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에 고율의 세금을 붙이는 것은 지난 수 십년간 대한민국 세제당국이 견지해 온 정책노선입니다. 수 십년간 지켜온 자존심 때문일까요. 기름값이 천정부지로 올라도 정부는 독야청청, 이 같은 정책노선을 버리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기름값)비싸니까 아껴써라, 고 하니 국민들 입장에서는 분통터질 노릇입니다.
정부의 이 같은 고세율 정책이 낳은 사생아가 '가짜유류'의 양산입니다. 2, 3년전 '세녹스' 파동이 대표적인 예입니다(한때 대체유류로 각광받던 세녹스가 좌초된 것은 바로 세금 때문이었습니다).
가짜휘발유는 여러 가지 화학제품(톨루엔, 솔벤트 등)을 섞기만 하면 금방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유류세가 한 푼도 없기 때문에 가격이 싸서 시장에서 엄청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지요.
소비자들 입장에서야 싸서 좋다지만 일반 정유사와 정부입장에서는 '눈엣가시'나 다름없습니다. 자동차 기능에 손상을 준다는 둥 악영향 등을 걱정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가짜유류의 창궐이 국가재정(기업이윤)의 타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진짜 속내입니다.
□ 세녹스 파동이후...가짜유류에도 '교통세' 과세=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세녹스 파동 이후 정부는 법을 뜯어고쳐 '유사석유제품'에도 교통세를 과세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만들었습니다.
가짜유류의 유일한(?) 매력인 가격경쟁력을 세금으로 차단해 버린 셈이지요.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상실한 가짜유류는 자연스레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었지요.
그러나 시장은 즉각 대처법을 찾아냈습니다. 가짜유류 제조 및 판매가 물밑에서 은밀히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지요(세녹스가 거창하게 광고하고 영업했다가 한 순간에 공중분해되는 것을 지켜봤으니 학습효과가 대단했던 셈입니다).
결국 가짜유류 적발을 위해 막대한 '행정력'을 동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 것입니다.
□ "오리발을 내밀어도 유분수지..."=본론으로 돌아와서. 최근 국세심판원은 한 가짜유류 제조업자가 제기한 과세불복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현행 법상 세금이 부과되도록 되어 있으니 당연한 결정이지요. 그러나 이 가짜유류 제조업자의 항변이 그야말로 '걸작'입니다.
이 제조업자는 지난 2005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에나멜신나와 소부신나를 섞어 만든 가짜유류를 팔아왔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이 잠행수사를 펼친 끝에 이 제조업자가 가짜유류를 차량에 주유하는 모습이 촬영됐습니다. '딱 걸린' 셈이지요.
이 제조업자는 경찰조사에서는 순순히 자신이 가짜유류를 제조해 판매했다고 진술을 했지만 세금은 내기 싫었던 모양입니다.
국세청이 19억원의 세금을 두들기자 이 제조업자는 즉각 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습니다. 이 제조업자는 "(내가)팔아 온 제품은 차량용 전용이 가능하지만 그러한 목적으로 제조하지도 판매하지도 않았다"며 과세에 승복할 수 없다고 '상반된' 주장을 펼쳤습니다.
심판원이 제조업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면 두고두고 욕을 먹었겠지만 심판원은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심판원은 "제조업자가 경찰조사에서 가짜유류 제조·판매사실을 시인했고 법원으로부터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을 선고받은 사실이 확인된다"고 밝혔습니다.
심판원은 이어 "제조업자가 만든 제품이 차량연료로 사용이 가능한 점 등을 감안할 때 교통세과세대상 물질인 '유사석유제품'에 해당된다"며 "국세청이 제조업자에게 교통세를 부과한 것은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 근절되지 않는 '가짜유류'-유류세 정책 제고 필요하다(?)=가짜유류의 유통은 유류에 대한 정부의 고세율 정책이 낳은 '부작용'입니다. 이 때문에 경찰, 검찰 등 공권력이 낭비되는 등(단속을 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유류에 대한 고세율 정책을 정부가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름에 붙는 세금을 일정부분 낮춰 발생하는 세수감소분은 사회적 비용 지출의 축소라는 것으로 보충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전자는 눈에 확연히 보이지만 후자는 감조차 잡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쉽사리 선택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쳐 날 뛰는 기름값 때문에 국민들 심기가 편치 않은 이때 정부의 전향적 선택은 큰 반향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국민여론의 역전'이라는, 억만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엄청난 '효과'가 바로 그 것입니다.
가짜유류 유통 축소와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 지출 감소는 그저 '덤'일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