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중립을 누구보다더 중요시해야 할 국세청 고위공직자가 직위를 이용, 특정 대선후보를 위해 무려 166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모아 갖다 바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국세청은 그야말로 톡톡히 '망신'을 당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세풍사건이 세간의 이슈에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날 무렵인 1999년, 정부가 '국세공무원법'이라는 법률 제정 추진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국세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법의 명분이었으니, 세풍사건의 '유산(遺産)'이었던 셈이지요.
그러나 이 법률의 제정은 중단됐습니다(법률 제정과 별개로 1999년 국세행정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한 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년이 지난 2007년, 정치권의 주도로 '국세청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1999년 국세공무원법과 2007년 국세청법은 명칭과 세부적 내용에서 상이한 부분이 많지만 명분은 같습니다. 바로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입니다. 즉 두 법의 '정신'은 같다고 할 수 있지요.
갓 발걸음을 뗀 국세청법 제정 추진을 둘러싸고 앞으로 갑론을박이 격심할 전망입니다. 찬·반양론이 분명히 갈려 있기 때문이지요. 지난 25일 이 법과 관련한 공청회에서도 이는 명확히 가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논의는 좀 더 심도있고 격하게 진행될 것은 분명합니다. 출발점에 선 국세청법, 본격적인 논란을 앞두고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법 제정의)필요성' 여부입니다.
□ '국세청법' 과연 필요할까요?=위에서 설명했듯이 1999년 국세공무원법과 2007년 국세청법의 기본 취지는 국세청의(국세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입니다. 이미 사장된 국세공무원법은 제쳐두고 국세청법만 놓고 따져보겠습니다.
국세청법에서 제시한 정치적 중립성 확보의 최대 장치는 '국세청장 임기제'입니다.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의 법률안은 2년 단임제를 제시했습니다.
국세청장 임기를 법정화한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성이 확보될 것이라는 논리는 사실 빈약해 보입니다. 임기제를 채택하고 있는 검찰청장이나 경찰청장도 임기가 보장됐더라도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임명권자는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입니다. 즉 선거를 통해 선발된 것도 아닌, 통치권자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 자신을 발탁한 상급자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논리, 이는 어찌 보면 넌센스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국세공무원들의 보수체계 인상이 가져다줄 '효익'을 따져봐야 합니다.
사실 1999년 국세공무원법이 무산된 직접적인 이유는 '보수형평성' 문제였습니다. 같은 공무원 신분이면서 세금 걷는 일 한다고 해서 보수를 더 많이 준다?, 충분히 반발을 살 여지가 있지요.
국세공무원들의 보수를 올리는 문제는 '비리유인의 차단'과 맞물린 문제입니다. 최근 국세공무원의 손가락 하나가 '1억원'이라는 농담이 세간에 희화화 되었듯(?) 국세공무원의 비리유인은 참으로 많고 그 '통'또한 큰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봉급을 2, 3배 더 주더라도(대신 비리를 저질렀을 경우 처벌의 강도를 상향) 비리로부터 떼어놓아야 한다는 것이 국세공무원들의 보수체계 인상의 기본배경입니다. 그러나 봉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비리유인은 줄어들겠지만 완전히 없어질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세심히 따져보면 비리에 대한 유인은 보수체계의 문제가 아닌 정부 공직자로서의 기본적 태도의 문제임과 동시에 세무공무원의 '자의성' 개입여지가 많은 현행 세법체계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다소 꿈같은 이야기지만)세무공무원으로서의 수신제가(도덕성)와 더불어 자의성 개입여지가 적은 세법체계 확립이 '앙상블'을 이룰 때 세무공무원의 비리는 줄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 "국세청법, 그래도 필요하다?"=위에서 설명했듯이 국세청법이 가진(법률안 형태로 제기된) 허점은 한 두 개가 아닌 것이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좀 더 깊은 논의와 논쟁을 통해 좀 더 세련미를 가해야 할 것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이 같은 허점이 있다고 해도 법 제정이 아예 필요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법률이야 시행에 앞서 좀 더 보완하면 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필요성' 여부는 인위적 가감을 하기가 어려운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민간학자들 사이에서는 그 동안 국세청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습니다. 명분은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에 맞춰져 있었지요. 적어도 국세청장 임기제라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주장이었습니다.
엄호성 의원의 국세청법은 이 같은 학계의 주장을 '형상화'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즉, 이론적 필요성은 이미 충분히 검증이 됐다고 볼 수 있는 셈이지요. 큰 틀에서 본다면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는 개별법의 입법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흔히 법은 '최소한'이라고들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국세청법은 최소한인 셈입니다. 그저 순수한 의미,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고, 비리유인을 줄인다는 법의 의미만 놓고 볼때는 '최소한' 필요한 법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남은 것은 국세청법이 담고 있는 각종 논점에 대한 현실적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명쾌한 논리와 체계를 심도 있게 논의해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법 추진의 의미를 제대로 살려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법률안을 둘러싼 앞으로의 논의과정이 상당히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