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중복, 권한책임 불일치…오히려 더 심화
금융위원장이 금융위원 성질 결정, 관치도 달라져
금융위원회 설치 등의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란이 지난 21일 재정경제위원회 법안소위심사에서 금융감독원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타결됐다. 그러나 금융감독기구 논란의 핵심이었던 금융위의 '관치'폐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가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모두 맡게 돼 '늘 정책이 감독을 우선하게 될 것이다'라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적돼 왔지만, 금융감독에서 금감원의 역할이 강화됐을 뿐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
이번에 합의된 내용은 금감원장이 금융위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고, 실질적인 안건 상정권이 부여되는 등 금감원의 역할·권한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직원들의 연봉 예산 승인권이 삭제됨에 따라 금감원은 일부분 지금보다 더 독립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게 돼 최악의 상황에서 본전을 찾고도 플러스 알파를 더 얻게 된 셈이다.
대부분의 쟁점 모두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에서 본래 개정안(안상수 한나라당 의원 대표 발의)보다 금감원에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금감원이 금융위 및 소관 기관 업무를 지원하는 조항이 생겨 금감원이 실질적인 감독 집행을 할 수 있게 됐다. 당초 개정안에는 이런 조항이 삭제돼 있어 금감원은 검사만 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또한 금융위의 금감원에 대한 '지시감독'이 '지도감독'으로 바뀐 이유도 금감원에서 "금융위가 예보를 지도감독하도록 돼 있는데 왜 금감원만 지시감독이냐"는 불만이 제기됐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이번 타결을 전방위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금감원 '1700여명 조직의 승리'로 표현하는 이유다.
□왜 관치 미해결인가?…금융정책·감독은 그대로 금융위 업무= 그러나 금융감독기구 개편 논란의 10여가지 쟁점 어디에도 금융위의 '관치'를 해결하기 위한 조항은 없었다.
금융위는 '금융감독기구 설치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 제17조에 따라 '금융에 관한 정책 및 제도에 관한 사항'과 '금융기관 감독 및 검사·제재에 관한 사항'등을 하도록 돼 있어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의 전권을 쥐게 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 합의를 통해 달라진 것은 금감원이 금융위가 감독규정 등을 만들 때 일부 관여하게 됐다는 점이다. 재정경제위원회 관계자는 "감독규정 권한은 금융위에 있는 반면 금감원이 실질적인 감독 집행을 하기 때문에 실무적인 조문작성에 관여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당초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것은 금융위에서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모두 하도록 돼 있어 감독이 정책, 정치적 목적에 의해 좌지우지될 우려가 커 외환위기를 가져온 관치금융이 되살아난다는 것이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소장은 "관치는 정책적 목적이 늘 감독을 우선하게 돼 있다"며 "(외환위기가 온 이유는) 경기부양을 하려면 금융기관의 여신을 확대해야 하는데, 경기부양이라는 정책적 목적 때문에 금융기관 부실화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47명의 경제·금융학자도 금융위의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분리해 감독기능을 민간에서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들은 "정책적 목적을 위해 금융감독 기능이 왜곡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이 분리되는 점은 타결 쟁점이 아니었다.
이의영 군산대 교수(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소장)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이 통합돼서) 구조적으로는 여전히 우려되는 부분이 있으나, 미세한 부분에서 일부 조정돼서 그나마 다행이다"고 평했다.
□업무 중복? 권한과 책임 일치?…불분명한 경계선= 금감원에서 '금융위 및 소관 기관의 업무를 지원'함에 따라 금융위에서 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 및 제재 업무와의 업무 중복 문제가 애매한 경계선상에 남게 됐다.
업무 중복으로 늘 문제가 돼왔던 권한과 책임 불일치도 불씨를 남겨놓게 됐다. 이에 따라 금감원의 '금융위 및 소관기관의 업무 지원'과 금융위의 업무를 분명하게 조율할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동안 금감원은 '금융감독위원회 및 증권선물위원회의 업무를 보좌한다'는 조항에 따라 인허가 등의 사무에 대해서 자료 제출 검토 등의 사전작업을 해왔다. 즉 금감원의 업무지원은 지금까지 해오던 건전성 감독, 자본시장 관리감독 등을 계속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이럴 경우 금융위의 소관사무로 명시돼 있는 금융기관 감독 및 검사·제재, 금융기관 설립·합병·전환 및 경영 등의 인허가, 자본시장의 관리·감독 및 감시 등과 업무 중복이 일어난다.
기존까지는 금감위와 금감원간의 업무 중복은 '같은 수장'이라는 완충지대로 그나마 자율적인 조율이 가능했으나,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런 완충역할을 할 장치가 없으므로 분명하게 업무 분담을 하지 않으면 업무의 비효율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재경위 관계자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하게 될 금융위 및 소관기관의 업무 지원 중 충돌되는 경우가 발행한다"며 "(금융위와 금감원의 정확한 업무는) 법에는 명시하기가 힘들고, 나중에 결정해야 하는 사항이다"고 밝혔다.
한편 금융위의 소관사무 중 '금융시장의 안정에 관한 사항'은 삭제됐다.
아울러 금융위 소속 공무원의 금융협회 검사권이 삭제 돼 실질적인 현장 감독 업무가 일부 축소됐지만,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 제재 업무는 그대로 유지된다. 또 금감원은 단독으로 협회, 거래소, 예탁원 등을 검사할 수 있다.
□금융위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금융위원 성질 달라져= 금융위 권한이 세진만큼 금융위원을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관치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해결책으로 부각되고 있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 사이의 균형을 최대한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융위원들의 판단이 중요하게 된 것.
이번 합의과정에서 금융위원 중 '지식경제부 장관 추천 1인'을 '대한상공회의소 추천 1인'으로 변경한 배경도 금융위원에 민간인 출신을 더 늘리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들은 ▲위원장 ▲부위원장 ▲상임위원 2인 ▲기획재정부 차관 ▲한국은행 부총재 ▲금감원장 ▲예금보험공사 사장 ▲대한상공회의소 추천 1인 등으로 구성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금융위원들의 구성은 공무원이 5명(위원장, 부위원장, 상임위원 2인, 기획재정부 차관, 예금보험공사 사장), 민간인이 3명(한국은행 부총재, 금감원장, 대한상공회의소 추천 1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직책에 따라 금융위원 구성이 공무원인가, 민간인인가를 구분하기 어렵다. 금융위원장의 신분은 공무원이지만, 대학교수나 금융기관 사장 등의 민간에서 선임하게 된다면 인물의 성질을 공무원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
더구나 상임위원 2인의 경우 금융위원장의 추천을 받아 선정되기 때문에 금융위원장이 공무원 출신이냐, 민간인 출신이냐에 따라 금융위원 2명의 성질도 달라져 금융위원 구성이 변하게 된다.
재경위 관계자는 "일단 상임위원으로 임명되면 1급 공무원이 된다"며 "그러나 금융위원장이 추천하는 이가 지정되는 것이므로 민간이었던 사람이 상임위원이 된다고 해서 관료라고 볼 수 없어 인물의 성질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한편 이의영 군산대 교수는 "금융위원장이 누가 되든 관치 우려는 수습되기 어렵다"면서 "그러나 재경부 관료에서 나오는 것보다 민간에서 위촉되면 그나마 낫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