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이 2일 전국경제인연합 부회장직을 사퇴, 재계에 파란이 일고 있다.
김 회장은 최근 회장단 회의에서 3연임하도록 추대된 강신호 회장 체제에 불만을 품고 전경련과 결별 절차를 밟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 회장은 이날 그룹 홍보팀을 통해 "그동안 전경련의 조직 혁신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혁신이 이뤄지지 않았다. 차제에 전경련이 유능한 인재들을 받아들여서 전경련의 발전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달했다.
사실상 '강 회장 체제의 노후한 전경련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경련도 "김 회장이 지난 1일 조건호 상근 부회장을 통해 사퇴서를 전달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전경련은 이에 대해 아직까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차마 예상치 못했던 현직 부회장의 '탈퇴'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전경련 부회장단 중 자진 사퇴를 한 경우는 2004년 삼보그룹 이용태 회장이 삼보컴퓨터의 법정관리가 시작되면서 사퇴한 것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전경련 회장단은 지난달 신라호텔에서 회장단 모임을 통해 강 회장을 '만장일치' 의견으로 3연임 회장으로 추대한 바 있어, 큰 이변이 없는 한 무난히 강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김준기 회장이 회장단 사퇴라는 초강수를 두며 강 회장의 전경련에 반기를 들면서 소문으로만 나돌던 회장단간 갈등이 확인됨에 따라, 전경련 회장 선임 문제는 총회를 불과 1주일 앞두고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강 회장은 일전에 '한미 FTA 민간대책위원회' 회의에서는 기자들에게 "9일 총회가 열리는데 꼭 (회장을) 하라고 한다면 아직 건강은 괜찮은 만큼 열심히 해보겠다"고 밝혀 사실상 회장직 수락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강 회장은 이날 이사회 직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특별한 언급을 피하며 "총회에 모든 것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특히 강 회장은 "총회 때까지는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미 전날 조건호 부회장을 통해 김준기 회장의 사퇴 소식을 들은 강 회장의 이런 발언은 결국 김 회장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총회까지 '정면 돌파'를 해 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파문이 확산되면서 강 회장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연임 의사를 철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김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특정인을 고수했던 지, 아니면 단순히 새로운 회장의 출현을 원했는 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전경련 비상근 부회장의 사퇴라는 엄청난 심적 부담을 지게 된 강 회장으로서도 총회를 불과 1주일 남겨둔 시점에서 회장직 연임 의사를 수락한 마당에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애초 마땅한 차기 회장감도 없는 상황에서 강 회장도 '3연임 수락 거부'로 대응한다면 전경련은 말 그대로 주인 없는 배가 돼 표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 회장은 만 80세의 고령과 상대적으로 약한 기업(동아제약)의 사세, 최근 불거진 아들 강문석 수석무역 대표와의 경영권 분쟁 등 여러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어 강 회장의 3연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결코 길지 못한 1주일의 시간 동안 강 회장과 남은 18명의 비상근 부회장 등 전경련 회장단이 출범 이후 최대 위기 상황에 봉착한 전경련을 어떻게 정상화시킬 수 있을 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