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前청장 측 "항소할 것"…법정공방 '지구전' 돌입
국세청,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실망감 역력
부하직원이었던 정상곤 前부산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인사청탁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전군표 前국세청장에 대한 1차 법정공방이 끝이 났다. 결과는 전 前국세청장의 '유죄확정(징역 3년6월 추징금 7947만원)'. 중형이었다.
다만 당초 검찰이 구형한 형량(징역 4년, 추징금 8000만원(한화 7000만원+미화 1만달러))보다 조금 낮아졌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 부장판사)는 27일 오전 11시부터 전 前국세청장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어 전 前국세청장에 대해 징역 3년6개월, 추징금 7947만3000원(한화 7000만원+미화 (환율고려)1만 달러)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정 씨가 뇌물공여를 진술하게 된 경위, 진술의 구체성 및 일관성, 법정에서의 진술태도 등을 종합할 때 정 씨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볼 만한 정황이 없다"며 "부하직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전 씨에 대해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전 씨는 국가세정의 최고 책임자로 뇌물을 받아 국민과 국세청 조직의 기대를 저버렸다"며 "그러나 공직자로서 그동안 국가에 기여해온 점 등을 감안, 가중처벌하지는 않는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 재판부, "정 씨 일관된 진술…증거능력 있다"=재판부는 선고를 내리기 전 선고배경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 등을 장장 40여분간에 걸쳐 설명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정 씨의 진술이 다소 어긋나는 부분은 있지만 일관성 측면 등을 따져볼 때 증거능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정 씨는 공소사실에 대해 시종일관 같은 진술을 흔들림 없이 했다"며 "다만 금품을 건넨 시점과 방문목적 등에 대한 진술이 다소 어긋나기는 했지만 금품 제공 사실을 의심할 만큼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정 씨는 공판과정에서도 피고인측 변호사들의 반대심문 등에 표정 변화없이 차분하게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며 "변호인들의 자극적 질문에 대해서도 당황하거나 반문하지 않고 안정된 태도로 진술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측은 정 씨의 진술에 대해 '인사상 불만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됐다고 했지만 정 씨의 평소 인품과 인사생리를 잘 알고 있다는 점과 인사결정 이후 더 이상 금품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인사상 복수심에 의한 진술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재판부, "전 前국세청장의 자존심이 기억을 지배했다"=재판부는 전군표 前국세청장의 주장과 관련해 "피고인은 정 씨의 구속 이후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세청을 방문한 검사에게 '용처 수사를 하지 말라'고 언급했으며 이병대 부산청장에게 용처 진술을 하지 말 것을 권고토록 지시했다"며 "조직을 보호하고 전임 청장에 대한 위로 차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정 씨와 대질 심문 이후 자수감경을 검찰에 요청한 것과 관련해 실형을 받을 것이 두려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법정에서 강력하고 확신에 찬 부인 태도에 비춰 이 같은 주장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정 씨의 진술을 반박하기 위해 방대한 증거물을 제시했고 다수의 유능한 변호인들의 조력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신의 주장처럼 죄 하나 없는 피고인이 공판시작도 전에 법원 재판결과를 불신, 유죄를 확신하고 검찰에 자수 문제를 논의하고자 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국세청에 제시한 'CCTV녹화 자료'와 관련해 재판부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조사를 한 결과 (국세청 출입에) CCTV화면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음이 명백하고 피고인의 주장처럼 출입자가 기형적 자세를 취하지 않더라도 청사 진입이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을 인용, 전 前국세청장의 주장을 반박하고 유죄를 확정지었다.
재판부는 "니체는 '내 기억이 내가 그것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자존심은 내가 그것을 했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결국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한다'고 말했다"며 "(재판부의 판단이지만)피고인이 자신의 왜곡된 기억에 속은 것"이라고 밝혔다.
□ 전 前국세청장측 항소 할 듯…법정공방 장기화=전 前국세청장측은 재판부의 결정에 즉각 항소를 제기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사건의 진실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아울러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지루한 법정공방을 계속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판부가 전 前국세청장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는 소식을 접한 국세공무원들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며 "다만 무죄가 선고됐다면 국세청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그 동안 국세청을 중심으로 전 前국세청장의 무죄가능성을 타진하는 전망들이 제기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재판부의 선고는 국세청에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편 재판부는 이 날 오후 2시 현직 국세청장 구속이라는 사태의 발단을 제공한 바 있는 정상곤 前부산지방국세청장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 예정이다. 정 씨는 현재 검찰로부터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원을 구형 받은 상태이다.
