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도청 스캔들...獨 "내부 분열 유도해 미사일 지원 막으려는 의도"

독일 정부는 타우러스 미사일 지원 관련 독일 공군 고위 장교들의 대화가 도청된 사실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경위 파악에 나섰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키이우포스트 등에 따르면 독일 국방부 대변인은 연방 군사정보국(MAD)이 도청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우리는 공군 장교의 대화가 도청당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현재 소셜미디어에 유포되고 있는 녹음본이나 녹취록 내용에 변경사항이 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러시아 국영방송사 RT의 편집장인 마르가리타 시모냔은 지난 1일 자신의 텔레그램에 38분 분량의 녹취록을 공유하면서 "독일 장교들이 크림대교를 공격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한 것을 들었다"는 글을 올렸다. 크림대교는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와 동쪽 러시아 본토를 잇는 다리다.

녹취록에는 독일군 고위 장교 4명이 장거리 순항미사일 타우러스 100기를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방안과 크림대교를 미사일 표적으로 삼는 것에 대한 논의도 담겼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미사일을 사용하도록 훈련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녹취가 공개된 뒤 텔레그램에 "우리의 오랜 라이벌 독일이 다시 원수로 변했다"고 직격했다.

이번 도청 논란은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5월 독일에 타우러스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하자 숄츠 독일 총리가 확전 우려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터졌다. 독일의 반대 입장에 영국 정부는 타우러스 제공을 은밀히 촉구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지난 1일 보도한 바 있다.

독일은 러시아 측이 내부 분열을 유도해 타우러스 지원을 최종적으로 무산시키려고 벌인 일로 의심한다. 마리 아그네스 슈트라크 치머만 독일 연방하원 국방위원장은 녹취록이 공개된 배경으로 숄츠 총리가 우크라이나에 타우러스 지원을 무산시키려는 러시아의 의도라고 주장했다.

독일 연방군 대령 출신인 로데리히 키제베터 의원은 한델스블라트 신문에 "러시아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일환으로 스파이 활동과 사보타주(비밀파괴공작)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며 "사람들을 불신하게 만들고 조종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로채고 유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기존의 재래식 무기와 더불어 사이버 공격, 심리전 등을 동원해 상대방의 혼란과 불안을 야기하는 복합전술을 말한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침공했을 때 효과를 거둔 전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