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 징계처분은 '잘못'…법원 연이어 세무사 손들어
재경부 "세무사가 자기 수입금액 누락…자격 미달"
업계 "자격징계는 이중처벌, 징계양정규정 개정해야"
최근 납세자의 세무업무를 대행해주는 세무사가 저지른 탈세행위에 대해 정부가 자격을 징계하는 것은 과도한 처분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최초로 세무사의 탈세에 대해 법원의 판결이 '정부의 징계가 잘못'이라고 나온 이후, 유사한 사례로 징계받은 세무사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모두 정부 패소 판결이 나오고 있는 것.
세무사도 한 명의 납세자로서 동등한 처벌을 받고서 또다시 정부가 자격에 대한 징계를 내리는 것은 '이중처벌'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를 두고 탈세를 저지른 세무사는 세무대리행위를 할 자격이 없으며 도덕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납세자가 어떻게 탈세 세무사에게 세무대리를 맡길 수 있겠냐는 볼멘 소리가 그것. 이는 현행 정부가 주장하는 논리와 같다.
□ 세무사 징계 논란‥키워드는 '직무연관성'= 법원이 세무사 본인의 탈세행위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는 이유는 '직무연관성'이 없기 때문.
현행 세무사법 제12조(성실의무)에는 '세무사는 성실히 그 직무를 수행하여 그 품위를 보지하여야 한다'며 직무관련성을 명시하고 있다.
세무사의 직무 연관성에 대해서는 납세자의 위임에 의하여 조세에 관한 ▲대리·대행 ▲상담·자문 ▲세무조정계산서 기타 세무관련서류의 작성 ▲조세에 관한 신고서류의 확인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그 직무로 규정하고 있다(세무사법 제2조).
법원의 판결요지는 세무사 자신의 조세에 관한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이 그 직무에 관한 업무가 아니라는 점.
이에 따라 세무사가 자신의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면서 비용을 과다계상하거나 일부 소득의 합산신고를 누락한 것은 세무사법 위반의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징계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 재경부 "세무사 탈세는 도덕성 문제, 자격 없는 것"= 세무사에 대한 징계권을 쥐고 있는 재정경제부에서는 징계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원에서 '직무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잇따라 패소하면서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재경부는 세무사라면 자신의 세금을 정확하게 신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징계결정을 내리는 것이며, 납세자의 기장대리를 해주는 세무사가 소득을 누락한다는 것은 세무대리인의 자격이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세무사의 탈세행위와 연관된 소득과 비용의 원천은 분명 세무대리행위에서 나오는 것으로 분명 직무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징계처분에는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연이은 법원의 패소 판결로 인해 향후 세무사 징계 자체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아예 관련법을 개정해서라도 탈세 세무사를 처벌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 박 모 세무사의 수입금액 누락 등에 대한 정부의 징계처분이 잘못됐다는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7월 정부의 항소심도 기각했다.
또한 지난 8월과 11월에는 수입금액 누락 등에 대한 징계와 관련해 장 모 세무사와 임 모 세무사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과태료부과처분취소 소송에서도 잇따라 정부 패소 판결이 내려졌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법원의 판결로 봐서 현재로선 세무사징계위원회에서는 세무사의 수입금액 누락 및 비용 과다계상에 대한 징계가 곤란해질 것"이라며 "세무사법의 직무연관성에 대한 부분 자체를 개정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 업계, "세무사도 일반 납세자, 추가 징계는 이중처벌"= 세무대리 업계에서는 세무사 본인의 수입금액 누락이 납세자로서 저지른 행위이기 때문에 자격 자체에 대한 추가 징계는 과도한 처분이라는 입장이다.
탈세를 하면 조세범처벌법 등에 의해 가산세 부과와 같은 제재를 받게 되는데, 굳이 세무사라는 이유로 징계를 내리는 것은 '이중처벌'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무사회 관계자는 "세무사 개인이 영업하면서 수입금액을 누락했거나 비용을 과다계상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징계처분을 내리는 것은 이중처벌"이라며 "세무사도 본인의 수입금액에 대해서는 일반납세자와 동등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세무사 징계양정규정에서 수입금액 누락 및 비용과다계상에 대해 징계한다는 내용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조항 자체를 없애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재경부 및 업계에 따르면 내년 초쯤 열릴 예정인 세무사징계위원회에서 세무사 징계양정규정에 대한 개정 논의를 할 예정이며, 이번 위원회에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수입금액 누락 등의 부분에 대해서는 징계하지 않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무사 징계소송 일지>
▲2006년 5월= 세무사징계위원회, 박 모 세무사에 300만원 과태료 부과
▲2007년 2월= 서울행정법원, 박 모 세무사의 과태료부과처분취소 소송 원고승소 판결
▲2007년 2월= 세무사징계위원회, 장 모 세무사에 500만원 과태료 부과
▲2007년 5월= 세무사징계위원회, 임 모 세무사에 과태료 1000만원 부과
▲2007년 7월= 서울고등법원, 박 모 세무사에 대한 재정경제부 항소 기각
▲2007년 8월= 서울행정법원, 장 모 세무사의 과태료부과처분취소 소송 원고승소 판결
▲2007년 11월= 서울행정법원, 임 모 세무사의 과태료부과처분취소 소송 원고승소 판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