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평등'합니다. 그러나 유독 시린 추위를 견뎌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규정하는 소위 '빈민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무사 등으로 대표되는 '세무대리인(공인회계사, 관세사도 세무대리인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굳이 세무대리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겠습니다)'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비단 올 겨울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대한민국 세무대리인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혹한에 가까운 추위를 견뎌낼 위기에 처해 있다는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한 위기상황은 누란지위(累卵之危)라 표현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입니다.
세무대리인들을 죄어오는 위기의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지만 정작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이익단체(세무사회)의 대응태도는 어째 시간이 갈수록 느슨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가장 시류판단에 강해야할 이익단체가 방향성을 상실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존폐여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까지 받을 수 있는 중대사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불법도 불법이지만‥점점 강해지는 세무대리인 처벌기준=세무사회가 그 동안 추진해 온 대정부 숙원 사업 중 하나가 '세무사징계양정 규정완화'였습니다. 경기상황에 민감한 업계현실을 감안할 때 실제 '불법의 정도'보다 '징계의 강도'가 너무 높다는 인식에서부터 비롯된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획기적인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히려 '가망이 없다'고 보는 쪽이 더 정확할 만큼 정부의 태도는 냉랭합니다.
정부는 지난 3일 세무사징계위원회를 개최하고 무려 20명의 세무대리인에게 불법의 책임(징계)을 물었습니다. 2명의 세무대리인들이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고 2명은 등록거부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과태료 처분을 받은 세무대리인들도 16명이나 됐습니다.
이 중 일부는 과태료를 무려 1200만원이나 부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들의 불법 강도가 그만큼 높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위원회가 5시간여 동안 진행됐다는 점은 위원회에 참석한 화살(정부측)과 방패(세무사회측)간 불법의 기준(혹은 징계의 기준)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간극이 분명하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 우울한 소식은 정부가 세무대리인들의 불법사실에 대한 처벌의 강도를 더욱 강하게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징계양정 규정 완화가 세무사회의 일방적 '숙원'으로만 끝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 셈입니다.
□ "언제까지 해바라기처럼 정부만 바라볼 것인가"=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 조세당국(국세청, 재경부)은 세무대리인들의 편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오래 전 증명이 됐습니다. 재차 언급하는 것도 사실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조세당국의 모토는 대납세자 '서비스 강화'입니다. 세무대리인들의 존재 이유 또한 납세자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두 부분의 상충, 다시 말해 기존 세무대리인들간 경쟁체제가 정부-세무대리인간 경쟁체제로 대체되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조세당국의 움직임은 빠릅니다. 대표적인 것 하나만 들어보겠습니다.
비록 이빨이 빠지긴 했지만 성실납세제 도입의 기본적 취지는 납세자와 관(官)의 직접적인 연결루트 구축이었습니다. 납세자들의 정부에 대한 의식(즉 수요)이 성장한다면 언제고 다시 날카로운 이빨로 변해 업계를 파고들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이 밖에도 조세당국이 준비하고 있는(혹은 시행하고 있는)대납세자 서비스 시스템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즉, 세무대리인들이 베어 물 수 있는 '파이'의 크기는 점차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더 이상 세무대리인들의 파이를 챙겨주는 존재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며 "이제부터는 업계인들간의 경쟁보다는 정부와 직접적인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 세무사회‥회원들의 목소리 외면하나=이 와중에 한국세무사회는 그야말로 느긋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일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해외협력 활동에 금쪽 같은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세무사회의 대외적 위상을 제고하는 것이 대내적 위기 극복보다 급한 문제는 분명 아닐진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지난 3일과 4일 양일간에도 별로 영양가가 없어보이는 회직자 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명분은 회원 1만명 시대를 대비한 세무사회 전략과 비젼을 마련하기 위한다는 것이었지만 오고 간 토론의 주제들은 눈 앞에 놓인 난제(難題)의 해결책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회원들은 지금 세무사회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각박해져 가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나눠준 작은 힘이 모여져 세워진 세무사회는 당연히 회원들의 영역을 챙겨주고 보호해 줘야 합니다. 현실성 떨어지는 미래에 대한 '립서비스'나 하라고 (그나마 약해져 가고 있는)힘을 모아주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첨언 한 마디. 내년 2월 새로운 집행부 구성을 위한 선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회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현실적 공약과 이를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 추진력을 지닌 실무형 집행부입니다.
설혹 (과거의 경우처럼) '정계진출'을 위한 교두보 차원에서 세무사회 집행부의 수장을 꿈꾸는 인물이라면 아마도 냉혹한 회원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