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진력' 보다는 '환골탈태'에 더 무게 둬야
한상률 국세청장이 17번째 국세청 수장으로 30일 오후 5시 공식 취임한다.
전직 국세청장의 구속 등 국세청은 42년사 최악의 위기상황. 한 청장의 어깨에는 막중한 임무가 짓누르고 있다. 이 임무들을 어떤 형태로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한 국세청장이 '단명(短命)'하느냐 '장수(長壽)'하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될 수도 있다.
□ 국세청 조직원…미세한 흔들림 조정필요=현직 국세청장의 구속은 국민들은 물론 2만여 국세공무원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다만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와 시스템에 의해 톱니바퀴 돌듯 운영되는 국세청의 업무 특성을 감안하면 눈에 드러나는 조직내 '동요'는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조직원들의 '심적(心的)'인 동요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일선에서 청렴한 공직생활을 하고 있는 대다수 하위직 국세공무원들이 수장의 비리사건을 보며 받은 '박탈감'은 이미 어느 정도 노출된 상태다.
한 국세청장이 수 차례에 걸쳐 직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한 이유도 믿었던 (전직)수장의 뇌물상납 비리로 인해 받았을 조직원들의 '박탈감'을 어루만지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직원들의 심적인 흔들림을 바로잡아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수장의 책무 중 하나다. 국세청 내부에서 하위직 직원들에 대한 승진인사 등을 통해 분위기를 전환시켜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대선'이라는 정치적 요인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점에서는 이 같은 조직원들의 심적인 부분에 대한 배려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국세청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 국세청 '체질'개선, 특단의 대책 내놓아야=한 국세청장이 얻어내야 하는 것은 조직원들의 마음뿐만이 아니다. '고위직들간 뇌물이나 주고받는 조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국민여론을 되돌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는 국세청의 '체질'을 뜯어 고쳐야 하는 부분. 국세청 조직원들은 물론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특단의 체질개선책을 내놓고 강력하게 시행해야한다.
현재로서는 대규모의 인적쇄신은 어려울 전망이다. 그러나 국세청 인사․조사․감찰 등 국세행정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시스템 쇄신'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 국세청장은 지난 27일 인사청문회에서 대대적인 시스템 쇄신을 예고한 바 있다. 한 국세청장은 "쇄신대책의 방향은 분명하다"며 "인사와 조사에 관한 제도를 혁신하고 이를 조직문화로 정착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한 국세청장은 ▲권위형 리더쉽․상명하복에 따른 관료주의적 문화 혁파 ▲민간기업 최신경영기법 도입 ▲업무성과 평가에 기초한 '경쟁문화' 정착 등을 국세청 체질개선을 위한 주요 방안으로 제시했다.
무엇보다 국세청 사람들은 청장이 내 사람 챙기기식 인사를 타파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동안 국세청 수장들은 대부분 학연, 지연, 혈연에 의지하는 인사를 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 커튼 뒤 '조사국'…비리온상 이미지 벗겨야=국세청 안팎에서는 '비리온상'으로 치부되고 있는 세무조사와 관련한 시스템 쇄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많다. 커튼 뒤에 가려진 조사국의 업무와 관련한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
특히 꽁꽁 숨겨진 조사국 조직 내에서 '금품'과 관련한 비리행위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는 것은 한 국세청장도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조사국 조직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은 가운데 국세청 자체적인 감독․감찰 등 제한적인 감시체제 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증명이 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 국세청장은 지난 27일 인사청문회에서 "이번 사건(전 전 국세청장의 구속)은 조사청탁과 인사청탁이 한 데 어우러져 발생한 일"이라며 "조사와 관련한 제도 혁신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국세청장은 세무조사와 관련한 부조리 개입 소지를 줄이기 위해 세무조사 지휘라인을 수시로 교체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조사조직의 투명성을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인 조사국 비노출 제도와 관련해서는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 국세청장은 서면질의 답변서를 통해 "연고주의 문화에서 조사공무원이 (조사관련)납세자들과 쉽게 접할 수 있다면 세무조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노출 원칙은 유지가 바람직하다"며 "다만 제기된 문제점에 대해서는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 '鞠躬進力(국궁진력)'보다 '환골탈태(換骨奪胎)'가 더 중요=한 국세청장은 무엇보다 '낮은 자세, (납세자와 직원들을)섬기는 자세'를 자신이 국세행정 운영하는 모토로 삼겠다고 수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지난 8일 이례적으로 공개한 지방국세청장 회의에서도 국궁진력(섬기는 마음으로 몸을 낮추어 온힘을 다한다), 환골탈태를 강조했었다.
이를 위해 한 국세청장은 이미 국세청사내 6대 엘리베이터 중 고위직 전용으로 운영하던 1호기를 모든 직원 및 납세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풀었다. 지난 29일에도 예고 없이 직원식당을 방문, 직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등 이전과 다른 행보를 하고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국세청에 요구되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국궁진력 보다는 눈에 보이는 환골탈태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조직내 낡은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고치고 납세자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국세청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한 국세청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한 국세청장이 짧은 시간 동안 깔아 놓은 징검다리는 다음 세대가 안전하게 밟고 지나갈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누가 밟아갈지 모르지만 후배들을 위해 튼튼하고 내실있는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는 일, 한 국세청장에게 주어진 임무를 한 마디로 압축한 주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