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의 가치를 지녔던 숭례문이었던 만큼 국민들이 힘을 보태 복원해보자는 것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는 듯 보였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한 주요 포털사이트에는 순식간에 5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댓글을 빌려 "관리 제대로 못해 타버린 숭례문 복원의 책임을 왜 국민에게 전가하느냐"는 내용 일색으로 비난여론을 토하고 있다.
"국민을 봉으로 여기느냐", "차라리 복원하지 말고 후세들이 두고두고 반성하도록 그대로 둬라", "방치하는 사람 따로 있고 비용 대는 사람 따로 있냐"는 등 독설도 쏟아졌다.
정부부처인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 그리고 서울시청이나 중구청의 책임문제부터 따지는 것이 순서이지, 국민들에게 손을 빌릴 생각부터 하는 것에 대한 울분들이 녹아들어 있다.
국민들의 원성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 작은 연기가 솟아날 때부터 다음날 새벽 대한민국 국보1호가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까지 무기력하게, 정말 한심하게도 물줄기만 쏟아 붓던 우리 정부의 대응을 끝까지 지켜본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민의 손을 빌리기 전에 정부책임부터 따졌어야 했다. 그렇게 현장을 강조하던 당선인도 초저녁부터 연기가 솟았음에도 이미 폐허가 된 다음날 현장을 찾지 않았는가.
국민들은 이번 사건으로 매번 정부의 잘못으로 국가적 재앙이 터질 때마다 그 처리는 국민들의 도맡아서 처리해 왔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는 듯 하다. 사고에서 국민을 보호할 정부가 되레 사고를 치고, 언제나 국민이 사고수습반으로 나서는 관행종식을 원하는 것.
안이한 정부대처로 사태를 악화시켰던 태안 기름유출사고 때 수십만명의 자원봉사자의 힘을 빌려서야 문제확대를 막을 수 있었고, IMF때에는 국민들이 집안에 고이 모셔왔던 금붙이까지 바쳐가며 위기를 극복했다. 소말리아에 피랍됐던 선원들도 국민들의 성금으로 풀려났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보1호의 손실을 넘어 더 큰 것을 잃게 될지 모른다. 매번 국가 위기 때마다 앞다퉈 나서왔던 자랑스런 국민들의 마음과 손발을 꽁꽁 얼려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이같은 마음을 녹이려면 숭례문 관리에 직접 그리고 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공직자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만 보일 것이 아니라, 응당 재산적 책임을 다하고 난 후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국민들에게 엎드려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별 반성도 없이 부처간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장차 국가 최고책임자가 될 사람이 국민들에게 손부터 내밀려는 것은 즉흥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최근 새 정부가 구상하는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에서 표류하자 인수위는 국민의 세금을 천금같이 여기는 정부를 출범시켜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정말 국민의 세금을 천금같이 여긴다면 국민성금을 운운하기 전에 뜻하지 않게 혈세를 투입시켜야 될 상황을 만든 부분에 대한 책임소명과 함께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처벌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