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관급(4급, 세무서장급) 이상 간부들은 정년을 2년 앞두고 현직에서 물러나는 제도인데, 다른 부처에서는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국세청만의 고유문화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매년 상반기(6월)와 하반기(12월) 두 차례에 걸쳐 명퇴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올해의 경우 1949년생들이 대상자들이었습니다. 간혹 자신의 뜻(혹은 조직의 뜻)에 따라 더 앞당겨 퇴임하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생년을 기준으로 명퇴를 시키는 이유는 인사적체 해소를 위한 고육지책 중 하나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명퇴가 아니라 강제퇴직이다"라는 비판적 시각도 뚜렷하게 존재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 같은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이들보다 "후배들의 승진길을 터주겠다"며 조직의 법칙에 따라 군말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선배 국세공무원들이 더욱 많기에 '아름다운 퇴장'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6월에도 10여명의 선배 국세공무원들이 명퇴를 선택, 세무사 개업 등 제2의 인생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12월에도 임원빈 강남세무서장, 박요주 광주국세청 조사1국장 등 10여명의 베테랑 국세공무원들이 아름다운 퇴장길에 오를 예정입니다.
□ 그들의 퇴장이 '아름다운 이유'
매번 명퇴철이 다가오면 국세청 내부에서는 실질적인 대상자들과 함께 자천 타천 '명퇴 대상자'들이 나오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누구누구는 누릴 것 다 누렸으니 이제는 나가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들입니다.
사실 '정년보장'이라는 당근을 믿고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택했고 또 수 십년 동안 열심히 일해온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기분 나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만 이 같은 이야기들도 국세청 조직 저변에 깔려 있는 독특한 인식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 큰 아쉬움은 남겠지만 엄연한 직의 생리를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특히 올해 하반기 명퇴를 앞두고 여러 가지 '말'이 많았습니다. 대통령 선거라는 커다란 정치적 변수가 있었고 또 현직 국세청장의 구속사태로 인해 국세청 내부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했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 이 같은 상황에서 명퇴대상자들이 혹여 '딴 생각(?)'을 품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던 것입니다. 공직사회가 정치적 상황이 가져다 주는 변수에 민감하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능성 있다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명퇴대상자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조직을 위해, 후배들을 위해 결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결단을 지켜본 후배 국세공무원들은 그들의 떠나는 뒷모습에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제2의 인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보낼 것입니다.
명퇴를 얼마 안 남겨둔 한 국세공무원은 "아쉬움이 크기는 하겠지만 후배들과 조직의 발전을 위해 떠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후배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떠나지 못한다면 슬픈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아름다운 퇴장', 계속 될까?
요즘 국세청은 명퇴제를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입니다. 명퇴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죠.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논의가 꽤나 심도 있게 진행된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EITC시행, 4대보험 통합징수 등 앞으로 조직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일만 남은 상황인데 경험 많고 능력 있는 베테랑 간부들을 명퇴제라는 명분하에 야금야금 내보낸다면 국세행정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명퇴제 폐지의 논리 중 하나입니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명퇴제를 폐지할 경우(현재 국세청은 1년 연장, 1년 공로연수 방식으로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사적체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명퇴제가 명맥을 유지하든 폐지되든 '아름다운 퇴장' 장면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좀 더 두고봐야 할 문제이지만 아직까지는 물러나야 할 때 '후배들과 조직을 위해' 박수를 받으며 물러나기를 원하는 선배 국세공무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국세공무원은 "수 십년 동안 했으면 충분하다. 힘이 남아 있을 때 하루라도 먼저 사회에 나가는 적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명퇴제가 폐지되더라도 미련을 갖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