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이명박 후보 죽이기'를 위해 국정원, 국세청을 동원한 정치공작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한 데 대해 청와대가 5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이 후보와 이재오ㆍ안상수ㆍ박계동 의원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기로 해 '서울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에 이어 국민의 눈이 다시 검찰에 쏠리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 공방 과정에서 이뤄진 온갖 고소ㆍ고발 및 수사의뢰 사건을 떠맡아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로서도 야당 대선 후보가 직접 피고소인이 될 이번 사건의 수사가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일단 "사건이 실제 접수돼 배당되면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가급적 신속하고 신중하게 수사하겠다"는 원칙론만 밝혔다.
그러나 실제 고소가 이뤄지더라도 정기국회가 열리는 상황에서 고소된 의원들이 검찰 소환에 순순하게 응하지 않을 것이 뻔한데다 대선 정국과 맞물려있어 대선 전까지 결론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 이 후보 소환할까 = 수사가 시작되면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는 검찰이 과연 이 후보를 피고소인 자격으로 검찰청사에 소환할지 여부.
검찰 관계자는 "명예훼손 사건은 실제 명예훼손성 발언을 했느냐 여부 뿐 아니라 현장 녹음 등을 확보해 뉘앙스까지도 철저하게 살펴야 하고 대상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으로 특정됐는지도 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가 명백하게 대통령이나 청와대 비서실 등을 명시해 '정치공작설' 등을 제기했다면 모르겠지만 '권력핵심(중심)부', '집권층' 등으로 모호하게 발언했다면 명예훼손의 대상을 특정해 책임을 묻기가 판례상 어렵고 구체적인 '허위사실'의 적시 또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청와대가 고소 대상으로 거론한 다른 의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오세인 부장검사)가 이 후보 측 대변인이었던 진수희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도 이런 요건을 충족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진 의원은 "이 후보에 대한 의혹 제기는 청와대 지시에 의해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정권 차원의 정치공작이다"(6월13일), "청와대가 '이명박 죽이기 특별대책팀'을 구성해 배후에서 각종 공작을 기획하고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마포구 공덕동 모 빌딩에 사무실까지 마련돼 있다"(6월17일), "김유찬씨 사무실을 박근혜 후보 캠프 측에서 얻어줬다"(5월23일)는 등으로 청와대 비서진과 김유찬씨의 명예를 훼손하는 구체적인 허위사실을 발언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이 진 의원과 함께 청와대가 고소한 박형준 의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도 이처럼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겨냥한 구체적인 허위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따라서 이 후보 등에 대한 소환 여부는 발언의 구체적인 내용과 진의, 근거, 상황 등을 종합 검토한 뒤 신중하게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수사 제대로 될까 = 검찰은 앞서 대선 후보의 검증 공방 등과 관련한 사건을 가급적 신속히 처리한다는 원칙에 따라 '이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 김유찬ㆍ김해호씨 등의 명예훼손 사건 등을 대부분 한나라당 경선 전에 마무리했다.
이 후보 주변의 개인정보 유출 및 '희망세상21 산악회'의 불법선거 사조직 의혹 등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일부는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일부는 거의 처리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 검찰 설명.
따라서 청와대가 이 후보를 비롯해 한나라당 의원들을 고소하면 검찰은 같은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에는 넘어야할 장애물이 곳곳에 널려있다.
고소 사건은 일반적으로 고소인 조사를 먼저 한 뒤 피고소인을 차례로 불러 조사하는데 피고소인 조사는 정기국회 회기나 대선 운동 기간과 맞물려 있어 수사 일정에 맞춰 검찰 조사에 응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중견급 검사는 "설사 수사가 마무리돼 무혐의 처분하거나 기소하면 정치권이 결과를 놓고 왈가왈부할 것이 뻔하고 기소하더라도 법원이 대선 전에 최종 판단을 내리기도 어려운 점을 정치권도 잘 알 것"이라며 "정치공방에 지나치게 청와대를 끌어들이는데 대한 경고 차원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