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로 '스트롱 맨' 푸틴 이미지 흔들려

"독재자 이미지 훼손…안전 보장에 대한 의문 제기"

우크라전 이어 'IS' 도전…'무슬림국과 동맹' 선전과도 상충

러 정부, 우크라 연루설 주장…"공세 강화 빌미로 삼을 수도"

130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한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사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스트롱 맨' 이미지가 흔들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2일 모스크바 북서부 크로커스 시티홀에 무장 괴한들이 난입해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폭발물을 투척하며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러시아 연방 수사위원회는 이날 기준 사망자가 137명으로 늘어났으며 이 중 62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WSJ은 수십 년 만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가장 치명적인 테러로 푸틴 대통령이 쌓아온 독재자 이미지가 훼손되고 국민에게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러시아 정부의 약속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값비싼 소모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슬람 테러라는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배후를 자처하고 나선 이슬람국가(IS)의 귀환은 개발도상국 및 무슬림 국가와 동맹을 맺고 미국에 맞서 실존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선전에 제시된 비전과도 상충한다.

한때 푸틴 대통령의 연설문 작가로 있다 현재 정권 반대파로 돌아선 압바스 갈리아모프는 "이번 사태는 푸틴 대통령의 실패로 인식된다"며 "그는 평화와 안정에 대해 약속했지만, 지금 그 평화와 안정은 어디에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만약 정말 배후가 IS라면 푸틴의 외교 정책은 쓸모 없었던 것"이라며 "이것이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비난하려고 그토록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테러 사태 이후 이슬람 수니파 극단 무장세력인 IS는 테러 현장 영상을 공개하며 자신들이 배후라고 밝혔으나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가 연루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방보안국(FSB)은 체포한 용의자들이 우크라이나 측과 접촉했다고 밝혔으며 푸틴 대통령도 23일 국민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배후로 시사했다. 러시아 언론 또한 전문가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가 이번 테러에 연루됐다는 주장을 보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개입설을 주장하며 이번 테러 사건을 빌미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화할 수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영국의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은 이날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들(러시아)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판을 피하고자 악의적인 선전전을 하는 것을 알고 있다"라며 러시아 측의 우크라이나 개입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1999년 12월 푸틴 대통령은 체첸의 이슬람주의자 테러에 흔들리는 러시아에 강력한 대응을 약속하면서 권력을 장악했다. 당시 러시아 자유주의 야당 지도부와 일부 언론은 연방보안국(FSB)이 푸틴 정권의 통치 강화를 위해 일부 폭탄 테러를 조율했다고 비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