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 대선개입 의혹 피하려 조기송환 결정한 듯
미국 정부가 31일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씨를 한국에 송환키로 조기 결정한 것은 50여일도 채 남겨놓지 않은 한국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려 한다는 의혹을 피하겠다는 의사표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여권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BBK사건 연루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며 김경준씨의 조기송환을 미국측에 요구해온 반면, 한나라당 이 후보측은 `사실무근'이라며 미국 법원의 김경준씨 인도결정에 이의신청을 추진했다가 철회하는 등 적절한 대응책을 찾기 위해 부심해왔다.
이에따라 미국이 김경준씨 송환과 관련 언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가 한국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고, 이번 대선에서도 `미국'이 결정적 변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제기돼왔던 것.
미 국무부는 일단 `규정'에 의거해 신속하게 김경준 송환 문제를 처리, 미국이 한국 대선에 개입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려고 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효순.미순양 사건'으로 한국에서 반미감정이 고조돼 한국의 대선 결과에 뜻하지 않게 영향을 미쳤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동안 정치권 일각에선 미국이 김경준씨의 한국 송환을 거부하거나 고의로 미룰 경우 한국 대선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현행 한미 범죄인 인도협정에 따르면 미 법원에서 범죄인 송환 결정이 있으면 미 국무부는 60일 이내에 이에 대한 승인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미 법원이 지난 18일 김경준씨에 대한 한국 송환을 결정했으므로 미 국무부는 2주만에 법원의 결정을 존중, 김경준씨의 한국 송환을 승인했다.
주미 대사관 관계자는 지난 22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국정감사에서 미국 정부는 법원의 결정과 한국으로의 송환을 희망하는 본인 의사, 김씨가 미국 시민권자라는 점 등을 감안해서 승인여부 및 송환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김씨의 송환기간도 통상적인 범죄인 인도사례에 준해서 처리된 것으로 보인다.
김경준씨는 앞으로 2주일 후쯤 한국측에 인도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미 법원의 송환 결정으로부터 송환까지 대략 한 달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됐던 최성규씨의 경우도 법원 결정이 있은 뒤 한 달만에 송환이 이뤄졌다.
`세풍사건'에 연루됐던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의 경우 6일만에 송환된 사례가 있지만 이는 이씨 변호인들이 3개월간 미 검찰과 협상을 벌였기때문에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것.
한 소식통은 "최근 송환 사례 등으로 미뤄볼 때 김경준씨 송환기간은 평균치 정도로, 예외적으로 취급하기보다는 통상적 범죄 사례에 준해 처리한 것 같다"면서 "중립적으로 결정을 내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도 이날 "김경준씨 사례는 한미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다른 송환 사건과 마찬가지로 처리됐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오는 12월 예정된 한국 대통령 선거나 김씨 송환이 한국 대선에 미칠 영향 등을 계산에 두지 않고 규정에 따라 원칙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국무부 관계자가 이날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씨의 송환은 이번 대선 훨씬 이전인 3년반 전에 한국정부가 이미 요청했던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원칙적 처리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읽혀진다.
김씨 송환 문제가 한국 대선을 코 앞에 앞두고 새롭게 불거진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지난 2005년 말 연방법원이 김씨를 한국에 송환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고 언급했다.
이미 2년 전에도 김경준씨는 한국 송환 대상으로 간주했던 만큼 이번 미 법원의 결정이 새삼스러운 게 아니며 한국의 최근 정치상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국무부는 현 시점에 김씨가 한국으로 인도되는 것이 미국 정부나 법원의 의사에 의해 결정된 게 아니라 김씨가 법원의 송환 결정에 대해 제기했던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자동적으로 이뤄진 것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