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형제의 난을 겪으며 이듬해 7월 230억원대의 회사자금횡령 및 28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행위로 법원으로부터 3년의 징역형 등을 받았던 두산그룹 박용성 前회장과 박용만 前부회장 등이 등기이사로 '당당히' 경영일선에 복귀하게 됐다.
두산중공업(대표이사 이남두)은 16일 전체 주주 80.33%(6888만5001주)가 참석한 가운데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제44차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참석주주의 97%에 달하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박용성·박용만 등 두산그룹 총수일가와 이성희 두산중공업 부사장을 회사 등기이사로 복귀시켰다.
이들이 압도적인 표차이로 등기이사로서의 경영복귀에 성공했지만, 주주총회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건전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소수주주들로부터 의결권행사 대리권을 부여받고 12명이 주주총회에 참석, 박 회장을 포함한 이사선임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
김상조 소장은 이날 주총에서 “오늘 주주총회에 참석한 이유는 박 회장과 지배주주 일가의 문제 때문”이라며 “이들은 두산중공업뿐만 아니라 두산그룹의 모든 계열사에 위협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이어 “지난 2005년 박용오씨의 진정으로 형제의 난이 불거진 이후 박 회장은 2800억원대의 분식사실을 자진 고백했다”며 “불구속기소와 집행유예, 그리고 사면복권으로 형을 1일도 살지 않은 박 회장이 곧바로 이사로 복귀하는 것은 자진고백이 진정한 반성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두산중공업의 주식을 1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박 회장 일가가 두산중공업의 대주주책임론 등을 거론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이 김 소장의 주장.
이에 대해 이남두 두산중공업 대표이사는 “기업집단을 인정하는 법에선 지분소유구조와는 무관하게 실질지배력에 따른 대주주 개념을 인정한다”며 “대주주가 등기이사가 아니면 책임경영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등기이사 복귀는 실질책임을 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날 주주총회에선 박 회장 일가의 경영복귀와 관련해 찬반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한 주주는 “두산의 사규에선 부정한 직원에 대해 잘못이 작아도 인사위원회에 올라가지만, 박용성 회장은 처벌하지 않았다, 회사 사규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 사장은 “사규의 경우는 임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회사 노조간부도 “회사는 법과 원칙의 윤리경영을 강조하는데, 박 회장은 2005년 12월 4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후 모든 국민에게 사죄하고 모든 직을 떠났다”며 “당시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겨 투명경영을 약속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이어 “법과 원칙에 따른 윤리경영을 강조했던 박 회장이 문제를 야기하고 또 경영을 하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직원들에게 법과 원칙을 지킬 것을 주문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회사경영진은 “박 회장을 이사로 선임하는 것은 회사영업상 필요에 의한 것”이라며 “사면복권 등 형사처벌절차가 완료돼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데다, 국제화와 글로벌화라는 회사입장을 감안해 이사영입이 필요한 시기”라고 초지일관했다.
오전 9시 양재동 aT센터 5층에서 시작된 이날 주주총회는 경제개혁연대와 회사를 옹호하는 주주들 사이에 팽팽한 설전이 이어지며 6시간을 넘겨서야 끝났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두산중공업 및 그 임직원은 신의성실을 바탕으로 일을 하며 법령을 준수하고 건전한 사회관습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두산중공업 윤리강령’이 적힌 플랭카드를 총회장에 펼쳐 분위기가 크게 냉각되기도 했다.
이남두 대표이사가 곧바로 경제개혁연대의 행위에 제재를 가했고, 이로 인한 소란으로 3시간 넘게 진행됐던 총회가 잠시 휴회하는 소동도 벌어졌다.
한편, 이날 주주총회가 끝난 뒤 김상조 소장은 “오늘 우리의 뜻은 모두 전했다”며 “주주들의 의결권행사결과와 주총결과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날 회의에선 김종상 前중부지방국세청장이 99%의 찬성으로 사외이사겸 감사위원에 선임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