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인해 정책금리를 낮추거나 인상계획을 보류하면서 그 여파로 원화강세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다 이를 틈타 무위험 재정거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통화위원회 내부에서도 추가 콜금리 인상에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오는 11일 정례 금통위를 앞둔 한국은행이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한 모습이다.
◇물가압박 가중..금리 올릴 수 있나 = 7일 한국은행과 채권.외환시장 등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를 위협할 정도로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으며 곡물시세는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향후 식품류와 사료 등을 필두로 소비자물가가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 1-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이지만 내년초에는 3%초반으로 급등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경기회복세와 함께 소비지출이 늘 경우 수요압력에 의한 물가상승이 초래될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경기상승 기조가 확실하고 향후 물가상승 압박이 우려된다면 물가안정을 주된 정책목표로 하고 있는 한은의 입장에서는 선제적인 콜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 위험을 미연에 제거해야 한다.
특히 시중 유동성의 과잉 상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여서 추가 콜금리 인상을 통한 유동성 흡수가 필요하지만 시장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한은의 입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점은 미국이 지난달 18일 정책금리를 0.5%포인트나 인하한 것이다.
미국의 금리인하는 곧 달러화 약세와 원화 강세를 초래해 한은의 입장에서 통화정책 운용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국 금리인상 랠리 중단.. 한은, 콜금리 인상에 큰 부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당초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없다며 금리인하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해오다 결국 시장에 굴복, 금리인하로 돌아선 것은 그만큼 다급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금리인하는 이번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차를 두고 하향 랠리를 지속할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중앙은행(BOJ) 등은 금리인상을 예고해왔으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이후 선진국 시장에 신용경색이 심화되자 금리인상을 유보했다. 추후 인상 시점도 현재로서는 쉽게 점치기 힘들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의 입장에서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이 올해 7,8월 두달 연속 콜금리를 인상해 연 5.00%로 올려 놓은 상황에서 미국 등이 금리를 낮춤으로써 원화의 가치가 그만큼 더 높아졌다. 금리는 곧 돈의 값어치며 금리가 높은 국가의 화폐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만일 한은이 물가압박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콜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면 원화 가치는 더 올라가 원.달러 환율은 900원대 아래로 추락할 공산이 크다.
환율하락은 물가상승 압박을 어느 정도 완화하기도 하지만 한은의 입장에서는 원화 환율하락 압력이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서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다.
◇무위험 재정거래 기승..통화량 증가 부채질= 국제수지 통계상에 지난 8월 한달간 외국인의 국내채권 매입액은 47억8천만달러였다. 7월의 13억7천만달러에 비해 3.5배 늘었으며 작년 8월의 1억4천만달러에 비해서는 무려 35배나 급증한 수치다.
또 8월중 외화차입액은 78억5천만달러로 월간기준으로 3월 이후 두번째로 큰 규모를 나타냈으며 단기외화차입 규모는 70억3천만달러로 전체 외화차입의 90%를 차지했다. 1~8월 장ㆍ단기 포함한 누적 외화차입 규모는 379억4천만달러에 달했다.
이처럼 외화차입이 급증하고 외국인의 국내 채권 매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무위험 재정거래의 유인이 커졌기 때문이다.
환율이 앞으로 더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선물환 매도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내외금리차 확대로 외화차입을 통한 국내 채권투자로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이 높아진데 따른 현상이다.
3.4분기에 무위험 재정거래 이익이 한때 2.0%포인트까지 기록하는 등 달러를 차입해 원화로 바꿔 국내채권 투자로 얻는 무위험재정거래로 시중은행들과 외국은행 서울지점, 외국인투자가들이 상당한 이익을 챙겼다.
앞으로 미국이 정책금리를 더 낮추는 가운데 한은이 콜금리를 추가 인상한다면 무위험 재정거래의 유인이 더 커진다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되면 외화차입이 더욱 늘게돼 해외부문을 통한 통화량 공급이 급증, 시중 유동성 과잉을 더욱 부채질하게 되고 콜금리를 인상해 유동성을 흡수해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금통위 내부 기류도 콜금리 추가인상에 미온적인 듯= 지난달말 공개된 8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강문수 금통위원이 유일하게 콜금리 인상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7월에 만장일치로 콜금리 인상이 이뤄졌던 것과는 달라진 분위기다.
강 위원은 7명의 금통위원 가운데 금리 인상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 대표적 `비둘기파'로 꼽히고 있다.
강 위원은 2005년 12월 콜금리 인상이 결정될 당시 김종창 위원과 함께 금리 인상에 반대 의견을 표시했으며 2006년 2월 콜금리 인상 때는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밝혔다.
금통위 의장인 이성태 한은 총재가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며 찬성 4, 반대 3으로 가까스로 금리 인상이 결정됐던 지난해 8월에도 강 위원은 박봉흠.이성남 위원과 함께 금리 인상에 반대했다.
강 위원의 콜금리 인상 반대 입장이 7,8월 연속 인상이 무리라며 금리인상 시기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시한 것인지, 아니면 추가 콜금리 인상 자체를 반대한 것인지 정확한 의중을 알기는 어렵지만 현재의 국내외 금융시장 움직임을 감안할 때 7월과 같은 만장일치의 금리인상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라는게 시장 주변의 반응이다.
◇연내 추가 콜금리 인상 힘들 듯= 전문가들은 연내 콜금리의 추가 인상이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의 이성권 연구원은 "미국의 연방기금 금리가 내년초까지 추가 인하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주요국의 금리 동결 기조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어서 콜금리가 내년 상반기까지 동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증권 신동석 연구원도 "경기 호황 신호가 뚜렷해지고 있어 환율 한가지 요인만으로 금리를 인하하기는 어렵겠지만 인상 시기가 지연될 수는 있을 것"이라며 "연내 콜금리 인상 가능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의 입장에서 현재 연 5.00%인 콜금리 목표수준을 만족스럽지는 않다. 가능하다면 5%대 중반까지 올려 놨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야만 향후 경기하강기 때 금리정책을 훨씬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감안하면 정책금리가 연 5.00%를 상한으로 막혀버린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경기상황과 물가불안, 시중유동성을 감안할 때 추가 콜금리 인상의 필요성은 강하지만 금융시장 상황을 따져보면 이를 실행에 옮기기는 것 역시 쉽지 않다. 한은이 말 그대로 진퇴양난에 처한 모양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