 사업과 밀접한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아 회사기회의 편취혐의가 없는 경우라도 대주주의 특수 관계인이라는 이유로 지원성 거래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면 사실상 일감증여 형식으로 형성된 재산이기 때문에 증여세율을 적용해 과세를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치권, "과세당국 행동의지 보여줘야"=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이 같은 일감몰아주기 행위에 대한 세금 과세를 과세당국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최근 종료된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들간 밀고당기는 논란이 벌어졌었다.
지난 6일 참여연대가 주최한 '일감몰아주기 과세' 방법에 대한 토론회에서도 정치인들의 과세요구는 쏟아졌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일감몰아주기 과세에 대해 국세청과 재경부는 피해갔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또 "국세청은 회사기회이익의 편취에 대해 인정하고 있으나 어떻게 과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갑갑해 하고 있다"며 "국세청에서는 재경부에서 예규라도 만들어 주면 과세를 하겠는데 하는 불만도 있더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이런 부분에 대해 재경부에 방안을 내놓으라 하니 곤란해하더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국세청이 인력이 안 된다면 인력을 증원해서라도 해결을 해야한다"며 과세당국이 적극성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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