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전신, 1957년 5월 설립된 동방생명보험
삼성그룹 순환 출자 고리,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역할 중요성 커져
2010년 5월 유가증권 시장 상장...당시 공모주 청약대금 사상 최고기록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2023년 보험산업 전망과 과제'에 따르면 생명보험업은 올해 0%대의 저조한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보험가입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이고, 저출산·고령화가 확산되면서 상품 판매에도 어려움이 따르는 등 생명보험업계 당면하고 있는 위기감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본지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국내 생보사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를 '빅5' 대상으로 탐방시리즈를 실어본다.[편집자주]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삼성생명은 국내 보험업계에서 수십 년째 독보적인 1위를 지켜오고 있다. 창업주 호암(湖巖)과 이건희 회장이 그룹 경영을 위해 가장 애착을 가지고 키워온 결과다.
◆…서울 서초동 소재 삼성생명 본사 전경［사진=홈페이지 캡처］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삼성생명은 국내 보험업계에서 수십 년째 독보적인 1위를 지켜오고 있다. 창업주 호암(湖巖)과 이건희 회장이 그룹 경영을 위해 가장 애착을 가지고 키워온 결과다.
삼성생명의 전신은 1957년 5월 설립된 동방생명보험이다. 호암은 1963년 경영이 어려워진 동방생명과 계열사인 동화백화점, 동양화재, 동남증권을 묶어 인수하며 삼성그룹에 편입시켰다. 대한재보험과 재보험계약(1963년)을 통해 사세를 확장했다.
1989년 7월에 삼성생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국내 보험업계 최초로 펌뱅킹 도입(1990년) 및 미국 뉴저지에 현지법인을 두고 삼성생명서비스(1991년)를 세웠다. 1993년 국내 보험업계 최초로 보유계약고 200조원을 돌파했다. 동양투자신탁 인수(1998년) 후 퇴출생보사 국제생명의 보험계약을 인수하며 국내 생보사 1위를 굳건히 했다.
◆…동방생명보험에서 삼성생명으로［사진=삼성생명 사진 합성］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에 구제 금융을 지원하는 대가로 정부에 기업 구조조정을 요구했지만 삼성그룹은 삼성자동차 계열분리 정도로 마무리했다. 삼성생명의 자금력이 그룹을 지탱하는 든든한 힘이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2010년 5월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당시 공모주 청약대금 사상 최고기록을 올렸다.
하지만 상장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시민단체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상장의 최대 걸림돌은 유배당 보험계약자에 대한 지분 배분 문제였다. 시민단체들은 상장 후 이익의 일부분을 계약자 지분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약자 배당금을 가장 많이 지불해야 하는 삼성생명은 이런 시민단체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상장은 일반적인 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증권거래소 상장규정에 따라 하면 되고 상장한 뒤 내부유보금 처리나 상장차익을 계약자에게 이익으로 돌려주는 문제는 생보사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하면 된다는 게 삼성생명 측 주장이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1989년 상장을 전제로 한 자산재평가 이후 재평가 차익 중 70%를 보험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지침을 내놨다. 유배당 보험계약이 대부분을 차지한 생보사의 경우 재평가 차익도 대주주 몫이 아닌 보험계약자 몫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자산재평가 차익 중 30%는 주주에게 무상증자, 보험계약자 몫인 70%중 3분의 2는 과거·현재·미래 계약자를 위한 배당 준비금으로 적립, 나머지 3분의 1은 유보금으로 자본계정에 편입하면서 순조로운 상장 진행이 이뤄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증권시장 여건이 좋지 않다며 생보사 상장을 미뤘다. 이후 18년간 논란을 벌여온 이 문제는 지난 2007년 4월 시민단체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가 '상장 차익은 주주의 몫'이라며 기존 입장을 뒤집는 결론을 내면서 다시 거론됐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삼성생명이 두 차례의 자산재평가를 통해 추가 자본금을 적립하기 전까지 기존 자본금보다는 보험계약자들이 지출한 보험금이 회사 성장에 기여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재평가 차액을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편 삼성생명 상장은 삼성그룹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동아줄 역할'을 했다. 그룹 지배구조와 후계구도를 일시에 해결한 중차대한 의사결정이었다는 평가다. 여기에 더해 삼성차 부채관련 소송 문제도 해결하는 덤을 가졌다는 의견도 있다.
당시 삼성그룹은 계속 지연된 생명 상장으로 채권단과의 갈등이 불거졌고 법정다툼까지 벌어졌다. 그 사이 비자금 사태 등으로 이건희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내려오며 상장 가능성이 낮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0년 5월 이 회장에 대한 법적 판단이 마무리되면서 극적으로 반전됐다.
이 회장은 복귀와 동시에 친환경 등 신사업에 2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곧바로 삼성생명 상장에 성공했다. 이후 삼성자동차 부채관련 소송 문제도 일단락 짓게 되면서 이 회장의 경영활동은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된다.
◆ 시총 23兆, '빅4 등극'...향후 그룹 지배구조 변화의 '초석'
상장일 기준 삼성생명의 시가총액은 약 23조원이다. 공모가 기준으론 거래소 상장사 중 6위권이었으나 상장 즉시 '빅4'에 진입했다. 당시 삼성생명보다 시총이 큰 기업은 삼성전자, 포스코, 그리고 현대차 등 3곳뿐이었다.
당시 KB금융지주와 신한지주 등과 같은 금융지주사보다도 시가총액이 앞섰다. 그만큼 삼성생명 상장이 삼성그룹에 미친 영향이 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회장의 경영 복귀와 함께 대규모 신사업 투자 발표, 그리고 삼성생명 상장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본 시장은 삼성 경영이 완전히 정상화됐다고 봤다. 특히 향후 그룹 지배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점도 관측됐다.
삼성생명 상장은 이 회장 개인에게도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줬다. 당시 이 회장 지분은 20.76%(액면분할 주식 수 4151만9180주·금융감독원 5%이상 지분공시 규정)로, 확정 공모가(11만원) 기준으로 4조5737억원이다. 삼성전자(약 4조원)와 삼성생명 두 종목 지분가치만으로도 8조원을 넘어서게 돼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대 주식갑부로 올라서게 된다.
주가가 공모가를 넘어서며 삼성생명에 투자했던 투자자들도 안정적인 수익을 거뒀다. 공모를 통해 조달한 자금만 약 5조원에 달했다. 공모 물량 중 외국인 투자자 물량은 40%, 국내 기관·우리사주조합·일반청약이 60%(각각 20%)였다. 국내 기관은 1개월, 우리사주조합은 1년 간 보호예수로 주식을 팔 수 없었지만 일반청약의 경우 즉시 팔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 상장은 이 회장이 자동차 사업 투자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삼성생명 지분을 채권단에 내놓으면서 시작됐다는 게 중론이다.
앞서 1999년 6월 30일 삼성그룹은 삼성차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이 회장은 생명 주식(400만주)을 출연해 채권단과 협력업체의 손실을 보상해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같은 해 8월 삼성그룹과 이 회장은 2000년 12월 31일까지 채권단에 삼성자동차 관련 손실 보상을 완료하고, 만약 채권단 손실보상분(삼성생명 주식 350만주)이 2조4500억원에 미달할 경우 이 회장과 그룹 31개 계열사가 그 손실분을 보전하겠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삼성이 합의서 무효를 주장하면서 약정 내용을 이행하지 않자, 2005년 삼성차 채권단은 법원에 약정금 및 지연이자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2008년 1월, 1심 재판부는 삼성그룹과 채권단 간 합의서의 유효성을 확인하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같은 법원의 판단으로 삼성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 르노사에 매각되면서 1995년 3월 자본금 1000억원으로 출범한 삼성자동차는 짧은 역사를 뒤로 하고 기억에서 사라지게 됐다. 자동차 마니아였던 이 회장의 '자동차 명가' 꿈도 접게 된다.
다만 자동차 산업 진출에 앞서 이 회장은 자동차의 전자제품화와 미래 전기차 시대까지 예견하며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전기차 배터리를 핵심 사업으로 꼽았다. 현재 삼성은 자동차 전장(전자장비)과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다.
아들인 이재용 회장도 반도체 중심 전장부품을 '4대 신성장 사업'으로 정하고 글로벌 경쟁에 나서고 있어 아버지 이건희의 꿈은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