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측 "필리핀에 리호남은 없었다"
"70만불, 긴 시간 걸쳐 방북비용 준비했다는 시나리오"
"북한-필리핀 2000년 수교…'없다' 입증할 논리 부실"
"정말 법적으로 다투기 위한 쟁점인가…재판 지연 목적?"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혐의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관련 방북 비용 300만 불 중 70만 불을 받았다는 북한 대남공작원 '리호남'이 돈을 받은 현장에 없었다는 이른바 '리호남 필리핀 부재론'이 향후 이 대표 대북송금 의혹 재판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은 지난달 22일 수원고법 형사1부(부장 문주형) 심리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서 "필리핀에 리호남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안부수 전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삼아 이 전 부지사의 대북송금 관련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한 바 있다.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김성태 전 회장이 리호남을 만나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 방북 비용으로 70만 달러를 건넸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 이화영 측은 항소심에서 '리호남 부재'를 입증해 김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측 김현철 변호사는 지난 7월 26일 이 전 부지사의 대북송금 사건 항소심 첫 공판 이후 한 유튜브 방송 인터뷰에서 "리호남의 필리핀 부재 이슈는 4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리호남이 필리핀에 없었다면 △방북 비용 300만불 중 첫 번째 지급했다는 70만 불의 주장 △70만 불을 리호남에게 주고 마닐라 콘래드 호텔에서 이화영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에 전화했을 때 김성태를 바꿔주고 방북 비용 대납 사실을 통화했다는 주장 △ 24~26일 국제대회 이후 29일 이화영 전 부지사가 이재명 지사에게 방북비용 대납을 보고했다는 진술이 담긴 피의자 신문 조서 내용 등이 사실이 아님이 입증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기도가 북한에 쌀 10만톤을 인도적 제공 의사가 있다는 2019년 6월 23일 공문이 이후 8월 9일에 삭제된 이유가 당시 문건 작성 공무원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제안이었기 때문인데, △7월에 방북비용을 줬으므로 쌀 10만톤을 더 이상 줄 이유가 없어서 제공하지 않았다는 검찰 주장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리호남이 가명으로 필리핀 밀입국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당시 필리핀은 북한과 미수교국이고 유엔 제재 동참 국가라 북측 인사 6명이 어렵게 입국했다고 했다. 그는 "그 과정을 저희가 증명할 것이다. 리호남이 있었다는 사실은 검찰이 증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거액의 달러를 들고 필리필 국경을 넘어 가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추가 문제제기도 했다. 그는 "당시 북한 사람들은 베이징으로 다시 넘어가는데, 중국은 북한과 우호국가니 중국에서 줬으면 됐을 것"이라며 "필리핀 공항은 몇 달러만 가방에서 나타나도 다 조사받는데, 현금 70만 불이 필리핀 공항을 넘어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7월 리호남에 70만 불 전달'했다는 스토리가 나온 이유도 따로 있다고 했다. 그는 "2019년 12월에 한꺼번에 방북 비용을 줬다고 하면 뭔가 그림이 안 좋은 것"이라며 "5월에 이화영이 김성태한테 부탁을 하고, 김성태가 7월에 일단 70만 불을 주고, 12월에 200만 불 주고, 그다음해 1월에 나머지 30만 불 주고, 긴 시간에 걸쳐서 준비했다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제대회 행사 공식 초청 북측 인사 명단엔 리호남이 없다는 점, 리호남이 오지 않았다는 일부 관계자 증언을 근거 삼아 검찰의 수사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민수 대변인은 지난달 25일 논평을 내고 "언론 보도에 따르면, 리호남은 당시 행사 공식 초청 명단에도 없었던 인물이다. (대북 송금 연결 고리인) 안부수 회장의 최측근이자 당시 필리핀 행사를 총괄했던 김 모 대표의 증언에서도 리호남이 오지도, 리호남을 보지도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리호남'은 필리핀에 갈 상황이 아니었다며 "중국 단둥과 심양을 오가며 쌍방울 방용철 부회장 등을 수시로 만나던 때에 신변이 보장된 중국을 굳이 벗어날 이유가 있었겠느냐. 또, 국제적으로 유명한 대남 공작원이 북한과 수교도 맺지 않은 필리핀에 위험을 무릅쓰고 돈을 받으러 갈 이유도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리호남의 필리핀 방문에 대한 확실한 증거 없이, 어떤 물증도 없이 오직 김성태 등의 진술만으로 공소를 제기한 것"이라고 했다.
당 지도부에 있는 한준호 최고위원도 '리호남 필리핀 부재론'에 대해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해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26일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제2차 아시아 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를 계기로 그 돈이 오갔다', 이것이 검찰이 쓴 시나리오의 핵심"이라며 "주었다는 사람은 있는데, 받았다는 사람은 없다", "검찰이 쓴 시나리오라기엔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했다.
이어 △남측과 북측 인사들이 참석한 비밀 만찬 자리를 촬영한 동영상에서 '리호남'이 등장하지 않는 점 △국제대회를 총괄했던 김 모 대표가 크로스체크 한 결과, 직원 누구도 리호남을 보지 못했다는 점 △북측 인사 여섯 명의 필리핀 비자 발급 과정에서 시행된 각종 문서 중에 리호남 이름이 없는 점 등을 짚었다.
반면 법조계 일각에선 리호남 필리핀 부재 주장의 근거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률사무소 집의 원영섭 대표 변호사는 "뉴스타파에서 주장하는 맥락 자체는 '리호남이 필리핀에 없었다'는 점을 확정하고 논리를 풀어나가고 있다. 일단 두 가지 전제가 잘못됐다. '유명한 거물급 공작원'이라는 말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그 자체가 언어모순이다. 또 필리핀하고 북한은 2000년에 수교를 맺었다. 미수교국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원 변호사는 "리호남이라는 북한의 거물급 대남공작원이 왔으면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다는 주장인데, 유명한 사람이 오기만 하면 국가에서 다 알게 되는 건가"며 "항소심에서는 기존 1심에서 인정된 거를 이화영 입장에서는 탄핵해야 되니까 당연히 주장할 수 있지만, '없다'를 입증하는 논리 자체는 부실해 보인다"고 했다.
이 전 부지사의 전 변호인이었던 설주완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1심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다퉈진 적이 없다. 수사 과정에서도 리호남에 대해서 이화영 측에서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다툴 거였으면 1심부터 세게 다퉜어야 한다"며 "재판을 지연하기 위한 목적이지 정말 다퉈보기 위한 쟁점인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쌍방울 대북송금 관련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대표의 첫 공판이 지난달 27일 수원지법에서 진행됐다. 이날 재판은 피고인 측의 사건 기록 검토가 마무리되지 않아 약 30분 만에 종료됐다.
수사 기록이 약 5만쪽(80권 분량)이나 되어 피고인 측이 범죄 혐의에 관한 입장과 쟁점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오는 10월 8일로 잡고 한 차례 더 준비기일을 더 진행하기로 했다. 피고인 측에는 최대한 기록 검토를 마쳐달라고 요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