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개편 급물살.. 거대야당 어디까지 수용할까

임광현 민주당 원내부대표 "중산층 세부담 완화 위해 상속세 개편 검토"

국민의힘 "유산취득세 변경, 대주주할증과세 폐지, 세율 인하 등 정부와 협의할 것"

상속세 완화 방안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동안 '부자감세'라는 프레임에 갇혀 꿈쩍도 하지 못했던 상속세제 개편이 22대 국회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정부여당은 물론, 이번 국회에서 거대 의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이 개편에 일부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

상속세 완화 방안은 지난해 정부 세법개정안에 실릴 것으로 기대를 모은 바 있다. 상속세율 자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이야기는 이미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데다,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에 따른 상속세가 12조원에 달한다는 이야기, 김정주 넥슨 창업자 사망 후 상속세를 지분으로 납부하다 보니 정부가 넥슨의 2대 주주가 됐다는 이야기 등이 퍼지면서 '부의 분배도 중요하지만 정도가 심한 것 아니냐'라는 여론이 점차 형성됐기 때문.

상속세에 대한 경제계의 호소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 윤석열 정부도 출범 초기부터 상속세의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했었다. 유산세 방식의 현행 과세체계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피상속인 전체 자산을 기준으로 과세한 뒤 나머지를 나눠 갖는 현재의 방식에서 받은 사람(상속인)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으로 개편을 추진한 것.

하지만 '여소야대' 정국에서 난항이 예상되자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훗날을 도모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추 전 부총리는 "(유산취득세 방식은) 조금 더 깊이 있게 보고 연구·논의할 필요성이 있겠다 싶어 올해 상속세 전반적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정부는 저출산 대응 차원에서 '혼인증여공제'만 세법개정안에 포함시켰다.

◆ 민주당, 중산층 상속세만 완화?

올해도 여소야대 국면은 유지됐지만, 야당의 극심한 반대가 어느 정도 완화됐다는 점에서 상속세 개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집값이 뛰면서 상속세 대상이 되거나 상속세가 늘어난 중산층의 부담을 줄이자는 것인데, 고소득 중산층으로까지 지지기반을 확장하려는 것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세청에서 차장을 지낸 임광현 민주당 원내부대표는 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초부자 상속세 감세보다 중산층의 세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2021년 19%, 2022년 17% 넘게 오르며 상속 재산가액 5억~10억원 사이의 과세 대상자가 49.5% 늘어났고 이 구간에 속하는 상속세 결정세액은 68.8% 급증했지만, 일반 상속세 일괄공제 규모는 28년째 5억원에 머물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중산층 가구의 세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세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임 원내부대표는 정부여당이 생각하고 있는 상속세 완화 방안과 민주당의 개정 방안은 결이 다르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상속세 최대주주 할증(20%) 폐지, 가업상속 공제 확대는 '부자감세'라 반대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중산층의 세부담 완화를 위한 상속세 개편은 검토해 볼 수 있다는 것.

그는 "상속세 감세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초부자 상속세 감세고 다른 하나는 일반 상속세 감세다"며 "현재 윤석열 정부는 2년 만에 또 초부자 상속세 감세를 추진한다. 제도 변화의 정책적 실효성과 사회 파급효과 등에 대한 정밀한 연구 분석 없이 초부자 상속세 감세를 추진하면 졸속 우려가 크다"고 강조했다.

◆ 재계. '벨류업' 등에 업고 상속세 완화 촉구 
재계는 오래전부터 상속세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높은 상속세를 부담하기 위해 지분 매각이나 주식담보대출 등의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는 투자보류, 고용불안, 지배구조 불안 등으로 이어져 기업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최근 정부가 주도 하고 있는 기업 '벨류업'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상속제 개편을 위해 벨류업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상속세 완화에 대한 재계의 목소리는 예전부터 한결 같았다.

재계가 요구하는 부분은 세율 인하, 과세표준 구간 상향, 가업상속공제 확대 등이다. 지난 3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개최한 '기업 밸류업을 위한 세제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박성욱 경희대 세무학과 교수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상속세율의 급격한 인하보다는 10%포인트 인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상속세율 첫 단계 과세표준 구간 금액도 현재의 1억원에서 15억원으로 높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아울러 "가업상속공제 적용대상 기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공제한도를 늘리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최대주주할증평가 제도는 폐지하거나 업종, 규모, 경영상태에 따라 차등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도 지난달 '상속 세제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현 상속 세제는 부의 재분배 보다는 경제 역동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대한상의는 △단기적으로 OECD 평균수준인 15%로 상속세율 인하 △유산세 방식의 유산 취득세 방식으로의 전환 △최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 등을 요구했다.

한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22대 국회에 바라는 경제계 110대 입법과제'를 국회 양당에 전달했다고 밝히면서 상속세 최고세율을 30%로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 평균인 15% 수준으로 인하하고, 최대 주주 보유 주식에 대한 20% 할증을 폐지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 유산취득세 전환, 대주주 할증과세 폐지 가능할까
정부여당은 올해 세법개정안을 통해 상속세 개편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다는 계획이다. 주요 개편 내용으로는 유산취득세 변경, 대주주 할증과세 폐지, 상속세율 인하 등이 전망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31일 "상속세 부과 방식을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변경하고, 대주주 할증과세를 폐지하는 상속세 개편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겠다"며 "상속세율을 주요 선진국 사례를 감안해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정부와 추가 협의하겠다"고 전했다.

기재부는 지난해 2월 조세개혁추진단을 꾸리고 상속세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유산취득세 전환은 각종 공제 제도를 포함해 상속세법을 새로 써야 할 만큼 법체계를 뒤바꾸는 작업이어서 방대한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에는 실패했지만 올해는 세법개정안에 유산취득세 전환을 담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용주 기재부 재산소비세정책관은 지난달 10일 조세일보 주최로 서울 여의도 KFI타워에서 열린 '2024년 세제개편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담이 높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면서 "상속세와 관련해 현행 유산세 방식을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선 정부도 별도의 조직을 구성하는 등 적극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유산취득세 전환에 대해 별도로 조직을 구성해서 별도의 추진단을 운영하고 있다"며 "유산취득세로 전환되면 세율이 낮아질 수 있고 공제를 더 받기 때문에 세부담이 좀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유산취득세를 논의하게 되는 근본적 이유는 상속에 따른 세금을 깎아달라는 것"이라며 "다만 깎아주는 방법의 일환으로써 유산취득세가 검토되는 것이지 유산취득세가 도입된다고 상속에 대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면 여야 관계 없이 충분히 설득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자감세라는 부정적 정서와 이번 국회에서도 막강한 힘을 얻은 야당의 반대를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산취득세 전환, 세율 하향조정 등을 장기과제로 두고 밸류업 정책과 관련한 상속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내달 발표되는 정부 세법개정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향후 여야 간의 논의는 어떻게 진행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