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인회, 검찰간부 연루 의혹은 '오리무중'
김흥주(58.구속) 삼주산업(옛 그레이스백화점) 회장의 정·관계 로비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면서 그 동안 제기된 의혹이 하나씩 베일을 벗고 있다.
검찰은 김씨와 김중회(58) 금융감독원 부원장, 신상식(55) 전 금감원 광주지원장을 구속하고 한광옥(65)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입건하는 등 짧은 기간에 적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고 자평하고 있다.
검찰은 일단 수사의 큰 줄기는 잡은 것으로 보고 '잔불 정리' 작업에 들어갔으나 여전히 수사 과정에서 뜻밖의 변수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승구 서울서부지검장은 "이제 수사를 오므리는 단계로 보면 된다"며 "그러나 잔불이 어떻게 튈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 정치인 연루설 일부 확인 = 검찰은 한 전 비서실장이 권노갑(77) 전 민주당 고문의 사무실 마련을 위해 김씨에게 서울 도화동 사무실 임대료와 월세를 대납토록 한 사실을 밝혀내고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한 전 실장은 자신이 직접 금품을 받진 않았지만 2001년 권 전 고문의 사무실 임차 비용 등으로 1억원 안팎의 돈을 요구했고 그 대가로 김씨로부터 여러 건의 인사청탁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2001년은 한 전 실장이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주당 대표를 차례로 역임하면서 정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당한 인사청탁을 받아들인 것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사무실비 대납의 대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거의 다 확인을 마쳤다. 인사청탁은 그 안에 포함돼 있다"며 인사 청탁뿐 아니라 또 다른 반대급부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음을 내비쳤다.
검찰은 한 전 실장 외에 다른 정치인이 이번 사건에 연루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김씨 혐의에 대한 보강수사 과정에서 또 다른 인사가 등장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 경제검찰 금감원 '망신살' = 이번 사건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금감원이다.
현직 부원장과 전 광주지원장이 한꺼번에 구속된 데다 비록 참고인 신분이긴 하지만 이근영(70) 전 원장까지 검찰에 소환돼 대질신문까지 받아야 했다.
김 부원장은 비은행검사1국장이던 2001년 2월 이 전 원장의 소개로 김흥주씨에게서 2억3천만원을 받고 골드상호신용금고 인수 작업을 도와준 것으로 밝혀졌다.
신 전 광주지원장은 2002년 11~12월 금고 인수 실패로 자금난을 겪던 김씨가 약속어음 20억원의 할인받을 수 있도록 알선하고 이 어음에 직접 배서해줘 은행 대출까지 보증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해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금감원의 고위 간부들이 오히려 권한을 남용해 부적절한 거래를 도와준 것이다.
특히 골드금고는 당시 부실금고가 아니라 정상 운영 중이던 곳으로 밝혀져 금감원 간부들이 김씨가 '로비 자금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도우려 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골드금고는 2001년 초 '이용호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김영준씨가 1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30억원의 계약금까지 지급한 상태였지만 금감원 간부들의 개입 이후 계약이 파기되고 김흥주씨가 새로운 인수자로 급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부원장은 김씨에게 자신이 보관하던 금고 관련 자료를 넘겨줬으며 김씨가 금고 주식을 취득해 금감원에 신고하는 과정에서도 편의를 봐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 전 원장이 김씨를 김 부원장에게 소개해 준 목적과 김 부원장이 정상 금고였던 골드금고를 인수 대상으로 주선한 경위를 집중 조사 중이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이밖에 검찰은 이주성(58) 전 국세청장이 국장 시절인 2001년 9월 룸살롱에서 술 접대를 받다가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암행감찰반)에 적발됐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전 청장은 친분이 있던 김흥주씨에게 부탁, 당시 감찰반원으로 파견 근무하던 신 전 광주지원장을 통해 적발내용에 대한 상부 보고를 무마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이 국세청 모 과장과 함께 당시 감찰에 적발된 사실을 확인하고 총리실 직원 등을 상대로 보고가 누락된 경위를 조사 중이다.
감찰 조사가 무마된 경위가 불법이라고 해도 공소시효가 완성돼 처벌은 불가능하겠지만 감찰반 당사자들이 현직 공무원인 만큼 사실관계를 확인해 해당 기관에 통보할 것이라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 남은 의혹 = 검찰은 한 전 실장, 김 부원장, 신 전 광주지원장 등을 24일께 일괄 기소하고 수사를 일단락지을 방침이지만 아직 풀어야할 의혹도 적지 않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온 현직 검찰간부들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아직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김씨 등을 기소할 때까지도 이 부분을 명쾌히 설명하지 못할 경우 '제 식구 감싸기'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K검사장은 2001년 김씨에 대한 대검 내사가 진행되자 압력을 넣어 내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고, H부장검사는 변호사 시절 김씨와 16억원대 돈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 인사에 대한 부분은 감찰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서 수사하기는 어렵다"며 "감찰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해 K검사장 등에 대한 조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검찰은 K검사장 등에 대해 이미 감찰을 통해 별다른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바 있어 의혹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선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 정·관계의 유력 인사 45명으로 짜여졌다는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형제 모임'의 구성원과 김씨가 이들을 통해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도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은 "모임의 실체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지나친 의혹 확산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검찰은 또 2001년 당시 골드금고 대표였던 유모씨가 김영준씨와 인수 계약을 깨고 인수 대상자를 김흥주씨로 바꾼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점에서 유씨 또한 불법 행위를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김씨가 용인 일대 토지를 삼중, 사중으로 매도해 중도금을 가로채고 이 과정에서 소송사기까지 시도했다는 의혹도 검찰의 수사대상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