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재 전 청와대비서관을 사실상 검찰 수사선상까지 끌고온 부산 H토건 대표 김상진(41)씨 사건은 김씨가 거액을 뜯어간 부하직원을 검찰에 진정하면서 시작됐다.
2일 부산지검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4월 "불법행위를 수사기관과 언론에 제보하겠다"며 20억원을 요 구하는 회사 직원 진모(공갈혐의로 별건 구속)씨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김씨가 실소유주인 하늘개발에서 재무팀장로 일한 적이 있는 진씨는 부산 연산동 재개발 사업의 토지매입 과정에서 용역업자로 일했던 이모(48)씨와 함께 불법행위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20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실제로 김씨는 이들의 협박에 견디다 못해 입막음조로 10억원을 건네줬다.
그런데 김씨는 거금을 뜯긴 뒤인 6월7일 무슨 이유에선지 진씨 등을 공갈 혐의로 검찰에 진정, 구속되게 만들었다.
이들을 검찰에 진정한 것이 결과적으로 김씨에게는 '자기 무덤'을 판 꼴이 됐다.
진씨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씨의 불법행위 전모를 파악한 검찰이 수사의 칼날을 김씨에게 돌렸기 때문이다.
결국 김씨는 기술신보.신용보증기금(60억원), 재향군인회(225억원), 시공사 P건설(157억원) 세 곳에서 재개발사업 자금 442억원을 끌어 들여 편취한 혐의(횡령)로 7월16일 검찰에 구속됐다.
김씨를 잡은 검찰의 수사망은 자연스럽게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과 정윤재 전 비서관에게 뻗쳐 왔다.
횡령한 돈의 사용처를 추궁받던 김씨가 정 전 비서관의 주선으로 만난 정 전 부산국세청장에게 세무조사를 무마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원을 건넨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김씨도 두 사람에 대해 완강히 입을 다물었지만, 정 전 부산국세청장에게 준 현찰 1억원을 서울로 가져올 때 부산 김해공항에서 검색된 흔적 때문에 결국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사실 정 전 부산국세청장 수뢰건은 망외의 대어였다"면서 "하지만 김씨가 뇌물 1억원을 갖고 서울로 올라갈 때 공항검색대에 체크된 기록 때문에 의외로 쉽게 끝났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정 전 비서관 주변을 이것저것 훑어 봤지만 사법처리할 만한 연결고리는 찾아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마치 검찰이 정 전 비서관을 비호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사과정에서 김씨 계좌에서 정 전 비서관에게 흘러간 돈이 있는지 여부 등 들여다 볼 것은 다 봤다"고 털어 놨다.
정 전 비서관에 건네진 돈이 포착되지 않자 한때 검찰 내부에서는 김씨에게 정 전 청장을 소개한 부분에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금품이 오갈 당시에는 정 전 비서관이 민간인 신분이었고 청와대 입성후에도 조세업무와 직접 연관이 없는 의전비서관을 맡아 직권남용으로 걸기는 무리라는 반대의견이 우세해 사법처리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상진씨가 정 전 부산국세청장에게 뇌물 1억원을 건네준 당일 정 전 비서관이 이 두 사람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불거지면서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조사가 미진했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서는 '특검 공방'까지 벌어지게 됐다.
결국 '정윤재는 깨끗했다'며 사건을 닫으려 했던 검찰은 여론의 거센 역풍에 밀려 '보완 수사'라는 어정쩡한 모양새로 사실상 전면 재수사에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이 정 전 비서관 소환조사 등 본격적인 수사를 통해 세간의 '비호 의혹'을 씻어낼 수 있을 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