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하며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작성하는 생활기록부 장래희망 칸에 ‘공인회계사’라고 적어내며 처음 이 꿈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도 잘 몰랐고, 다만 문과 지망이면서 수학을 가장 좋아했던 나에게 주위 어른들께서 추천하시는 것을 들으며 알게 된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때부터 마음속에 막연히 가졌던 그 꿈이 상경계열에 진학하면서 점점 더 커져 현실화되었고, 힘든 시간을 거쳐 이제 비로소 그것을 이뤄내게 되었다.
이번에 합격수기를 쓸 기회가 생겨, 내가 경험한 바를 바탕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공부 방법을 기탄없이 적어보고자 한다. 할 이야기는 많지만 너무 늘어지지 않게 최대한 압축해서 중요한 것만 써 보도록 하겠다.
▶수험생활
이해의 편의를 위해 나의 수험생활에 대해 간단히 쓰자면, 나는 2003년 1차 시험에 처음 합격하여 동차와 유예를 날린 후, 2005년 1차에 다시 합격하고 2006년 소위 ‘4차’로 합격하게 되었다. 요즘은 생동차로 붙는 분들도 많은 상황에서 사실 꽤나 부끄럽다. 내가 이렇게 비교적 오랜 기간 공부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지금에 와서 꼽는다면, 첫 1차를 붙은 후 거의 1년간의 세월을 노느라 완전히 허비한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2002년 9월부터 중급회계, 세법, 경제학, 경영학, 상법을 차례로 수강하며 수험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 치러진 1차 시험에서 경영학 40점에 커트라인 한 문제 차이로 운 좋게 합격하였다.
비교적 빠르게 1차 시험을 합격하고 보니(물론 마지막 2개월은 순수 공부시간 14시간 정도로 열심히 했다. 일요일에도 쉬지 않았다.) 그 시절엔 자만심으로 가득했다. 1차 시험 직후부터 공부는 단 한 자도 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놀았다. 그 해 2차 시험은 아예 치지도 않았다. 그 해 내내 놀다가 2004년이 되어서야 위기감이 들었던 것 같다. 아는 것도 많지 않았는데 워낙 공부도 안했다 보니 그나마 다 잊어버렸고, 중급회계 수업부터 다시 들어야 했다.
2004년 2차 시험 직전에 세무회계와 회계감사 강의 테이프를 겨우 한번 다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2차 시험을 봤으니 결과는 당연히 낙방이었다. 수험생 여러분께 정말 간곡히 말하고 싶다. 절대로! 1차 시험 후에 놀지 말 것. 공백을 가지지 말 것. 반드시 1차 공부하던 그대로 계속 공부할 것. 1차 시험 후에 가지는 공백의 두 배 정도의 시간만큼 여러분의 수험기간이 늘어날 것이다(나는 2년이 늘어났다).
참 이상한 것은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정말 쉽게 잊는다는 것이다. 2005년 1차를 합격한 후, 또 다시 해이해진 나는(정말 부끄럽다) 한 달쯤 놀다가 느지막이 공부를 시작하여 2차 시험을 치렀으나 결과는 또 다시 낙방이었다. 이후에는 정말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많이 잃어버렸다. 수험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정말 약해졌다.
2005년 말에는 졸업을 위해 많은 수업을 듣느라 공부를 거의 하지 못했고, 2006년 초부터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심한 독감 후유증으로 시험 이틀 내내 머리와 목이 심각하게 아파서 진통제를 계속 먹어가며 간신히 시험을 치렀다(물론 시험 바로 다음날에 씻은 듯이 나았다). 그리고 합격. 그것도 전체 석차 5등이었다.
▶공부방법
● 1차 시험
1차 시험 공부 방법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다. 1차는 세부 과목 수가 너무 많다. 1차 시험에 임하는 수험생이 각각의 과목을 모두 완벽하게 알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불완전한 상태로 시험에 임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적인 생각으로 1차 시험은 시험시간의 철저한 전략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문제 푸는 순서와 시간 배분에 있어서 정말 칼 같은 기준으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 반드시 확실하게 득점 가능한 파트를 가장 먼저 풀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맨 나중에 풀거나 스킵한다.
내가 사용했던 방법으로 예를 들어본다면, 1교시에 가장 먼저 원가 파트를 풀고, 이어 재무관리 파트, 재무회계 이론 파트, 중급회계 파트, 고급회계 파트, 마지막으로 경영학 일반 파트와 같은 순서를 적용했었고, 물론 각각 엄격한 시간을 책정하여 지켰다. 복잡해 보일지 모르나 한두 번만 연습해 보면 어려울 것 없다. 다른 교시에도 이와 비슷한 원칙을 정해서 지켰다.
이런 방법을 적용하여 자신 있었던 원가나 재무관리 파트에서 8~90%이상 득점하면 나머지 부분을 망쳐도 과락이 나오지 않고 안정적인 점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1차 시험은 정말 전략이 반이다. 내년부터 1차 시험이 바뀌는데, 자신이 강한 과목의 강한 파트부터 확실하게 득점해낼 수 있도록 전략을 잘 짜시기를 바란다.
● 2차 시험
2차는 내게 네 번의 기회가 주어졌고, 세 번의 시험을 치렀다. 첫 유예 2차 시험은 세법 과락으로 낙방했고, ‘3차’ 때는 소위 ‘저공비행’으로 떨어졌다. 비교 목적으로 점수를 적어보면, 2005년 시험에서 나는 재무회계 59.5점, 원가회계 59점, 회계감사 59.5점, 세법 55점, 재무관리 52점의 점수를 받았다. 평균 57점이었고 커트라인은 57.5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006년 시험 점수는 재무회계 68점, 원가회계 85.5점, 회계감사 69.5점, 세법 57점, 재무관리 79.5점으로 평균 71.9점이었고, 커트라인은 52점이었다. 솔직히 좀 신기했다.
이 1년 동안의 불합격과 합격의 차이, 평균 57점과 71.9점의 차이가 어떻게 생겨난 것이었을까.
이상하게도 사실 공부 방법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교재도 바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절대적인 공부량의 차이가 조금은 있었겠지만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다. 공부량이 누적되어서 이 시험은 아시다시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는 이렇다.
먼저 나는 1회독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꽤 긴 편이다. 되도록 모두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편이다. 각자 맞는 스타일이 있겠지만 나 같은 타입의 경우 1회독의 시간은 오래 걸려도 2회독, 3회독으로 가면서 시간이 확 줄어들게 된다. 또한 이런 스타일의 경우는 회독 수에 집착할 것 없이 3~4회독 정도만 해도 합격에 충분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나의 경우 1회독하는 시간이 워낙 길었다보니, 시험 날짜까지 2회독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물론 내 공부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부끄럽게 생각한다.). 이럴 경우 기초는 잘 알되 응용 부분에 약하고 또 암기가 부족하게 된다. 결국 모든 과목에서 50점대의 점수를 받으며 낙방하였다. 올해의 경우엔 1회독에 걸리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시험 전 회독수를 3~4회독으로 늘리는 등 문제점을 시정하여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또한 개인적인 생각으로 문제집을 여러 권 보거나 자주 바꾸는 것에 반대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없었을 리 없다. 작년 시험을 실패한 후 내가 보던 교재가 다른 교재보다 좋지 않은 것 같고, 시험에 나온 내용이 다른 교재에는 있는데 내 교재에는 없었던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진실은, 내가 그 교재들을 완벽하게 보지 않았던 것일 뿐이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보던 교재를 계속 밀어 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재를 여러 권 보려거든,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한 권을 정말 완벽하게 안다고 생각할 때 그렇게 하기를 부탁드린다. 물론, 제일 처음에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교재를 최대한 신중히 선택하시라.
2차 시험을 치르는 데에 있어서도 전략적인 자세가 중요하다. 대부분 고민하는 문제들 중 하나는, 과연 전반적으로 흩뿌리는 게 좋을지, 아니면 맞출 것 같은 문제를 집중적으로 푸는 게 좋을지 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먼저 내가 받은 점수들로 얘기하자면, 2004년 공부를 워낙 안하고 시험을 봤을 때 아는 것만 열심히 풀고 모르는 것은 적당히 골라서 썼더니 점수가 의외로 3과목이 60점대, 재무회계가 50점대로 나왔다(세법은 과락).
2005년에는 아무래도 극도로 위험회피적이 되어 과락을 무조건 피해보고자 모든 문제를 다 건드리는 방향으로 풀었다. 즉 이른바 ‘흩뿌리는’ 전략이었는데, 전술한 바와 같이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50점대였다.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나은 것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004년에는 운도 많이 따랐고, 2005년에는 워낙 시험을 망쳤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어렵다. 다만 점수가 잘 나온 올해의 풀었던 방식을 생각해 본다면, 결론적으로 절충안인데, 일단 기본적으로 1차 목표인 과락을 넘기기 위해 거의 대부분(약 85~90%라고 생각한다)의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시험지를 보면 내가 아는 문제, 좀 쉬운 문제, 남들도 맞출 것 같은 문제가 나올 것이다. 이런 건 우선적으로 반드시 집중해서 맞춰야 한다. 이런 걸 틀리면 합격은 물론 면과락도 어려워진다. 당연한 말인데 왜 또 하냐면, ‘흩뿌리기’를 한답시고 정작 반드시 맞춰야 할 문제를 놓쳤던 케이스를 실제로 내가 2005년에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가 분명히 최소 40점 정도는 출제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어렵고 모르는 문제는 뭐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말을 적당히 버무려 쓰거나-의외로 이런 기술도 점수 획득에 꽤 도움이 된다- 그럴 시간도 없으면 스킵하면 된다. 궁금해 하실 것 같아 내가 푼 분량을 공개하면, 재무회계 85점, 원가회계 90점, 회계감사 95점, 세법 75점, 재무관리 100점 정도이다.
▶마치며
아직 할 말은 많이 남았지만, 이미 글이 길어져 이만 마치고자 한다. 사실 수험생 여러분들이 겪을 시행착오들을 최대한 줄이고픈 목적으로 시작한 수기인데 너무 내 얘기만 늘어놓거나 또는 뻔한 내용만 쓴 것은 아닌가 싶어 죄송스럽다.
과목별 공부법을 쓸까도 했으나 내 공부법들이 내게만 적용될 좀 특이한 것들이기도 하고 다른 수기에 좋은 말도 많겠거니 하여 그저 잡다한 말들로 사족을 약간 붙인다.
먼저 오버 페이스를 조심해야 한다. 굳은 의지도 좋지만, 이 시험은 (특히 2년 이상 공부한 수험생의 경우) 깊게 보다는 넓게, 몰아침보다는 꾸준함이 더 요구되는 덕목인 듯싶다. 무엇보다 정신적인 슬럼프도 조심해야 하지만 몸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정말 조심했으면 한다.
나도 올해 시험 전 5월말부터 거의 3주를 깨끗이 날리고서야 이를 깨달았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오기까지, 공부나 일을 잘하는 사람은 study(work)와 relax의 구분이 정말 명확한 사람들이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정말 푹 쉬면서 공부하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이다. 다들 너무 조급해하시지만 말고 올바른 방향으로 꿋꿋이 정진하시기를 바란다.
<공부한 교재>
재무회계 - 웅지 중급회계, 고급회계, 재무회계연습
원가회계 - 웅지 원가회계, 원가관리회계연습s
회계감사 - 이창우 외 회계감사, 권오상 studyguide와 단기특강
세법 - 이철재 세법강의, 이철재 세무회계연습
재무관리 - 김민환 재무관리, 김민환 재무관리연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