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동산 담보 등기제도 신설 검토
국내 기업의 국제 거래나 외국 기업의 국내 활동이 크게 증가하는 등 경제여건이 급속하게 변화함에 따라 대법원이 기업들이 좀 더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법원은 외국 기업이나 국내 기업이 한글이나 한자 외에 로마자로 상업·법인등기를 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 개발에 착수하는 한편 부동산이 아닌 동산·채권으로도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채권·동산 담보 공시 방법 등을 연구 중이다.
◇ 로마자 상호·이름 등기 내년부터 허용 = 기업활동에 필요한 상업·법인 등기부에는 기업 상호나 등기이사 이름이 한글이나 한자로만 표기돼 있다.
현행 '등기부 기재문자에 대한 사무처리 지침' 상 등기부에 로마자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주식회사 '에이비씨'가 국내외에서 'ABC'라는 상호를 쓰고 이 회사의 외국인 등기이사 에이브러햄 링컨씨가 'Abraham Lincoln'이라는 표기를 공식 사용하더라도 로마자로 표기된 상호·이름의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경제계에서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외국 기업이나 국내 기업이 로마자로 상호를 등기할 수 있도록 '상호 및 외국인 성명의 등기에 사용할 수 있는 문자 등에 관한 예규'(가칭) 초안을 마련했으며 로마자 상호 등기가 가능한 전산시스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예규가 확정되면 기업의 상호나 이사 이름을 한글로 기재하되 괄호 안에 로마자나 한자, 아라비아숫자, 부호 등을 사용해 표기할 수 있다.
다만 로마자 사용은 상업·법인등기에 한정되며 부동산등기를 비롯한 다른 등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산시스템 개발 일정을 고려할 때 내년 4월부터는 로마자 사용이 가능하다. 상호나 이름을 로마자로 등기하게 되면 정확한 공시가 가능해 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유사 상호 판단기준 마련 = 현재는 창업주가 법원 등기소에 회사 상호를 등록하려 해도 이미 등록돼 있는 다른 상호와 비슷하다면 등록이 거부된다.
상법 및 비송사건절차법 상 동일한 지방자치단체 내에서 타인이 등기한 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상호가 아니라면 등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사 상호 여부가 등기 업무 담당자 개인의 판단에 좌지우지 되기 때문에 경제계에서는 "자의적인 등기관의 판단이 회사 상호 등록을 지연시키는 것은 물론 기업 활동을 저해하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대법원은 회사 상호가 등록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유사상호의 판단 기준에 관한 예규'를 제정, 올해 상반기 중 시행하기로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유사 상호 여부에 대한 객관적·통일적 판단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등기 업무를 담당하는 등기관의 자의적 판단을 막고 예측 가능성도 높여 신속한 상호 등기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 채권·동산 담보 등기제도 신설 =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 담보로 부동산을 제공하지만 종종 어음이나 반제품 등 채권·동산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채권을 담보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민법 상 채무자(채권 발행자)의 승낙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부동산을 적게 소유한 기업들은 신속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또 금융감독위원회에 채권 담보를 등록하는 방법도 있지만 신용도가 낮은 기업은 활용하기 어렵고 부동산처럼 근저당권을 설정할 수 없어 이중양도 등의 문제도 발생한다.
대법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판사 5명으로 구성된 '특수 등기 연구반'을 운영하며 채권·동산 양도를 등기로 공시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채권이나 동산 등 다양한 형태의 자산을 담보로 제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법적 제도가 조만간 정비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