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방침에 대해 대통합민주신당의 지도부가 공감을 표명하고 나선 데 이어 재계가 아예 대기업집단지정제도의 폐지까지 요구하고 나섬에 따라 향후 새 정부에서 재벌규제가 줄줄이 풀리게 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규제가 그동안 재계의 수많은 반발과 논란 속에서도 경제력 집중억제라는 목적 때문에 유지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시민단체 등의 반발과 함께 대안마련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 재계 "아예 다 풀어달라"
9일 공정위와 인수위에 따르면 대통합민주신당의 김효석 원내대표는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의 출총제 폐지방침에 대해 "출총제 완화는 잘하는 것이며 경제관련 규제완화에 대해 환영한다"면서 원칙적인 찬성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하지만 시장규율을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며 풀것은 풀되 순환출자 규제 같은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된다"고 말했다.
신당의 채수찬 의원도 보도자료를 내고 "출총제 폐지에 반대하지 않지만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구조 왜곡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며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순환출자 규제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신당 지도부가 출총제 폐지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힘에 따라 공정위가 관련 내용을 반영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하면 국회에서 별다른 이견없이 처리될 공산이 커졌다.
지난 2006년 말에 진행된 출총제 개편 과정에서는 여야간 이견은 물론 같은 당 내부에서도 의원들마다 의견이 엇갈려 국회 논의과정에서 극심한 혼란과 혼선이 빚어진 바 있다.
이처럼 재벌에 대한 규제완화 분위기가 무르익자 재계는 아예 이참에 그동안 발목을 잡아왔던 규제를 모두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인수위에 제출했다는 32개 공약 실천 과제와 실행계획에서 역대 정부마다 표방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규제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대기업집단지정 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순환출자 금지 등 다른 대체입법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집단지정 제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매년 4월 각 대규모기업집단(재벌)의 자산규모와 지분구조 등을 분석해 제반 규제를 적용할 계열사 현황을 지정하는 것이다.
이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에 의거해 재벌에 적용하는 규제인 상호출자제한이나 채무보증제한,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비상장사 공시제도 등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대기업집단지정 제도가 없어지면 사실상 재벌에 대한 규제가 대부분 폐지되는 효과가 생긴다.
또 부당 내부거래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어 재벌들이 편법 상속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계열사에 대한 '물량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도 사실상 어려워진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별 기업이 아니라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규제하는 법은 공정거래법 뿐"이라면서 "대기업집단 지정을 없애자는 것은 재벌에 대한 모든 규제를 없애자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시민단체 등 거센 반발 예고
정치권이 출총제 폐지에 기본적인 공감대를 이룬다고 해도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공정위도 '대안없는 출총제 폐지'는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인수위도 공정위의 업무보고에서 출총제 폐지의 폐해를 막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 상태여서 향후 대안마련 과정이 주목된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각 부처의 업무보고 과정에서 외환위기 이후 재벌개혁을 위해 도입했던 여러 법.제도적 장치들이 이명박 당선인 측에 의해 폐지 또는 무력화되고 있는 지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반발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재벌개혁의 시계를 외환위기 이전으로 되돌리는 '퇴행의 경제정책'을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경제개혁연대도 성명에서 "이는 경쟁력 강화는 커녕 재벌의 방만한 출자구조와 총수일가의 지배체제 유지에만 기여할 기업정책"이라면서 "친기업적이라기 보다는 기업의 안정적 성장을 갉아먹는 친재벌 정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