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국정원, 검찰 및 경찰청과 함께 4대 권력 기관으로 치부된다. 6개 지방국세청과 107개 세무서에 국세공무원 1만8천여 명을 거느리고 과세권과 세무조사권을 행사하며 연간 재정 수입의 85%인 130조 원의 국세를 책임지고 있다. 그 수장인 국세청장은 권력의 총애가 없으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자리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국세청장이다 보니 부침도 심하다. 전씨 이전의 청장 14명 가운데 8명은 장관급으로 영전했지만 나머지는 비리 등에 연루돼 사법 처리 또는 불명예 퇴진이라는 멍에를 뒤집어써야 했다. 안무혁씨와 성용욱씨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불법 선거자금 모금으로, 임채주씨는 이른바 '세풍'으로 알려진 1997년 대통령 선거 때의 불법 선거자금 모금으로 각각 법정에 섰고 안정남씨는 2001년 9월 건설교통부 장관 영전 23일 만에 부동산 투기와 증여세 포탈 등의 축재 비리가 터지는 바림에 옷을 벗었다. 또 손영래씨는 2002년 썬앤문그룹 특별세무조사 추징세액 감축 지시와 SK그룹에서의 수뢰 혐의로 법정에 섰고 전씨의 전임인 이주성씨 역시 인사 관련 투서와 부동산 투기설 불화설 등이 분분한 가운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난해 6월 전격 사퇴했다.
기관장들이 이러니 그 밑에서 일하는 부하 직원들의 기강이 어떠하리라는 것쯤은 쉽게 짐작이 간다. 최고위 간부에서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걸핏하면 탈세를 눈감아 주거나 세무조사를 무마하는 등의 대가로 뇌물을 챙기다 쇠고랑을 차곤 한다. 국세청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권력의 강요를 뿌리치지 못하고 기업체 등에 손을 내밀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정치자금 모금에 앞장서는 등 권력 앞에서는 한없이 약하면서도 힘없는 서민과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한다는 게 국민의 눈에 비친 국세청의 모습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전씨가 계속 결백을 주장해도 '관행적 업무협조비'라는 해괴한 명목으로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서 여러 차례에 걸쳐 5천만 원과 미화 1만 달러를 받았다는 구속영장 발부 사유에 더 신빙성이 가는 것도 그 때문일 게다.
국세청은 유독 정 전 청장만 이런 관행을 따랐겠느냐는 국민 대다수의 따가운 시선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결코 없다는 국세청 관계자들의 말을 믿고 싶지만 만의 하나라도 사실이라면 국가 존립과도 직결될 수 있는 큰 문제다. 이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에게 세금을 내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국세청은 말로만 환골탈태할 것이 아니라 진정 거듭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필요하면 조직도 보강하고 일벌백계의 시범도 보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력의 앞잡이가 아니라 국민의 충실한 공복이라는 사명감을 회복할 때에야 비로소 도덕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